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테크 ]

이스터섬의 비극…
지구 문명의 묵시록인가

by한겨레

천혜 환경 덕에 한때 1만명 번성

무분별 자원 이용하다 인구 급감

기후변화가 몰고올 미래 보는 듯

한겨레

해안을 따라 줄지어 있는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남동쪽에 있는 이스터섬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외딴섬 가운데 하나다. 칠레 본토에서 무려 3500km를 가야 닿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섬도 2000km나 떨어져 있다.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서기 400~700년께로 추정된다. 고립된 곳에 있던 탓에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초기 주민은 기껏해야 15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온난다습한 기후로 자연자원이 풍부한 덕분에 1200~1500년엔 인구가 1만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 사이 주민들은 `모아이'로 불리는 그 유명한 거석문화를 일궜다. 높이가 수미터나 되는 사람 모양의 거석상 1천여개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1722년 네덜란드 탐험가가 이곳에 도착한 때의 인구는 2000~3000명 선으로 급감한 상태였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이스터섬의 모습은 괴상스럽기 짝이 없었다. 해안가에는 거대한 석상들이 늘어서 있었고, 벌판은 황량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력한 가설 가운데 하나가 자원 고갈론이다. 자원 소비량이 늘어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주민 갈등과 대립이 심해지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인구가 늘면서 소비가 자연의 수용력을 넘어선 것이다. 특히 거석문화가 몰락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거대한 모아이 석상을 해안가로 옮기기 위해 커다란 나무를 마구 잘라내면서 자연 생태계가 크게 망가졌다. 나무들은 석상을 옮기는 지렛대와 굴림대로 쓰였다. 번영을 구가하기 위해 만든 문명이 도리어 번영의 기반을 뒤흔드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스터섬의 인구 변화는 환경이 지탱할 수 있는 개체 수에 한계가 있다는 걸 말해준다. 미 로체스터대 애덤 프랭크 교수는 이스터섬의 사례에서 문명과 환경의 관계를 일반화할 수 있는 모델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그는 문명과 환경 사이의 작용-반작용 규칙을 알아낼 수 있다면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도 예측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데 착안했다. “100억조개가 넘는 행성이 우주에 있다면 지구가 첫 문명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지구의 종들이 사라진 것처럼, 그동안 번성했던 행성 문명도 이미 종말을 맞았을지 모른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는 포식자-피식자 간의 먹이사슬 관계를 원용해 만든 문명과 행성의 공진화 모델을 만들었다. 이를 지구에 적용하면 이렇다. 지구의 문명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 문명은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다. 문명은 인구를 늘리고, 인구는 화석 연료 소비를 늘린다. 그러나 공짜점심은 없다. 자원 소비는 지구의 반작용을 부른다. 반작용의 실체는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는 식량 생산을 줄인다. 지구가 지탱할 수 있는 인구 수가 줄어든다. 이는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압박한다.

한겨레

그러나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연구진은 몇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살펴봤다. 첫째는 자연 사멸이었다. 이 경로에선 예컨대 기후변화로 지구 온도가 빠르게 올라간다. 그러다 기온 상승으로 생존 조건이 악화하면서 인구는 정점을 찍는다. 행성의 수용력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프랭크 박사는 “많은 모델에서 안정 상태에 이르기 전에 인구의 70%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끝에 지속가능한 지구 문명은 달성되지만 비용이 너무 크다. 이스터섬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경로는 연착륙이었다. 인구가 늘면서 자연도 변화해 가지만 큰 재앙 없이 안정을 찾는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일찌감치 자원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때만 발생했다. 마지막은 `붕괴' 경로다. 자연이 문명의 영향을 견뎌내지 못하고 급속히 악화하면서 문명도 사라져 간다.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 바꿔도 시기만 늦춰졌을 뿐 붕괴에는 변함이 없었다. 대응이 너무 늦었던 탓이다. 프랭크 박사는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로 표면 온도가 섭씨 400도를 웃돌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 금성을 그 사례로 들었다.


최근 미 핵과학자회는 `운명의 날' 시계가 종말을 뜻하는 자정을 불과 2분 남겨둔 23시58분을 가리키고 있다고 발표했다. 1947년 `운명의 날' 시계 첫 발표 이후 종말에 가장 가까이 간 분침이다. 이들은 ‘운명의 날’을 재촉하는 2대 요인으로 핵무기와 기후변화를 꼽았다.


지구는 지금 어느 경로에 있을까?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안정을 찾으면서 인류 문명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명의 배반이라고 할까? 문명의 뒷배인 그 기후를 문명이 뒤흔들고 있다. 해안에 늘어선 모아이 석상은 인류의 화석연료 문명을, 망망대해의 이스터섬은 우주 속의 외로운 지구를 연상시킨다. 거석 문명을 추구하다 몰락한 이스터섬의 비극은 지구 문명의 미래를 경고하는 묵시록은 아닐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