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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만병통치 돌멩이?…1930년대 풍미한 ‘라듐’ 유사과학

by한겨레

마리 퀴리가 발견한 방사능 물질

푸른빛 야광 광물에 뜬소문 난무

근대 과학기술 유입기의 한 풍경

한겨레

돌멩이 하나를 헐값에 사서 2000배의 이윤을 남기고 되판다면? 1933년 2월호 ‘신동아’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꽁트 한 편이 실렸다. 작가는 당시 동아일보에서 내던 잡지 ‘신가정’의 기자 김자혜. 그는 훗날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작가 주요섭과 결혼했는데, 두 사람은 원래 동아일보 직장 동료였지만 사내 연애 금지 방침 때문에 각자 퇴사한 다음 중국으로 건너가 혼인을 했다고 한다.


김자혜가 쓴 콩트의 제목은 ‘라듸움’이다. 오늘날 우리가 ‘라듐’으로 알고 있는 그 방사능 원소 맞다. 시골 박첨지가 살림이 궁해지자 평소 영험한 효능이 있던 돌멩이를 팔아보려 하지만 미친놈 소리만 듣는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객줏집에서 만난 장돌뱅이가 서울에는 돌을 사는 곳이 있다며 같이 가 보자고 한다. 이틀 길을 걸어 도착한 서울에서 일본인이 하는 시계점을 찾아갔더니 과연 주인은 돌을 살펴보고는 야릇한 웃음을 띠며 값을 묻는다. 결국 박첨지는 흥정 끝에 1원 지폐 한 장을 받아 나오고, 장돌뱅이에게 10전을 떼어 주고 남은 돈 90전을 갖고 서울 유람까지 마치고는 뿌듯한 미소로 귀갓길에 나선다. 그 시간에 시계점의 일본인 주인은 광물분석소에서 연락을 받는다. 맡긴 돌멩이에는 라듐이 다량 포함되어서 시가가 2000원쯤 한다는 것이다.


씁쓸한 골계미가 느껴지는 이 콩트는 물론 서양 과학기술 문물이 한창 유입되던 시대의 한 스케치로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당시의 사이비 과학까지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어 더더욱 흥미롭다. 콩트 속 박첨지에 따르면 그 돌은 일종의 영약이어서 배를 앓는 이가 있으면 돌을 삶은 물을 마시고 낫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우리나라에 그런 사례가 민담으로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당시 서양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화장품이나 약품에 첨가제로 들어가기도 했고 라듐이 함유된 생수나 초콜릿 등이 판매되기도 했다. 특별 관리되었어야 마땅할 위험천만한 방사능 물질이 왜 건강보조제 취급을 받았던 것일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라듐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과 화학으로 2회 수상) 마리 퀴리다. 이 물질은 야광 성질이 있어서 어두운 곳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을 뿜었다. 라듐이라는 이름도 ‘빛줄기’라는 의미의 라틴어 ‘라디우스(radius)’에서 왔다. 빛을 내는 신기한 광물이 새롭게 알려지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빛을 쬐면 건강에 좋고 노화도 방지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섭취하는 지경까지 갔다. 방사능의 무시무시한 부작용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시대의 어처구니없는 비극이었다.


박첨지의 돌을 산 곳이 시계점인 이유도 있다. 라듐은 야광 성질 때문에 시계 숫자판의 형광 도료로 널리 쓰였다. 그런데 당시 시계에 형광 붓칠을 하던 사람들이 붓끝을 입에 넣어 다듬곤 하면서 점점 몸이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결국 빈혈이나 괴사, 골절 환자가 속출했다. 사실 이 콩트가 발표된 1933년 당시에 이미 미국에서는 라듐 방사선 피폭으로 돌이킬 수 없이 건강을 잃은 젊은 여성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오늘날 ‘라듐 걸스(Radium Girl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퀴리 부인도 오랜 세월 라듐에 노출된 채 연구를 한 탓에 방사능에 의한 여러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방사능 해악이 드러난 뒤 식품은 물론이고 형광 도료 등 모든 생활 분야에서 라듐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에는 대신 삼중수소(트리튬)를 쓰는데, 이 물질은 수소의 방사성 동위원소로서 내뿜는 방사선이 매우 약해서 위험은 사실상 없다. 그러나 어쨌든 체내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다고 한다. 요즘 시계 문자판의 야광 도료나 권총, 소총 등의 가늠쇠에 붙어 있는 야광 물질은 모두 다 삼중수소이다.


온천이나 사우나 등에 가면 라듐이나 라돈이 들어간 물이라고 적어놓은 경우가 있었다. 라돈은 라듐이 변하면서 기체가 된 것으로, 라듐과 마찬가지로 매우 위험한 방사성 물질이다. 한때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 안전한 수치의 적당한 방사선은 신경통 등에 효능이 있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의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방사능 물질은 무엇이든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자연 방사선이 적잖이 존재하고 건축 재료 등에도 축적된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