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욕설 뱉자 떠나버린 남자,
꼭 붙잡고 싶어요

by한겨레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심한 욕 하던 전 남친과 닮은꼴 돼버린 나

화 참지 못하고 남자친구에게 험한 말 해

혼자인 게 너무 두려워 꼭 돌려세우고 싶어

A. 욕하는 당신 모습, 갑자기 생긴 성격 아닐 것

상대방 곁에 있는 건 가장 덜 중요한 문제

외로움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 돌아보길

욕설 뱉자 떠나버린 남자, 꼭 붙잡고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Q 저는 올해 29살입니다. 독립해 7개월째 혼자 살고 있습니다. 독립했을 때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3개월 정도 만난 남자인데, 그 남자는 성격이 아주 세고 대화도 안 통하는 이였어요. 제 생일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와 식사한 후 집에 가는데, 차 안에서 남자친구가 제 휴대전화에서 다른 남자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 두통을 발견하고 저한테 화를 냈어요. 저는 왜 그런 거로 화를 내느냐며 다퉜습니다. 갑자기 화를 내면서 “XX 년아 내려 XX”이라고 말하면서 비 오는 날 길가에 저를 내리게 하고 갔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남자한테 욕을 들은 것도 처음이고, 비 오는 생일에 그런 비참한 경험을 한 것도 처음이라서 너무 충격이 컸습니다.


그 일로 헤어졌고 트라우마로 남았죠. 헤어지고 2주 정도 후 제가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독립하고 전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외로운 마음에 가볍게 보자는 마음으로 만났지요. 그런데 너무 좋아하게 됐습니다. 제가 불같은 성격인데, 그는 너무 착해요. 제 투정을 다 받아주고, 이해해줍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계속 받아주니까 저도 모르게 남자친구를 만만하게 보고 있더라고요. 두 달쯤 지나서 큰 다툼이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욕을 해버렸습니다. 저도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순간적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전 남친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오빠도 화를 냈고, 결국 제가 홧김에 “그럼 헤어지자, 꺼져라”고 했어요. 제 속마음은 오빠를 정말 잃기 싫습니다. 분노를 조절 못 해 감정적으로 행동했어요.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오빠는 알겠다며 메신저 소개 사진도 다 내리고 그동안 제게 쩔쩔매던 모습은 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화도 안 받고 한순간에 돌아서 버렸습니다. 그날 새벽에 오빠는 더 이상은 힘들 거 같다면서 저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저는 붙잡았습니다. 완전 다른 사람이 된 오빠는 마음을 접은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욕을 하는 여자를 만나면 싫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오빠한테 배려 없이,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낸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저 자신이 너무 싫고, 제게서 전 남자친구의 모습을 본 게 너무 자존감이 상해요. 지금 생각으로는 다시는 오빠 같은 남자를 못 만날 것 같아요. 혼자인 것도 너무 두려워서 이 관계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6평짜리 방안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 들어요. 제가 잘못해서 오빠가 헤어지자고 한 것이라서 더욱 숨이 막혔습니다. 아마 오빠는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렇게 헤어지자며 화내고 욕할 때는 언제고, 헤어진다니까 갑자기 돌변해서 ‘나를 잡는 얜 뭐지?’라고요. 혼자인 것이 너무 두렵고, 외롭습니다. 타지에 살아서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어요. 감정을 조절하는 게 힘들어요. 성격이 불같아서 화나면 저도 모르게 심한 말들을 하곤 합니다.


아마 제가 그동안 짜증을 덜 내고, 화가 날 때도 오빠를 배려하는 자세였다면 오빠가 헤어지자고 하진 않았겠죠. 저도 잘 알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오빠가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했지만, 제 생각엔 오빠가 결국 헤어지자고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와주세요.


혼자인 게 두려운 여자


A 사람은 누구나 성격상의 단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어떤 사람도 천사나 성인과 같은 내면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정말 천사나 성인처럼 평온하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사실 내면에는 적어도 한 가지씩은 스스로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고단한 문제를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성격상의 어려운 점,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성격의 패턴은 갑자기 마법처럼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시간 속에, 이런 성격을 만들어내고 또 강화한 어떤 작용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요. 많은 심리학 이론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상호작용에서 그 기원을 찾습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면, 그 이후에 성인으로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도 다소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죠. 당신은 전 남자친구, 현재 남자친구와의 상황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발견하고 자책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아주 오랫동안 만들어진 당신의 어떤 모습일 가능성이 큰 것이죠. 다만 지금까지는 나의 내면의 깊숙한 모습을 발견할 만큼 깊은 교류를 할 상대가 없었을 뿐이고요.


당신의 이런 모습을 제대로 인지한 적이 없었기에 자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자신이 혐오하는 어떤 모습을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했으니 부끄럽고 절망적이겠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지점부터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험한 말을 하는 것을 혐오하면서, 정작 다른 관계에서는 내가 그런 혐오스러운 행동을 했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춰서 생각해야 하지 않나요? 여기서 갑자기 자기 행동을 후회하긴 하는데 ‘다시는 이 오빠 같은 남자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갑자기 점프하면, ‘혐오스러운 행동을 했던 나'에 대한 문제는 버리고 가자는 거죠.


묻고 싶습니다. 이 오빠를 붙잡아서 계속 그의 연인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요? 그는 당신의 심리치료사가 아닌데요. 이대로 그가 당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여 계속 사귀게 된다고 합시다. 또 다툼이 벌어지게 된다면, 당신은 이번과 같이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그 다툼을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을까요? 별것 아닌 싸움이라면 지나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싸움이 아주 커질 수도 있지요. 그가 잘못을 크게 해서, 당신이 정말 참기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분노나 원망이라는 감정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 감정을 인지하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잘 조율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이대로라면 당신에게 남아있는 옵션은 단 두 가지밖에 없어 보이네요. 감정조절이 어려우니까 무조건 참고 표현 자체를 하지 않거나, 아니면 또 예전처럼 폭발하거나 하는 거죠. 둘 중 어느 쪽도, 당신을 불행한 상황으로 이끌겠죠. 다시 묻고 싶네요. 당신은 중요한 게 뭐에요? 외롭지 않게 지내는 것인가요? 감정조절을 잘하게 되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그 남자만 옆에 있으면 되나요?


전부 다 원하는 게 당신의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고 무의미하기까지 한 것은 바로 ‘그 남자가 곁에 있는 것'입니다. 독하게 들려도 어쩔 수 없어요. 타지에서 외롭게 살던 나에게 잘해주고 자신도 좋아했던 남자를 만만하게 보고 험한 말을 했던 당신은, 지금 이 상태로는 그 남자를 만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지도 않을 거예요.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외로움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나의 내면의 크고 작은 억압과 결점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랍니다. 둘이서 놀고, 웃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외로움이나 자신의 결점들이 잠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 것뿐이죠. 고통스럽겠지만, 일련의 사건들과 헤어짐, 고통스러운 시간은 그냥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좋은 일만 있어서는 깊은 깨달음과 성찰의 시간 또한 쉽게 다가오지 않지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 속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그다음에 이어지는 삶의 모습을 결정하는 법입니다. 슬프겠지만 이 남자, 일단 떠나 보내세요. 당신이 자신을 돌아보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다면, 그를 다시 만날 가능성도 열려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외로움에 늘 굴복하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고 그라는 존재에게만 의존한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도 잃고 앞으로 다가올 사랑도 잃게 될 겁니다.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지 마세요.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푸는 겁니다. 타인과의 연애가 아니라요.


곽정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