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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이게 20년 전 노래가 아니라 최신곡이라고?…힙한 ‘복고놀이’

by한겨레

1990년대 스타일 음악 박문치·기린

박문치 대학 때부터 레트로풍 작업

기린 ”어릴 적 음악이 가장 멋있어”

공동작업으로 걸그룹 ‘치스비치’ 선보여

SES 핑클 연상시키는 앨범·뮤비로 눈길

한겨레

‘이거 신곡 맞아? 20년 전 노래 아니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듣다 보면 발매일을 재차 확인하게 만드는 노래들이 있다. 걸그룹 치스비치가 지난달 발표한 첫 싱글 ‘써머러브’가 딱 그렇다. 듣자마자 1990년대 에스이에스(S.E.S.)나 핑클이 떠오른다. 앨범 표지와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다. 한껏 예쁜 척하는 4명의 멤버를 얼마나 ‘뽀샤시’ 처리했는지 화면에 김이 서린 줄 알았다.


치스비치는 홍익대 앞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치즈·스텔라장·러비·박문치가 결성한 프로젝트 걸그룹이다. 90년대 음악을 염두에 두고 프로듀싱을 맡은 이는 제일 막내인 1996년생 박문치(본명 박보민)다. 그는 동아방송예대 실용음악과 재학 시절 기말 과제로 만든 90년대 스타일의 ‘울희액이’가 좋은 반응을 얻자 이를 정식 음원으로 발표했다. 새내기를 향한 복학생의 부담스러우면서 절절한 사랑 얘기를 코믹하게 담아낸 노래다. 이후 ‘네 손을 잡고 싶어’ 등 꾸준히 90년대 스타일의 댄스음악을 발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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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만든 ‘울희액이’를 다들 너무 좋아해서 제대로 파보자 마음먹었어요. 유튜브로 옛날 음악 영상을 찾아보니 너무 신선하고 재밌더라고요. 어차피 내가 음악으로 크게 성공할 것도 아니니 100% 재미 추구형으로 해보자 해서 90년대 스타일로 간 거죠.” 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박문치가 말했다.


그가 지난 4월 내놓은 최근작 ‘널 좋아하고 있어’는 90년대 혼성그룹 쿨과 유피(UP)를 떠올리게 한다. 박문치의 이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이가 1985년생 기린(본명 이대희)인데, 그는 2009년 데뷔 이후 10년째 한 우물만 파왔다. 복고풍 댄스음악으로 시작해 90년대에 유행한 뉴잭스윙, 힙합, 리듬앤블루스, 하우스 장르의 신곡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초등학생 때 룰라를 좋아했는데, 히트곡 중 상당수를 이현도라는 작곡가가 만든 걸로 나오더라고요. 누군지 알아보니 듀스 멤버였고, 그렇게 듀스의 음악에 빠져들게 됐어요. 제가 일부러 레트로 음악을 하는 건 아니고,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하다 보니 그게 듀스로 상징되는 뉴잭스윙이 된 거죠.” 기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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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뉴트로(뉴+레트로) 음악을 한다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이처럼 동기에선 차이가 있다. 90년대생 박문치는 신선하고 재밌어서, 80년대생 기린은 어릴 때 접한 음악이 지금도 가장 멋있다고 생각해서다. 뉴트로 음악을 즐기는 이들도 세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어린 시절 90년대 음악을 접한 세대는 추억과 향수를 이유로, 90년대 음악을 요즘에야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는 새롭고 신선한 놀이 문화의 하나로 즐긴다.


뉴트로 음악을 즐기는 데 있어 영상도 중요한 요소다. 유튜브로 과거 방송이나 뮤직비디오를 찾아서 보는 걸 넘어, 기린과 박문치는 90년대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새롭게 만든다. 기린은 최근 발표한 하우스 장르의 신곡 ‘예이 예이 예이’ 뮤직비디오를 과거 방송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사랑해 스튜디오> <티브이는 사랑을 심고> 형식으로 찍었다. 여기에 박문치가 사회자로 출연했다. 박문치가 속한 걸그룹 치스비치의 ‘써머러브’ 뮤직비디오도 90년대풍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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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은 유튜브에 있는 이들 뮤직비디오에 ‘뉴트로 댓글’을 달며 또 다른 놀이문화를 파생시킨다. 지난 2일 공개된 따끈따끈한 치스비치 뮤직비디오에 “국민학교 5학년 때 극기훈련 가서 치스비치 따라한다고 ‘써머러브’로 장기자랑 같이 했던 친구들, 이젠 다 아줌마가 됐네요. 추억이 총총…”이라고 댓글을 다는 식이다. 기린 뮤직비디오에는 “고3 때 매일 듣던 노래였는데 벌써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네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김봉현 대중음악평론가는 “90년대의 추억이 없는 20대가 뉴트로 음악과 영상을 즐기는 건 신기하고 멋있고 재밌다고 여겨서다.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뉴트로 콘텐츠가 자극하는 것이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최신 스타일에 흥미를 못 느끼는,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 뉴트로 콘텐츠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긍정적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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