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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지적이며 강하기 때문에 여자일 리가 없다?

by한겨레

세바스티앵 부르동, ‘말을 타고 있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

한겨레

일 잘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말들이 있다. “웬만한 남자보다 낫다”, “남자 못지않다”, “내가 본 여자 중 네가 가장”, “여자애치고”, “여자애가 대단하다”, “여자 아닌 것 같네”…. 이게 과연 칭찬일까? 이쯤 되면 ‘여자다운’ 것이란 도대체 뭔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하긴 여자답지 못해서 무덤까지 파헤쳐진 사람도 있다. 그림 속에서 사냥개와 매사냥꾼을 대동한 채 사냥터로 나서는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1626~1689)가 그 주인공이다. 얼핏 보면 여왕이 맞나 싶다. 매사냥꾼을 대동하고 사냥을 나설 정도면 지체 높은 사람일 텐데, 장식 하나 없이 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쳤으니 말이다. 치마를 입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채찍을 든 채 말을 탄 이 인물이 여성이라는 것을 겨우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티나는 옷이나 수공예품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운동과 승마, 곰 사냥이 취미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화가 부르동이 기록한 그림에도 그녀의 이러한 취향이 드러난다.


크리스티나는 구스타프 2세의 딸로 태어났다. 유산과 유아 사망의 마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였기에 그녀는 ‘왕자’처럼 키워졌고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열등한’ 여자가 나라의 통치자가 되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남자의 기술과 능력을 전수받아야 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녀는 초특급 우등생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고 4시간 이상 잠자는 법이 없었다. 일주일에 6일, 하루에 12시간씩 공부하며 크리스티나는 군사학, 행정, 철학 등을 깨쳤고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등 10개 언어에 통달했다. 공부 이외의 시간엔 검술·궁술 등 박력 넘치는 운동을 즐겼다. 그녀의 ‘넘사벽’ 재능은 주변국 왕자들의 기를 단단히 죽이고도 남지 않았을까.


1644년 18살 되던 해 드디어 왕위에 오른 크리스티나의 능력치는 극에 달했다. 공익기관을 설립해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을 보급했고 이탈리아 등지에서 600점이 넘는 미술품을 구매했다. 여러 대학을 설립했으며, 스웨덴 최초의 신문도 발간했다. 그녀는 진정한 ‘계몽 군주’였다. 그러나 주변을 놀라게 한 크리스티나의 행보는 이게 끝이 아니었으니, 왕위에 오른 지 10년이 되던 1654년 웁살라 성에서 열린 의정 회의에서 크리스티나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퇴위를 선언했다. 사촌인 칼 구스타프에게 왕관을 넘긴 뒤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 옷을 입었다. 그리고 검을 옆구리에 찬 채 백마를 타고 스웨덴을 홀연히 떠났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관 뚜껑이 열리게 된 이유였다. 스웨덴 생리학자 구스타프 엘리스 에센묄레르(1870~1956)는 1937년 <의학적 관점에서 본 인류학 연구>에서 “크리스티나 여왕은 완전한 여성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티나가 수학, 천문학, 고전문학, 철학과 같이 ‘남성적’ 학문에 뛰어났으며, 국가를 다스리는 능력과 목표를 집요하게 좇는 능력이 탁월했고, 외모 꾸밈에 관심이 없으며 결혼을 거부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에센묄레르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작가 스벤 스톨페(1905~1996) 등 많은 이들이 지적이고 독립적이며 강력한 통치자의 특성과 ‘여성성’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끊임없이 제기된 의혹 때문에 크리스티나는 죽은 지 약 300년 후인 1965년 결국 무덤 밖으로 강제로 끌려 나왔다. 그녀는 디엔에이(DNA) 정밀조사를 받고서야 비로소 여성임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여전히 ‘나는 여성스럽지 않다’며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당신이 여자면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여자다운 행동이 되는 것이다. 여자 맞냐고 눈치 주는 그들이 틀린 것이다. 크리스티나가 이미 증명해냈듯이.

이유리 예술 분야 전문 작가.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검은 미술관> 등의 책을 썼다.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코너에서 ‘여자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sempre8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