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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책&생각] 강인욱의 테라 인코그니타

우리는 식인종과 얼마나 다른가

by한겨레

식인의 풍습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적에 대한 증오 담은 식인 풍습은 미개함의 문제와 별개

제국주의 이후 카니발리즘 본격화해 여성·노약자 대상 대량학살 참극 빚어

독일 군인 출신이었던 한스 슈타덴이 묘사한 대로 그린 브라질의 식인 풍습. 그의 이야기는 선정적인 그림과 함께 유럽에 널리 퍼져서 신대륙에 대한 편견을 심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1593년 판. 강인욱 제공

식인종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미개로 대표되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의 원시인들이 그들을 교화하러 온 서양인들을 삶아 먹는 장면들을 떠올리며 살았다. 이러한 이미지는 자신들의 침략을 합리화하고 세계를 제패해온 서구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지난 100년 넘게 우리의 선입견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인류 역사에서 식인의 풍습은 드물지만 꾸준히 존재했다. 지금도 여러 고고학 발굴에서 사람을 먹은 흔적이 두루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식인의 풍습과 미개함은 관계가 없다. 식인의 배경에 깔린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적에 대한 증오는 단순한 미개함의 문제가 아니다. 식민지를 만들며 대량학살을 하는 근대를 거쳐 현대사회로 오면서 더욱 잔혹하고 교묘하게 식인의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살을 베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베어내는 지금이 더욱 잔인한 식인의 시대일 것이다.


식인 풍습을 뜻하는 ‘카니발리즘’이라는 단어가 축제를 뜻하는 ‘카니발’의 어원이 될 정도로 인간의 삶에서 서로 죽여서 뜯어 먹는 식인에 대한 공포가 공공연히 존재해왔다. 요즘 정서로 볼 때 식인 풍습은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쾌하게 느껴지지만, 실제 식인의 풍습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음이 고고학 발굴로 확인된다. 2018년 서부 시베리아 바라바 평원의 우스티-타르타스라는 8천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도 식인 흔적이 발견되었다. 내가 유학 시절 주로 발굴하기도 했던 시베리아의 대평원 지역은 너른 평지에 늪과 숲이 많다. 모기가 많다는 단점도 있지만 대신에 민물농어 같은 물고기와 사냥감과 땔감이 풍부한 자작나무숲에 둘러싸여서 고대부터 살기에 아주 유리했다. 그런데 당시 집터 근처의 쓰레기 구덩이에서 불을 먹은 흔적이 뚜렷한 어른과 아이의 뼛조각들이 여러 동물과 생선뼈 사이에서 나왔다. 발굴팀은 신중하지만 단호하게 이 뼈들이 조각내어 불에 태워서 제사에 쓴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식인의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우스티-타르타스 유적의 인골. 어른의 뼈 위에 놓여 있는 아이의 무덤으로 인골을 가공해 다시 무덤에 묻었던 흔적이다. 강인욱 제공

이 유적이 만들어지던 당시 서부 시베리아는 기후가 온화하여 식량이 넘치도록 풍부했다. 굳이 사람을 잡아먹을 이유가 없었다. 답은 무덤에 있다. 신석기시대 무덤은 하나의 무덤에 몇 명이 묻히기도 하는데, 전체 인골이 아니라 일부분만 묻혀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 어른들의 넓적다리뼈를 마치 평상처럼 깔고 그 위에 어린아이의 인골을 묻은 것도 있다. 인골의 일부만 묻는 경우도 허다했다. 시베리아는 1년의 3분의 1이 추운 겨울이다. 그러니 추운 때에 죽은 사람은 당장 묻지 못하고 따로 안치해두었다가 날이 풀리면 뼈만 추려서 묻을 수밖에 없다. 최근까지 우리나라 남해안에 남아 있는 초분에도 비슷한 풍습이 남아 있다. 기나긴 겨울에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자신들이 함께하기 위하여 그 살점을 떼어내어 제사를 지내고 불에 태워 떠나간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징그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최근 서양을 중심으로 퍼지는, 죽은 사람을 화장하고 남은 재로 반지를 만드는 풍습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식인 풍습은 죽은 자를 떠나보내지 않고 함께하려는 당시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너의 췌장’과 제갈량의 만두

식인 풍습은 적에 대한 증오심의 표출보다는 산 사람들이 먼저 간 사람의 육신 일부를 자기에게 체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얼마 전 일본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 제목만 봐서는 식인종을 연상시키지만 정작 내용은 췌장암에 걸린 소녀와 그를 사랑하는 소년의 애틋한 사랑이다. 아픈 부위를 먹으면 낫는다는 예전부터 전해오던 속설에서 기원한 것이다. 또한 에밀레종이나 명검을 만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오나라의 간장과 막야의 이야기처럼 인신 공양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희생을 의미했다. 식인 풍습도 그런 희생의 일부로 발현되기도 했다. 중국의 춘추시대인 기원전 7세기에 위(衛)나라의 무능했던 왕인 의공(懿公)은 사람 대신에 학을 키우며 좋아하다 결국 북쪽에서 내려온 유목민족에게 살해되었다. 죽음을 지켜본 충신 홍연(弘演)은 주군의 시신에서 간을 꺼내 자신의 배에 집어넣고 자결했다. 무능했던 자신의 주군을 위해 스스로 관이 되어서 제사를 잇겠다는 충성이었다. 무덤이 없다면 사직종묘를 제대로 계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직종묘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고대 중국에서는 가능했던 생각이었다.

인신 공양을 위해 제물을 매단 모습. 뎬국의 스자이산유적. 강인욱 제공

물론, 인간에 대한 적개심으로 다른 사람을 죽여서 그들의 살점을 먹고자 하는 잔인함도 존재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만두도 식인 풍습을 암시하는 ‘오랑캐의 머리’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한다면 적의 머리를 베고 제사나 의식상에 올려놓는 풍습과 관련이 있는 음식이다. 흔히 만두의 기원을 중국 서남부 지역의 오랑캐를 정복하던 제갈량이라고 한다. 제갈량의 촉군이 남쪽 오랑캐들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에게 목을 베인 오랑캐의 영혼이 노하여 강물이 험해졌다. 그러자 제갈량이 자기들이 죽인 오랑캐 군사들을 달래기 위해서 겉은 밀가루 반죽으로 싸고 속은 고기로 채운 머리 형상을 만들어 빼앗은 머리를 돌려보내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참 뒤인 송나라와 원나라 때 지어낸 이야기다. 하지만 오랑캐의 머리를 잔인하게 자르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실제 고고학 자료로 증명되었다. 제갈량이 활동했던 촉나라는 지금의 쓰촨 지역이고 그들이 토벌한 지역은 그 남쪽인 윈난성과 타이(태국) 북부의 산악지역이다. 윈난성의 서부 일대에 약 2천년 전 뎬국(Dian Kingdom)이 실제로 있었다. 이들은 엄청나게 호전적이어서 서로 잔인하게 죽이고 다녔다. 적의 머리를 사냥하는 장면은 이 뎬국 사람들이 즐기던 옷 장식이나 귀중품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적을 매달아 죽이며 잔치를 지내는 장면들도 생생하게 청동기에 남아 있다. 만두라는 명칭은 전쟁이 격화되면서 생겨난 잔인한 카니발리즘의 발로인 것이다.

사랑에서 식인으로

최근 발굴 자료의 분석기법이 좋아지면서 식인의 증거는 사방에서 발견되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의 후기 구석기시대인 고프(Gough) 동굴에서도 발견되었다. 역사 기록에도 기아가 들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人相食)는 구절이 심심찮게 나온다. 아마 식인이라는 풍습은 드물긴 해도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삶과 함께해왔던 것 같다.


다양한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서 등장하는 식인을 한마디로 단언하거나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식인 풍습을 혐오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데 있다. 다른 집단을 살상하면서 그들은 ‘식인종이라 없애도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식이다. 한국에서 한동안 회자되었던 <중국의 식인문화>라는 책을 보면, 지난 5천년간 중국인들은 서로 잡아먹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는 선정적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일각에서는 지은이가 정식 사학자라는 식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중국계 일본인 고분유(중국이름 황원슝)로, 사학자가 아니라 혐중과 혐한을 주된 주제로 삼는 극우작가이다. 그는 난징(남경)대학살은 없었으며 한국은 사실 일본이 모두 만든 것이라는 식의 글을 써내는 사람이다. 극우작가가 중국의 식인문화를 쓰는 배경은 결국 일본의 침략을 은폐하고 식민지화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다.

그림 4. 적의 목을 따고 가족들을 끌고 가는 뎬국의 병사. 윈난 스자이산 출토. 강인욱 제공

한편, 신대륙에서는 마야의 인신 공양이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잔혹한 그들의 풍습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아포칼립스> 같은 유명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식인을 검색하면 나오는 게 대부분 마야인에 대한 것일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가 식인종으로 폄하했던 아메리카대륙 원주민들은 서양인들이 저지른 대량학살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학자들은 여러 통계에 근거해서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할 당시 신대륙 전체 인구는 약 6천만명 정도라고 추산한다. 이후 100년도 안 된 사이에 그 인구는 90%가 줄어 500만명 남짓한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10명 중 9명이 죽어버린 이 일은 구대륙에서 옮겨온 각종 전염병과 잔혹한 학살의 결과였다. 이러한 행태가 진정한 식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마야인들을 잔인한 식인종이라고 강조하는 일은 정작 그들을 실제 죽인 서양인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거두고 학살을 정당화하는 꼴이 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카니발리즘은 서로에 대한 공격이 더욱 극렬해진 근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지금의 식인 풍습이 과거와 또 다른 점은 바로 그 희생의 대상에 있다. 현대의 식인과 학살은 힘이 없는 민간인, 특히 대항하기 어려운 여성과 노약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그 규모도 더욱더 대형화하고 있다. 실제 사람의 몸을 훼손하지 않을 뿐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만연하고 있다. 익명에 숨어서 가짜뉴스와 댓글로, 또 개인이 쉽게 저항할 수 없는 제도와 경제력으로 타인에게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주는 일이 만연해 있다. 오히려 식인 풍습은 현대사회로 오면서 더욱 대규모로 그리고 잔혹하고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식인종이라며 변방의 사람을 매도하기 전에 서로의 마음을 베어내는 지금 식인의 시대를 반성해야 옳지 않을까.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