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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월간 쉼표 토크⑥-장항준의 김은희

장항준 "반지하 쌀 한톨 없던 그때도 우린 즐거웠어요"

by한겨레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 몸과 마음의 지침을 당연하다 여기지는 않나요? ‘월간 쉼표토크’는 매달 첫주 월요일,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과 위로를 찾는 문화예술인들을 소개합니다.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합니다.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는 늘 함께하며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 부부는 늘 웃고 산다. 지난달 30일, 몸도 마음도 허해지는 겨울을 앞두고 장항준 감독을 만나 즐겁게 사는 비법을 물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오빠, 사는 게 너무 즐겁지 않아?”


지난해 서울 종로의 한 허름한 치킨집. 맥주를 마시던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며 건배 제스처를 취한다. 가볍게 잔을 부딪친 남자는 이내 한 모금 마시더니 행복한 표정으로 여자를 응시했다.


“즐겁지, 즐거워! 우리 계속 이렇게 즐겁게 살자.”


사는 게 즐겁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 괴로워”를 입에 달고 다니는 게 우리고, 사실 별로 즐거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게 현실인데. 그런데 이 두 사람, “즐겁다” 말하는 표정이 정말로 즐거워 보인다. 여자는 김은희 드라마작가이고 남자는 장항준 영화감독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마주한 장항준 감독에게 “어떻게 인생이 즐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 부부의 가훈이 ‘인생은 여름방학처럼’이거든요. 이 고비만 넘기면 여름방학이 기다리고 있다.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다. 그런 방학 전날 밤의 설렘을 안고 살자는 거죠. 그 마음이 사람을 버티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인생을 즐겁다고 느끼기까지는 흔히 좌절을 딛고 성공했다는 인간 승리 사연이 동반되지만 이 부부는 ‘본투비’다. 부부도 무명에서 출발해 큰 성공을 거두고 돈도 많이 번 ‘히스토리’는 갖췄는데, 그게 인생이 즐거운 데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둘 다 성격 자체가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에요. 반지하에서 쌀 한톨 없던 시절에도 우리는 즐거웠어요. ‘은희야, 쌀이 떨어졌네’ ‘아, 그렇구나’ ‘친구들한테 쌀 들고 오라고 하자’ 그러면서. 하하. 어쩌면 우린 그때가 더 행복했어요.” 장항준 감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욕망이 탐욕을 불러오는데, 우리는 돈에 대한 욕망 자체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늘 웃는 그에게 즐겁게 사는 비법을 물어보려고 ‘쉼표, 토크’에 초대했는데 타고난 성격이라니. 그럼 비법은 없는 걸까! 아니 비법은 있다. 바늘과 실처럼 늘 옆에 있어서 느끼지 못할 뿐,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비법이다. 인터뷰 내내 말끝마다 ‘김은희’ 세 글자가 따라다녔다. “하하. 맞아. 은희가 나의 힐링이죠. 은희와 있을 때 가장 즐겁고 맘 편해요. 은희와 연애하면서부터 우린 24시간 붙어 다녔어요. 어딜 가든 서로 데리고 다녔죠. 오히려 성공하고 나서 각자 작업실이 생긴 요즘 서로 떨어져 있게 된 거죠.”


함께 있을 때 즐거운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제 같은 존재, 그게 바로 장항준에게 김은희다. “은희는 저의 제일 친한 친구예요.”


늘 웃고 사는 긍정맨 장항준 감독

아내이자 인생 친구 김은희 작가와 늘 함께가 비법

“우리의 목표는 즐겁게 사는 것.

오늘만 넘기면 방학, 설렘 안고 살면 인생은 즐거워”


“즐거운 인생? 함께 있는 사람의 존재가 중요”

김은희에겐 장항준, 장항준에게 김은희가 그런 존재

“내내 붙어 다니고, 쉼없이 대화…

사람은 사람에게 치유받을 수 있다”


예능 선후배 작가로 만나 각각 감독과 작가로 성공

김은희 작가 ‘시그널’로 승승장구하자

“대단한 작가” 함께 기뻐하며

바쁜 아내 대신 가정 돌보기도


‘김은희 남편’ 이전에 ‘감독 장항준’

“도서관 살다시피 읽은 책들 덕분

”장르 넘나드는 독창적 작품 세계

일 안풀릴 때 위로받는 비법 역시 김은희

장항준 감독은 “사람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 내 농담을 듣고 웃는 얼굴을 보면 나도 즐거워진다”고 했다. 자신의 얘기에 가장 잘 웃어주는 이가 김은희 작가다. “은희를 계속 웃겨주고 싶어요.” 장항준 감독 제공

두 사람은 장항준 감독이 <에스비에스>(SBS) 예능작가로 일할 때 처음 만났다. 김은희 작가가 장항준 감독의 보조작가로 들어왔다. 김은희 작가는 사수가 노느라 회사에 나오지 않아 한참 동안 첫 대면을 못 했다고 한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그랬었나 보더라고요. 하하.” 장항준 감독의 김은희 작가에 대한 첫인상은 “예쁘다”였다. “은희가 그때 커트 머리였는데 너무 예뻤어요. 그게 뭐 사랑의 감정은 아니었지만. 하하.”


그렇다면 운명이었나 보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좋아졌고 장항준 감독이 고백했고, 연애를 시작했고,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했다. “전 가정을 너무 꾸리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은희는 결혼 생각 자체가 없었는데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오빠랑 하고 싶다고 생각했대요.” 김은희 작가는 일이 우선인 쪽이라면 장항준 감독은 가정이 우선이다. “은희가 바쁘니 제가 아이 숙제를 챙기고 놀아줘요. 은희에게 가사노동의 책임을 지우고 싶지 않아요. 누구든 덜 바쁜 사람이 하면 되는 거니까.” 부부가 손발이 척척 맞다.


두 사람은 사랑의 동반자를 넘어 일로도 꼭 만났어야 할 사람처럼 느껴진다. 서로가 있어 ‘감독’과 ‘작가’로서 동반 상승했다. “제가 3~4년간 감독 데뷔를 못 하자 아버지가 다른 일을 해보라고 권했는데 ‘항준 오빠 반드시 감독된다’며 1년만 더 지켜봐달라며 말린 것도 은희였어요. 은희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지금의 김은희 작가가 탄생한 것도 어쩌면 장항준 감독을 만났기 때문일 수 있다. 예능작가로 시작한 김은희 작가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가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줘야 하는데 타자를 못 쳤어요. 그래서 은희한테 부탁했죠. 은희가 타자를 쳐주면서 대본 쓰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 보인다고 관심을 갖더라고요.” 장항준 감독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일을 소개해주는 등 ‘외조’를 톡톡히 했다. 창작 관련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드라마작가 학원에 다니지도 않은 김은희 작가는 대본 집필법을 장항준 감독에게 배운 셈이다. 장항준 감독의 `저질 타자 실력'이 `거장 작가'를 깨운 걸까.

<유령> 방영 당시 누리집 ‘디시인사이드’ 갤러리(팬들이 모인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의 애교 만점 사진. 부부는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겁다고 한다.

어쨌든 그래서 그 ‘덕’을 지금 보고 있다. 오랫동안 김은희 작가가 ‘장항준 아내’로 불렸다면, 이젠 그가 ‘김은희 남편’이라 불린다. 김은희 작가가 <시그널>로 큰 성공을 거두고 나서부터 장항준 감독의 인생은 ‘기-승-전-김은희’로 이어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은희의 안부를 묻고, 은희를 데려오라고 하고, 제 작품을 은희가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해 하죠. 하하.” 한두번도 아니고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듯 개구지게 웃었다. “아니 카드를 주잖아. 카드. 돈은 은희가 벌고, 카드는 내가 쓰고. 하하.” 그답게 농부터 치더니 이내 속내를 털어놓는다. “우리 동네 어떤 사람이 유명해져도 기분이 좋잖아요. 근데 그 유명한 사람이 나랑 같이 살아. 얼마나 좋아요? 자랑스럽죠.” 장항준 감독은 “은희가 <시그널>을 했을 때 엄청난 작가가 되겠구나 생각했다”며 “그때 은희가 내 수입을 처음으로 추월했다”고 말했다. 아내이지만 작가로서 본받을 점도 많다. “은희는 정말 먹고 자는 것 빼고는 일만 생각해요. 끈기와 노력이 대단하죠. 존경스러워요. 전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를 못해요. 하하. 그래서 전 작가보단 감독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는 최근 김은희 작가가 자신과 어떤 작업을 함께 해보자며 제안했을 때도 이렇게 말했단다. “은희야, 왜 하향평준화하려고 해. 더 좋은 감독과 해야지.”


“은희가 정말 나 말고 좋은 감독과 일했으면 좋겠다”며 스스로를 낮추지만 장항준 감독을 ‘김은희의 남편’으로만 두기에는 서운하다. 장항준 감독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이야기꾼’이다. 예능프로그램 <좋은 친구들>로 단숨에 인기 작가로 떠올랐고, 1996년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쓴 <박봉곤 가출 사건>으로 주목받는 시나리오작가가 됐다. 이후 “영화는 감독의 장르”라는 걸 깨닫고 2002년 <라이터를 켜라>로 감독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데뷔작마다 성공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하하.”

김봉규 선임기자

말로는 대충대충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지금의 장항준 감독이 있기까지는 남모를 노력이 있었다. 그는 대학 때 매일 도서관에서 살며 온갖 책을 섭렵했다. “20대 때는 미친 듯이 공부했다. 하루에 두권씩 책을 읽었다. 잠도 안 자고 습작을 했다”며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너무 좋아했다”고 말했다. “소설과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게 해준다면 인문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해줘요. 작가를 꿈꾸든 감독을 꿈꾸든 책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는 “그 밑천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며 웃었다. 그게 자양분이 되어 <싸인> 같은 장르물을 만들고 <불어라 봄바람> 같은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기억의 밤> 같은 스릴러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그때그때 재미있는 것을 한다”고 했다. 최근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또 한편의 장르물을 작업 중이다.


물론 초반에 운을 다 써서인지 감독으로서 크게 흥행한 작품이 많이 없는 것은 그에게도 숙제다. 그도 “오랫동안 코미디를 했더니 사람들이 나를 코미디 감독으로만 보더라”고 했다. “<싸인> 이후 장르물을 하고 싶었는데 계속 코미디만 들어와 한동안 시나리오 작업 의뢰를 받지 않았어요. 그러다 여러번 엎어지기를 반복하며 하게 된 게 <기억의 밤>이었죠.” 그는 “묵직한 작품을 하던 사람은 코미디 기회를 얻는 건 쉬운데, 코미디를 하던 사람은 묵직한 작품의 기회를 얻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작품이 숱하게 엎어질 때마다 그를 위로해준 것 역시 김은희 작가였다. 늘 웃고 다니는 밝은 모습 때문에 때론 손해도 본다. 투자자들은 그래서 그가 예능에 나가는 걸 원치 않는다. 감독 하면 떠오르는 근엄한 ‘척’을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여기서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성격이 나온다. “친구들 부탁을 안 들어줄 수가 없어서. 예능은 부탁으로 나가는 거거든요. 제가 더 잘하면 되겠죠. 여러가지로. 하하.” 긍정왕 장항준이다.


장항준 감독은 인터뷰 내내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도 껄껄 웃어넘겼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그는 정말 어떤 시샘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아내가 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물론 가계부도 직접 쓴다. 많은 것을 나눠주고 돌려주려고도 노력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그 마음이 지금의 그와 부부를 있게 했다. 두 사람은 시청자들, 관객이 좋아해서 벌 수 있었던 수익을 좋은 일에 다시 쓰고 있다.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하는데 돈을 잘 쓰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게 한다. 주변에서 ‘럭셔리’한 권유도 많이 받지만 그들은 한사코 거부한다. “오버하지 말자”며 서로를 견제한다.


‘부부는 전생에 원수’라고 말하는데 실은 ‘절친’이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 누가 옆에 있느냐가 인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가정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구분 짓고 돈으로 가정이 깨지는 걸 숱하게 보는 시대에 부부의 모습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니 장항준 감독이 웃으며 말한다. “아, 안 돼. 우릴 그렇게 착하게 싣지 말아줘요. 우리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에요. 은희는 착하지만. 하하하.” 기-승-전-김은희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