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 합격 못해도 ‘법 앞에 평등’ 알릴 수 있죠”

[비즈]by 한겨레

법 채널 유튜버 박남주씨


사시 도전 접고 서른살 중소기업 입사

“법대 나와 뭐하냐 ‘조롱’에 우울증”

‘알바’로 게임 영상편집하면서 극복

“내안의 ‘관종’ 발견하고 유튜브 결심”


2017년초부터 ‘법알못 가이드’ 개설

구독자 12만·조회수 천만 돌파 ‘인기’

“한 번만 더 마셔주라. 동영상을 못 찍었어.” 2015년 여름 한 고깃집. 상사가 소주를 가득 채운 맥주잔을 내밀었다. 입사한 지 석 달도 채 안된 신입사원 박남주(34)씨는 거부할 배짱이 없었다. 그는 단숨에 소주를 ‘원샷’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속을 게워내고 돌아왔더니 이런 얘기가 들렸다. “저 새끼, 고대 법대 나와서 여기서 뭐하냐?”


사법고시에 실패하고 서른살에 처음 들어간 중소기업. 그는 그곳에서 일한 9개월 동안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얻었다. 법대 졸업장이 오히려 조롱거리가 됐다. “죽을까봐 회사를 나왔어요. 정말 죽을까봐. 퇴사하고 자취방을 빼는데 ‘내 인생 정말 실패했구나’ 싶더라고요.”


퇴사 후 석 달 간은 암흑이었다. 어두컴컴한 방에 틀어박혀 밤이고 낮이고 게임만 했다. 박씨가 방문을 열고 나온 건 ‘영상 편집’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어 좋아하던 게임 유튜버에게 스트리밍 영상을 편집해 주겠다고 제안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 마감은 지켜야 하니까 꾸역꾸역 일했고 그러다보니 서서히 정신이 들더라고요.”


현재 유튜브 채널 ‘법알못 가이드’를 운영하는 그가 유튜브에 처음 발을 들인 사연이다.


정신을 차리자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대학시절 교내 밴드 동아리 보컬로 활동한 기억, 대학 수업 때 발표자로 나섰다 기립박수를 받은 추억이 차례로 소환됐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잘하고, 주목받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한 마디로 ‘관종’(관심종자의 줄임말)이죠. 유튜브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주제 선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학 4년에 사법고시 2년6개월, 20대를 바쳐 공부한 ‘법’이 떠올랐다. “지인이 범죄 피해를 당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더라고요. 법을 전공한 제게 고소장 쓰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구나 싶었어요. 전화로 설명하다가 내친김에 영상으로 만들어보자 싶어서 첫 영상을 찍었어요. ”


고소장을 쓰는 장면을 ‘클로즈업’하면서 하나하나 설명하느라 첫 촬영에 무려 14시간이 걸렸다. 영상 밑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당하기만 했는데 이젠 참지 않고 고소할게요.’


2017년 2월 처음 영상을 올린 이후 그는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콘텐츠를 만들었다. ‘정준영 카톡 제보한 수리기사는 어떤 처벌받을까?’, ‘택시 기사에게 동전 던진 사건 처벌이 약할 이유’처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사건에 대한 법적 궁금증을 해소해 주거나 ‘과연 신발 분실에 식당 책임이 없을까?’, ‘고작 스티커 뗐다고 환불 안 된다고?’ 등 일상에서 활용할만한 법 지식을 담은 내용 위주로 아이템을 정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낯선 사람이 사탕 준다고 따라가면 안 된다’고 배우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에 법적으로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해요. 예컨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어디에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거죠. 최소한 제 채널을 보는 사람들에겐 ‘세상 모든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 보호받으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

한겨레

지난 12일 경기 안산시 한 법률사무소에서 법률 유튜버 박남주씨를 만났다. 그는 유튜브 채널 ‘법알못 가이드’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한 법무법인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학교에서 압수당한 물건 돌려 받는 법’은 그런 그가 꼽은 최고의 영상이다. 누적 조회수 21만을 기록한 이 영상은 헌법, 초중등교육법, 국제인권조약, 경기도 교육청 학생인권조례 등을 근거로 과도한 압수는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점을 밝혀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약 부당하게 소지품을 압수 당했다면 인권위 진정, 학칙 수정 등을 통해 압수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까지 안내한다. 그는 “학교 세 곳의 학생회에서 이 영상을 보고 자체적으로 공부해서 토론의 장을 만들고 결국 압수 자체를 없애버렸다고 연락이 왔다”며 “내가 방구석에서 찍은 영상이 사회에서 이런 변화를 만들 수 있구나 싶어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콘텐츠로 사회 변화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은 어둡던 그의 마음까지 환하게 밝혔다. “유튜브를 하기 전엔 저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했어요. 대형 로펌에 다니거나, 판·검사가 된 대학 친구들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제 선택이 맞았다고 느껴요.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 마치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처럼 자신감이 생겼어요. ”


그의 뒤를 이어 전직 대법관·변호사 같은 전문 법조인이 운영하는 채널이 크게 늘었다. 비법조인이 운영하는 법 채널은 ‘법알못 가이드’가 거의 유일하다. 그럼에도 ‘법알못 가이드’는 구독자 12만7900여명, 누적 조회수 1041만9900여회를 기록하며 법 채널 가운데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여러 채널에서 법을 접하면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이 뭔지, 판례는 어떤 게 있는지 크로스체크(교차검증)하며 법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경쟁자의 등장이) 싫기보단 반갑다”고 했다.


‘법알못 가이드’를 통해 법의 대중화에 보탬이 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법이 소수 특권층만 가질 수 있는 무기가 됐어요. 사실 법은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이용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거든요. 피해를 당했으면 누구라도 신고할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이 제 채널을 통해 확산되면 좋겠어요.”


최윤아 기자 ah@hani.co.kr

2019.12.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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