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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모성’은 명배우 트레이너…
배우의 가치를 빛내다

by한겨레

이영애·한지민·이보영 등…

학대·납치·유기된 아이 지키려

모두 걸고 사투 벌이는 엄마로

몸빼 차림·노란 머리 등 파격 변신

총격·폭행 장면 액션도 과감하게


아이 잃은 슬픔·사회 향한 분노…

내·외적 감정들이 연기 의욕 돋워

눈물샘 자극하는 가슴 먹먹한 울림

흥행은 아쉬워도 작품성에선 호평

한겨레

영화 <나를 찾아줘>의 이영애.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나를 찾아줘>에 출연한 배우 이영애는 주름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마다 눈가의 주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데 좀 더 예뻐 보이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아이를 찾아 헤매는 엄마로 거듭나기 위해 세월을 거스르려는 노력 대신 ‘예쁨’을 버리고 역할에 집중했다. 주름뿐만이 아니다. 그는 ‘애끓는 모성’을 표현하기 위해 거침없이 몸을 던진다. 잃어버린 아이를 되찾고자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피 튀기는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산소 같던 이영애’를 ‘배우’로 보이게 만들었다.


여배우에게 ‘극단적 상황에서 아이를 지키려는 모성 캐릭터’는 연기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연기파 배우’로 입지를 새롭게 다지는 기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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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쓰백>의 한지민. 한겨레 자료사진

비단 이영애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미쓰백>에서 한지민도 ‘모성’을 키워드로 그를 대표하던 맑은 이미지를 벗어내고 ‘연기파’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심었다. 극 중 ‘백상아’를 연기한 그는 학대받는 이웃집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비슷한 아픔을 지닌 백상아의 아이를 향한 마음은 일종의 ‘연대감’일 수도 있지만, 그를 보호하려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는 점에서 ‘모성’으로 봐도 무방하다. 한지민은 이 영화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해 1월 방영한 드라마 <마더>(티브이엔)에서 이보영 역시 <미쓰백>처럼 학대받는 이웃집 아이를 지켜내는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앞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에서 폐쇄적인 섬에서 억눌려 살다 아이가 죽자 폭주하는 ‘김복남’을 미친 연기력으로 소화한 서영희, <마더>(2009)에서 살인 혐의를 받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엄마로 역대급 연기력을 입증한 김혜자 등의 사례 역시 중심엔 ‘모성’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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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마더>의 이보영. 한겨레 자료사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슴 절절한 ‘모성’은 눈물샘을 자극해왔다. 따뜻한 모성애라는 바탕에 극단적 환경을 더한 이러한 작품 속 캐릭터는 내적·외적인 부분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확실한 변화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여배우들의 연기 의욕을 폭발시킨다. 아이를 잃은 슬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감성, 범인이나 사회를 향한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은 배우의 표현력을 극단까지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줘>는 잃어버린 아이가 낚시터에서 감금당한 채 일을 하는 모습에, <미쓰백>과 드라마 <마더>는 옆집 아이가 학대받는 모습에 ‘모성 본능’이 터져 나오며 관객의 공감지수를 높인다. 이영애는 영화 개봉 뒤 한 인터뷰에서 “다이내믹한 감성의 풍부함이 있는 캐릭터라 배우로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슬프다고 매번 울기만 할 수는 없으니, 감성을 세분화해서 다듬는 작업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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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서영희. 한겨레 자료사진

이들 작품을 연출한 감독들은 한결같이 “배우들이 예쁘게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여배우들은 외적으로도 눈에 띄게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한지민은 자신을 지키려다 전과자로 전락한 뒤 죽지 못해 삶을 연명하는 캐릭터의 아픔을 표현하고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연신 담배를 피우는 등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심지어 침을 뱉고 욕설까지 한다. 이영애는 낚시터 사람들로부터 아이를 구해내는 과정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것은 물론 총싸움까지 벌인다. 서영희는 섬에서 노동과 착취에 시달린 김복남을 표현하기 위해 피부를 검게 분장하고, 시종일관 ‘몸뻬’ 차림으로 연기한다. 한지민은 영화 개봉 뒤 한 인터뷰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는 순간, 연기할 때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는 얼굴이 뽀얗게 나와 ‘미쓰백’스럽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훨씬 더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연기만 잘한다면 확실하게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역할에 여배우들이 관심을 가진다”며 “요즘 30대 이상 배우들이 ‘누구의 엄마’로 나오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도 이런 선택에 힘을 실어준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선택’이 꼭 흥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쓰백>은 72만명, <나를 찾아줘>는 63만명(11일 기준) 등으로 누적 관객 수는 많지 않다. 하지만 학대·납치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상황을 그려내는 덕분에 먹먹한 울림과 함께 아동 인권 문제 등에 관한 관심을 환기시켜 대부분 작품성 면에선 호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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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더>의 김혜자. 한겨레 자료사진

그러나 배우로서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누구나 쉽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역효과를 낼 수 있어 쉽지 않은 도전이다. 업계에서는 필모그래피가 어느 정도 쌓였거나, 복잡다단한 감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든 배우들이 이런 도전을 하고 비교적 잘해낸다고 말한다. 한지민도 데뷔 16년차로서의 노련함이 있었고, 이보영과 이영애 등도 아이를 낳으며 모성애를 좀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 뒤 이런 도전을 감행했다. 이영애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 감성의 폭이 더 커졌고 이 영화가 더 크게 와닿았다. 엄마가 되니 연기가 조금 더 편안해졌다. 사회와 사람에 대한 부조리를 건져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지민 역시 “20대 때는 겁이 많았다. 30대가 돼 <미쓰백>을 만나니 겁 많던 제가 배움과 경험을 통해 내려놓을 건 내려놓을 줄 알게 됐고, 정말 중요한 게 뭔지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