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몰랐던 한국만의 ‘젓가락’, 글로벌 문화가 되다

[컬처]by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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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종로구 젓가락 갤러리 ‘저집’에서 중국계 캐나다인 린다 쳉(오른쪽)씨가 유경민 저집 공동대표와 함께 젓가락을 만들고 있다. 배우한 기자

“한국 사람들은 왜 쇠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하죠? 한국 드라마 보면 왕이 식사를 하기 전에 독이 들었나 안 들었나 젓가락으로 확인하던데, 그것과 관련이 있나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젓가락 갤러리 ‘저집’. 이틀 전부터 홀로 한국을 여행하고 있다는 캐나다인 린다 쳉(61)씨의 엉뚱한 질문에 이곳 저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독을 확인하는 건 은수저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건 스테인리스 젓가락”이란 유경민 저집 공동대표의 답변에 쳉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국인들이 굳이 무거운 쇠젓가락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만큼은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1주일 간의 빠듯한 한국 여행 일정을 쪼개 쳉씨가 저집을 찾은 건 ‘나만의 젓가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6년 전 국내 최초 젓가락 갤러리라는 타이틀로 문을 연 저집은 1년 전부터 젓가락 만들기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인이 유기나 스테인리스 젓가락을 제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나, 나무 젓가락은 짧은 시간 동안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주로 젓가락 문화권이 아닌 미국과 캐나다, 유럽에서 많이 오지만, 중국과 일본 관광객도 종종 온다고 한다.


젓가락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먼저 미리 옻칠이 된 기다란 조리용 나무 젓가락을 어느 정도 길이로 자를지 정해야 한다. 중국식 젓가락이 가장 길고, 한국식이 중간, 일본식이 가장 짧다. 작은 톱으로 긴 젓가락 뒷부분을 잘라낸 뒤엔 사포를 이용해 잘려나간 면을 부드럽게 만든다. 이후 아크릴 물감으로 젓가락 손잡이 부분에 원하는 그림이나 문양을 그려 넣으면 된다. 그 위 방수코팅 작업에 소요되는 30~40분만 기다리면, 나만의 젓가락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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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캐나다인 린다 쳉씨가 19일 서울 종로구 ‘저집’에서 젓가락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쳉씨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젓가락 만들기에 나섰다. 젓가락 손잡이에 그리겠다면서 네이버 메신저 앱 ‘라인’의 대표 캐릭터 ‘초코’ 스티커도 챙겨오는 등 만반의 준비도 갖췄다. “한국에 왔으니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중간 길이로 젓가락을 잘랐고, 사포질도 능수능란하게 했다.


문제는 그림이었다. 젓가락 손잡이 부분 면적이 워낙 작다 보니 쳉씨가 그리고자 했던 ‘초코’ 얼굴이 한쪽에 모두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한쪽에 절반씩 그리기로 했지만, 아무리 작은 붓을 이용하더라도 쉽지 않은 듯했다. 지켜보던 기자에게 “직접 해보라. 너무 어렵다”며 내내 울상이던 그는 천신만고 끝에 초코가 그려진 분홍색 나무 젓가락을 완성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것인가’라고 묻자 “내 것이다. 비빔밥을 먹을 때 사용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쳉씨에게 젓가락은 낯선 물건이 아니다. 홍콩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젓가락질을 배웠고, 캐나다로 이주한 뒤로도 수십 년 간 사용해왔다. 딸들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치는 것 또한 그의 몫이었다. ‘젓가락 어느 위치를 잡느냐에 따라 얼마나 먼 지역에서 결혼하는지 알 수 있다’는 중국 미신에도 익숙하다. 그럼에도 ‘맨날 사용하는 젓가락, 딱 1주일 한국 여행까지 와서 왜 만들기 체험에 왔느냐’는 질문에 쳉씨의 대답은 명확했다. “이건 한국식 젓가락이다. 내게도 분명 색다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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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캐나다인 린다 쳉씨가 19일 서울 종로구 ‘저집’에서 만든 ‘초코’ 캐릭터 나무 젓가락. 이정원 인턴기자

’한국 대표 기념품’ 꿈에서 시작… 이젠 만들기 체험까지

우리가 매일 삼시세끼 사용하는 젓가락을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젓가락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뿐 아니라, 한중일 문화권에 속하는 이들도 우리 젓가락을 찾는다. 한국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작은 선물로, 전통 문화를 체험하는 수단으로 젓가락의 활동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뒤에는 젓가락을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여기고 발전시키려는 이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쳉씨가 저집을 찾은 것 역시 이 같이 특별한 경험을 원했기 때문이다. 한국 여행을 오기 전 ‘서울에서 할 것’을 인터넷에 검색하자 경복궁, 광화문 등 전형적인 관광코스가 많이 떴지만, 한 영상에서 “직접 젓가락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소개한 곳에 마음이 끌렸다. 그는 “어떤 나라를 방문할 때 관광 코스보다도 일상생활과 가까운 장소를 돌아다니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 여행이 네 번째라는 독일인 루이자(30)씨도 마찬가지로 문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어 이날 저집을 찾았다. 루이자씨는 어린 시절 독일에서 아시아 식당에 자주 갔지만, 젓가락을 이용해서 식사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국인 남자친구를 만나 한식, 한복 등 한국 문화 전반에 관심이 생겼고, 이제는 젓가락으로 쌀알도 집을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는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엔비(Airbnb) 문화 체험에서 젓가락 만들기에 대해 알게 됐다”며 “한국 전통 색상인 오방색(五方色)으로 젓가락을 꾸밀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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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젓가락 갤러리 ‘저집’에서 독일인 루이자씨 젓가락에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있다. 이정원 인턴기자

저집의 문을 연 박연옥 대표가 젓가락이 갖고 있는 문화 콘텐츠로서의 힘을 발견한 것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예문화사업을 하던 그에게 어느 날 한 일본 바이어가 젓가락을 보여주며 “우리나라(일본) 젓가락 장인이 만든 것”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중국에도 젓가락 장인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 젓가락은 한중일 세 국가가 공통으로 갖는 문화적 특성인데, 한국에만 ‘우리나라 대표 젓가락’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기존에 책갈피 공예를 하면서 갖고 있던 나전과 옻칠 기술을 젓가락 디자인에 적용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 대표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젓가락 공부에 돌입했다. 당시에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쓴 책을 제외하면 국내에 젓가락 관련 전문서적이 거의 없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에선 이미 젓가락이 하나의 문화적 가치로 인식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외국으로 출장을 가는 틈틈이 젓가락 공부를 병행했고, 외국 공예가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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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젓가락 갤러리 ‘저집’에 젓가락들이 전시돼 있다. 배우한 기자

그렇게 부암동 골목에 작은 젓가락 갤러리를 마련한 지 6년. 저집은 어느새 외국 바이어에게 줄 선물을 구입할 수 있는 인기 명소가 됐다. 특히 젓가락에 이름이나 회사명, 대학명을 새길 수 있어 기념품으로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저집을 운영하는 유경민 공동대표는 “처음에는 외국인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요즘엔 부쩍 늘었다”며 “일반적인 여행 말고 특이한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 온다”고 말했다.

”한국만의 쇠젓가락을 세계화시키겠다"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쇠젓가락을 개발해 전세계에 알리겠다고 나선 이도 있다. 바로 수저전문 생산기업 코스틱의 이병식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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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성동구 코스틱 사무실에 이병식 대표가 수집한 쇠젓가락이 전시돼 있다. 배우한 기자

이 대표가 처음 젓가락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기념품 때문이었다. 약 10년 전, 인쇄 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거래처 회사 대표와 식사를 하던 도중 “해외 나가서 젓가락을 선물하면 좋아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을 대표하는 젓가락 기업도, 브랜드도 떠오르지 않았다. 예전부터 인쇄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즉각 시장 조사에 착수하고 자신만의 젓가락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시도한 것은 젊은 감각의 디자인을 숟가락과 젓가락에 새기는 것이었다. 기존 스테인리스 수저 손잡이 부분에 숭례문과 기와 문양, 마주보는 얼굴, 자린고비 굴비 등을 그려 넣었다. 그 당시만 해도 숟가락, 젓가락 문양이라고는 꽃이나 인삼이 그려져 있던 시절. 그림만 바꿨을 뿐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자신감을 얻은 이 대표는 본격적으로 젓가락 공부에 착수했다. 그 때부터 골동품 시장을 샅샅이 뒤지며 우리 옛 젓가락의 모습을 찾았다. 지금 그가 소장한는 젓가락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골동품 판매상이 “청동기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젓가락이다. 그 외에도 비녀인지 젓가락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부터 황동으로 만든 젓가락까지, 오직 쇠젓가락만을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선 어느 무덤을 발굴해도 쇠젓가락이 많이 나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수많은 젓가락을 수집한 끝에 그는 “우리 젓가락은 납작한 모양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실제 조선시대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젓가락은 대부분 손잡이 부분이 납작하지 않고 입체적인 마름모꼴이었다. 이 대표는 “예전에 청동이나 황동으로 직접 두들겨서 젓가락을 만들 땐 마름모로 만들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스테인리스는 너무 단단해서 모양을 쉽게 변화시킬 수 없고, 공장에서 빨리 빨리 만들다 보니 오히려 오늘날 더 불편한 모양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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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식 코스틱 대표가 지금까지 개발한 젓가락 형태. 배우한 기자

이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손이 편한 젓가락’이다. 그는 온갖 시도를 거듭한 끝에 스테인리스를 마름모꼴로 만드는 데 성공,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상에서만 매달 2만개가 팔린다고 한다. 그는 “마름모꼴은 젓가락이 손에 낳는 모든 부분이 면에 딱 맞게 설계돼 있다”며 “작은 차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이 젓가락을 써본 사람 10명 중 8명은 모두 납작한 젓가락보다 더 편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신기한 건 모양을 바꾸니 다른 나라에서도 쇠젓가락에 대한 수요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 미국, 대만, 베트남 등에 코스틱에서 개발한 쇠젓가락이 수출되고 있다. 특히 대만에서 쇠젓가락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중국계 미국인들 사이에 스테인리스 젓가락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이 대표는 “나무 젓가락은 쉽게 버려지고, 플라스틱 젓가락은 재활용도 되지 않는다”며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다 쓰고 난 뒤에는 녹여서 재사용할 수 있는 쇠젓가락이 보다 위생적이고 친환경적”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쇠젓가락의 세계화란 사실 한식의 세계화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음식 문화가 다른 나라에 소개될 때, 그 음식을 먹는 식사 도구도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빔밥이 해외에 소개된다면 비빔밥을 젓가락을 비벼야 한다는 것도 함께 알려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우리 음식이 많이 알려질수록 쇠젓가락이 수출될 기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이정원 인턴기자

2019.10.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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