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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김훈 “악다구니로 날 지새…남의 고통 공감 능력 사라졌다”

by한겨레

소설가 김훈, 하회마을 ‘인문캠프’ 강연


조화와 공존의 공동체가 하회마을 정신


“노동자들 죽음에 고통, 공감 느껴야” 강조

한겨레

“안동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곳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가장 격렬한 독립운동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독립운동은 전통적인 유림 사대부들의 권위와 지도력에 의해 전개되었습니다. 오늘 여기 하회마을에 와서 느끼는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런 전통의 힘으로 현실을 개혁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회마을이 우리 시대 전체에 던지는 무서운 질문이자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봉착해 있는 것이죠.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전통과 보수의 힘 안에 우리 미래를 열어젖힐 힘의 바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을 우리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잊어버리고 박멸시켜 버림으로써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죠.”


소설가 김훈이 1일 오후 경북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소나무 숲을 가득 메운 700여 청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1~2일 안동과 예천에서 열린 제1회 백두대간 인문캠프 중 핵심 프로그램인 초청 강연을 위해서였다. ‘하회마을, 비스듬히 외면한 존재의 품격’을 주제로 행한 강연에서 그는 우리 사회가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 “어수선하고 천박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 거짓말로 날이 지고 샌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혓바닥을 너무 빨리 놀리며 혀가 마음껏 날뛰게 내버려 둔다”고 그는 개탄했다.


강연 첫머리에서 김훈은 “하회마을은 집과 집들이 서로 비스듬하게 외면하는 듯하고, 집과 집 사이를 길들은 물이 흘러가듯 굽이쳐서 흘러간다. 또 이 마을은 물이 사람의 마을을 향해서 곧장 달려들지를 않고, 사람의 마을을 좀 어려워하는 기색으로 옆으로 빙 돌아서 나간다. 이처럼 산과 물, 물과 마을, 집과 집, 집과 길, 인간과 인간 등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약간 옆으로 비켜서 가며 조화를 이루는 곳이 하회마을”이라고 설명했다.


“이 마을에는 수백년 동안 양반과 상인 등 여러 계급들, 대립하는 문화들이 서로 부닥치지 않고 공존하면서 문화와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인간이 세상으로부터 격절되지도 않고 또 세상에 매몰되지도 않고, 남과 대립하지도 않고 남에게 매몰되지도 않으면서,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며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힘을 가진 곳이 하회마을입니다.”


그는 “퇴계의 도산서원은 인간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마을로부터 격절된 암자가 아니라 마을과 연결되어 있다”며 “세상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도산서원의 위치는 하회마을의 물리적 구조와 같다. 하회마을은 도산서원의 단순한 이념형을 인간의 생활 속에서 구현해 낸 구도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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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또 사고로 죽는 건설노동자들에 관해 최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는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너무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 나라에서 1년에 사고로 죽는 노동자가 2400명입니다. 추락, 폭발, 붕괴, 매몰, 중독 이런 것들로 해마다 2400명이 죽는 거예요. 내년에도 또 2400명이 죽어요. 2400. 생각을 해 보세요. 그건 눈에 보이게 죽는 거고, 노동 때문에 골병 들어 죽는 건 통계에 잡히지를 않아요. 그런데도 이런 일들에 대해 아무런 감수성이 없어요. 그냥, 으레 그러려니 하는 거죠. 전통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나 연민, 남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 그것을 상실하고 아주 천박하고 단명하는 잔재주의 세계로 들어온 거예요.”


김훈은 “이런 오래된 마을이 수백년 동안 함양해 온 덕성과 가치를 우리는 상실해 가고 있다”며 “그런 덕성과 가치를 어떻게 현대에 접목시킬 것이냐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이 없다. 나 자신이 무슨 대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 니다. 다만, 그런 고통을 여러분과 공유할 수는 있겠고, 그것만 해도 나는 아주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에 이어진 북토크에서 그는 “퇴계의 서원과 하회마을의 가르침을 개인 차원으로 치환하면 바로 ‘친절’이라 생각한다”며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고, 죽은 뒤에 친절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백두대간 인문캠프는 경상북도와 안동시, 예천군 등이 후원했는데, 이날 북토크에는 이철우 경북 지사가 깜짝 출연했다. 이 지사는 백두대간 인문캠프의 취지에 관한 질문에 “경상북도는 전통과 문화, 자연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데, 국내외적으로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북의 문화 자산에 대한 깊이 있는 소개와 접근을 위해 이번 인문캠프와 같은 인문학적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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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캠프 이틀째인 2일 오전에는 예천군 초간정에서 김훈 작가의 미니 강연이 이어졌다. 이 강연에서 그는 “평면적이고 납작한 아파트에 비해 전통 가옥은 인문적 깊이를 지니고 있다”며 “일상과 세상을 반성하는 태도가 바로 인문학”이라고 강조했다.


인문캠프는 김훈 작가의 강연과 북토크 외에 북뮤지션 제갈인철과 테너 황남석이 꾸린 작은 음악회, 독자들이 참여한 김훈 작품 낭독회, ‘백두대간’ 4행시 백일장, 안동 병산서원과 예천 병암정, 삼강주막을 비롯한 문화유산 답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짜여졌다. 백두대간 인문캠프는 다음달 6~7일 안도현 시인, 9월 28~29일 정호승 시인, 10월 12~13일 만화가 이원복 교수 순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안동·예천/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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