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치’로 활용된 소녀의 신산했던 삶

[컬처]by 한겨레

그림 속 여성

 

벨라스케스, ‘난쟁이와 함께 있는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

한겨레

디에고 벨라스케스, <난쟁이와 함께 있는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 캔버스에 유채, 1631년, 보스턴미술관

어느 날 우연히 ‘콤프라치코스’(아이들을 사고파는 사람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는 범죄조직을 알게 됐다. 이들은 17세기 빈민가의 어린이들을 납치해 일부러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아이들의 뼈에 물리적 힘을 가해 등 굽은 척추장애인으로 만들고, 비좁은 동물우리에 아이들을 가둔 채 밧줄로 모든 관절을 묶어 왜소증 장애인으로 만들었다. 흉측한 외모로 만들기 위해 아이 얼굴에 약물을 주입하기도 했다. 도대체 콤프라치코스는 왜 이러한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것일까.


17세기 유럽에서는 샴쌍둥이, 기형장애인을 구경거리로 내세운 ‘괴물쇼’가 성행했는데, 이 공연이 인기를 끌자 귀족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 장애 아동을 ‘수집’해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놀이문화가 생겼다. 문제는 귀족들이 원하는 ‘기괴한 장애 아동’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콤프라치코스는 장애 아동이 짭짤한 수익원이 되는 것을 간파했기에 기꺼이 납치와 고문까지 행하며 귀족들에게 장애아를 공급했다. 이렇듯 콤프라치코스라는 사회악은 장애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귀족들의 비뚤어진 소유욕으로 인해 탄생했다.


왕족이라고 달랐을까. 오히려 원조였다. 장애를 보는 어그러진 시선은 왕실 초상화에도 그 자취를 남겼다. 스페인의 궁정 화가였던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그린 <난쟁이와 함께 있는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가 대표적이다. 태어난 지 겨우 16개월 된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가 그림 중간에 서 있다. 화려하게 수놓은 예식용 드레스 위에 어깨띠와 금속 목가리개를 찬 채, 지휘봉과 단검을 손에 쥔 어린 왕자. 이 모든 건 그가 장차 스페인 왕이 되어 절대권력을 갖게 됨을 암시하는 장치이다.(하지만 이 왕자는 일찍 사망해 왕이 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왕자 앞에 한 소녀가 보인다. 마치 지나가는 사람이 사진 안에 잘못 들어온 것처럼 그려진 소녀는, 왕권을 상징하는 왕홀(王笏)과 보주(寶珠)의 어린이판 대용물인 딸랑이와 사과를 손에 들고 왕자의 의전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런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소녀는 왜소증 장애인이다. 왜 벨라스케스는 뜬금없이 왕자의 초상화에 ‘난쟁이’ 소녀를 등장시킨 것일까.


아마도 이 소녀는 궁정에 팔려왔을 것이다. 어쩌면 ‘선물’로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왜소증 아동은 왕족에게도 수집욕을 자극하는 ‘인기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값비싼 존재였던 만큼 궁정에서 왜소증 아동의 ‘쓰임새’는 전천후였다. 엄격한 예법대로 살아가는 왕족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살아 있는 장난감 취급을 받기도 했고, 어린 왕자와 공주가 무언가를 잘못해 벌을 받아야 할 때 대신 매를 맞기도 했다. 어느 날 궁정화가 벨라스케스가 왕자의 초상화를 그려야 한다며 소녀를 불렀을 때, 소녀는 아마도 자신이 감내해야 할 ‘오늘의 역할’을 눈치챘을 것이다. 왕자의 용모를 좀더 돋보이게 하는 열등한 비교품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예부터 유럽 왕실에는 초상화에 신체 장애가 있던 ‘난쟁이’를 부수적 인물로 그려 넣는 전통이 있었고, 왜소증 장애인들은 왕족의 고귀한 혈통을 부각하고 자긍심을 북돋아주는 ‘장치’로 활용돼왔기 때문이다.


한번도 ‘온전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 삶. 그 신산했던 삶을, 소녀의 그늘진 얼굴에서 단편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아마도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팔려간 수많은 아이들의 표정도 비슷했을 것만 같다.


이유리 예술 분야 전문 작가

2019.07.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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