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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열연 뒤에 이런 학대가…영화 ‘주디’

by한겨레

스타 아역배우였던 주디 갈런드

하루 한끼·흡연 강요받으며 촬영

약물중독·5번 이혼 ‘얼룩진 47년’

러네이 젤위거가 주연 맡아 조명

오스카 등 각종 여우주연상 싹쓸이

영화 <주디>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

‘오버 더 레인보’는 팝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다. 수많은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원곡은 1939년 작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소녀 도로시가 부른 주제가다. 이 노래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고, 도로시를 연기한 배우 주디 갈런드는 아카데미 특별상(아역상)을 받았다.


25일 개봉하는 <주디>는 갈런드의 삶을 그린 영화다. 로맨틱 코미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로 유명한 러네이 젤위거가 갈런드를 연기했다. 영화는 갈런드의 쓸쓸한 말년을 조명하면서 틈틈이 <오즈의 마법사>를 찍던 어린 시절을 되짚는다.


17살의 갈런드를 일약 스타로 만든 <오즈의 마법사>는 역설적으로 그의 삶을 망친 영화다. 영화사는 갈런드를 가녀린 소녀처럼 보이게 하려고 무리한 식이요법으로 발육을 억제했다. 살을 뺀다는 이유로 하루 한끼만 주며 담배를 네갑씩 피우도록 강요했다.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은 채 장시간 촬영을 강행했다. 심신이 황폐해진 그에게 주어진 건 각성제와 우울증 약이었다. 이는 훗날 약물중독으로 이어진다. 성희롱과 성추행도 빈번하게 이뤄졌다. 지옥 같은 삶을 탈출하고자 이른 나이인 19살에 결혼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모두 5명의 남편을 만났으나, 그 누구도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했다.

영화 <주디>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

퇴물 신세가 된 갈런드는 자신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밤무대를 전전하며 푼돈을 번다. 고된 삶을 버티는 이유는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어서다. 그러던 중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아직 팬들이 많이 남은 영국으로 건너가 쇼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떨어져 타지에서 공연을 이어가던 그는 점차 망가져간다. 술에 취해 무대에 오르거나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온다며 쇼를 중단하기 일쑤다. 결국 다른 가수가 그의 쇼를 대체하기에 이른다.


1969년 런던의 공연장. 원래 다른 가수가 나서기로 했지만, 갈런드는 막무가내로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이건 늘 꿈꾸던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가는 노래입니다. 그게 우리 매일의 삶인지도 모르죠. 그렇게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이는 희망에 관한 노래입니다.” 그리고 ‘오버 더 레인보’를 부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울먹이느라 노래를 이어가지 못한다. 멎은 노래를 다시 이어가는 건 관객들이다. 갈런드는 다시 힘을 내어 완창한다. 이 장면이 영화의 백미다. 이 마지막 무대가 있고 6개월 뒤 갈런드는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 그의 나이 47살이었다.

영화 <주디>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

러네이 젤위거는 노래를 직접 소화하기 위해 공식 리허설 1년 전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후두염, 성대 염증 등을 견디며 갈런드와는 또 다른 자신만의 ‘오버 더 레인보’를 만들어갔다. 목소리와 창법은 달라도 갈런드 그 자체로 변신한 그는 거의 모든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싹쓸이했다. 지난달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젤위거는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말했다. “주디 갈런드는 생전에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누리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가 그의 유산을 기리고 있기 때문에 (하늘에서) 축하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영웅 갈런드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갈런드는 젤위거와 하나가 돼 오스카 트로피를 안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