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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귀주성 ‘잃어버린 왕국’에
의문의 한옥 한 채

by한국일보

구이저우 북부 – 쭌이ㆍ펑강ㆍ츠수이

한국일보

구이저우성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 해룡둔의 신왕궁 터에 남은 해조사 사찰. 건물 외관이 중국식이 아니라 한옥을 꼭 빼닮았다.

구이저우에 하나뿐인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해룡둔(海龙屯)이다. 구이양에서 북쪽으로 약 150km, 2시간 거리에 쭌이(遵义)가 있다. 중국공산당의 본격적인 장정이 이뤄진 ‘쭌이회의’가 열린 도시다. 마오쩌둥 노선이 지지를 받아 치열한 도피를 시작한 기점이다. 지금도 쭌이는 중국에서 혁명 역사를 배우는 ‘홍색 여행’의 주요 목적지다. 다시 30km를 더 북쪽으로 달리면 용암산에 위치한 해룡둔이 나타난다.


700여년 전 남송이 몽골군을 대비한 요새로 처음 건축했다. 고도 차이가 300~400m에 이르는 험준한 산중에 위치한다. 다시 300여년이 흐른다. 관문이 아홉 개나 된다. 앞산에 여섯, 뒷산에 셋이다. 1596년 파주(播州) 선위사(왕명을 받들어 재난을 당한 지방의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이자 토사(土司)인 양응룡은 8만명을 동원해 난공불락을 세웠다. 토사는 세습 지방 관리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토사 문화와 함께 ‘피 묻은 현장’이 온전하게 남았다. 2015년 7월 유네스코는 ‘잃어버린 토사 왕국’, 해룡둔에 세계문화유산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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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룡둔의 유네스코 문물 ‘보호 조례’ 비석.

입구에서 차량으로 10분가량 산길을 달리면 산행 출발지에 도착한다. 세계문화유산 로고가 새겨진 비석에는 칼을 찬 장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힘에 겨운 일꾼 모습이 새겨져 있다. 깨알처럼 새긴 글씨는 뜻밖에도 ‘보호 조례’다. 누구 발상인지 몰라도 굳이 조문을 새겨야 했을까? 비석 뒤로 운무가 예사롭지 않다. 가랑비가 내리다 말기를 반복한다. 비옷을 입으면 덥고 벗으면 춥고, 철벽 요새를 오르는 일이 벌써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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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룡둔의 첫 관문인 동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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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관에서 내려다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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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도 산비탈에 36개 돌계단.

계단을 따라 오르면 먼저 동주관과 만난다. 아치형으로 석문을 세우고 석벽을 쌓았다. 해룡둔 1차 방어선이다. 성벽을 따라 동쪽에 세운 철주관과 쌍벽을 이룬다.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하자 한글로 ‘밟지 마세요’라 적힌 돌계단과 만난다. 등산로와 비교해 옛길 그대로다. 요새가 함락된 1600년 이후 숨겨져 있던 길이다. 45도 비탈에 돌계단 36개가 남았다. 손으로 살짝 어루만지면 감정이입이 된다. 명나라 말기로 훌쩍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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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관으로 오르는 돌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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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비호관에 도착.

100m 앞에 비호관이 있다. 깎아지른 시야 끝에 겨우 보이는 관문이다. 묵직한 바위로 만든 계단을 오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옆으로 돌아가는 길이 없으면 분명 그냥 돌아가자 하고도 남을 정도다. 이태백은 촉도난(蜀道难)에서 검문관에 대해 ‘일부당관 만부막개(一夫当关 万夫莫开)’라 노래했다.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천군만마라도 공략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가 다시 태어나 비호관에 왔다면 이 구절은 그저 소설이었다고 반성할지 모른다. 관문 안쪽에 천연 암반이 자리 잡았고, 그 위에 석벽을 단단하게 쌓았다. 난공불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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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골격만 남은 비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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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관 옆에 인물 형상처럼 남은 성벽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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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관과 피뢰침.

비호관을 넘는다. ‘용과 호랑이만 다닌 길’이라는 용호대도를 지나면 비룡관이다. 이번 쌍벽은 수직이다. 호랑이보다 위에 있어야 용과 어울린다. 양응룡의 친필 편액은 단단한 관문처럼 필체가 우직하다. 관문은 기역(ㄱ) 자 형태로 만든 옹성이다. 치열했던 전쟁터를 보여주듯 성벽은 무너졌다. 10여개가 층층이 쌓여 홀로 남은 바위가 마치 사람처럼 서 있다. 눈ㆍ코ㆍ입이 또렷하고 멀리 협곡을 바라보는 자세다. 혹시 돌로 굳어진 양응룡의 분신은 아닐까. 역사는 승리자가 기록한다. 자살로 패배를 인정한 양응룡이 ‘독선과 무자비한 반란자’라는 오명을 비통해하는 듯하다. 비룡관 뒤태는 앙상하다. 나무 두 그루가 옆을 지키고 있다. 피뢰침을 숨기기 위한 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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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관 옆 조천관. 녹색 피뢰침이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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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관.

뒤를 돌아 다시 산을 오른다. 진한 연두색 피뢰침이 생경하다. 적절한 ‘카멜레온’이 필요해 보인다. 용과 한 쌍인 봉황, 비봉관이다. 용과 봉황 사이에 있는 조천관는 해룡둔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성곽이다. 동쪽을 향해 자리를 잡은 성벽은 비봉관까지 이어졌다. 비봉관은 왕궁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자 정문이다. 이제 왕궁으로 간다. 300년 차이를 두고 두 곳에 왕궁터가 남았다. 남송 시대 라오왕궁과 명나라 시대 신왕궁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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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룡관 발굴 책임자인 리페이 박사.

신왕궁으로 가는 오솔길에서 우연히 고고학자 리페이 박사를 만났다. 구이저우 고고연구소 부소장을 맡아 해룡둔 발굴에 심혈을 기울였고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기여한 일등공신이다. 지금도 산에 칩거하며 연구와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에서 해룡둔을 보러 왔다니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한다. 산 아래 방문객이 왔다며 서둘러 내려간다. 땅 아래 숨은 역사를 찾아내고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의 해맑은 미소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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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왕궁의 해조사. 아무리봐도 한옥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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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이 계속되는 해룡둔 신왕궁.

거의 1시간30분 쉼 없이 올랐더니 숨이 가쁘다. 체력은 딱 여기까지, ‘그만 내려갈까’ 생각이 든다. 신왕궁까지 가고 싶은 이유가 있다. 산에서 200m는 생각보다 힘들다. 유적 발굴 현장이 나타난다. 토사 양응룡이 거주했던 왕궁이다. 백공불파(百攻不破) 해룡둔은 내부 배반자로 인해 무너졌다. 명나라 토벌군은 114일 동안 치열한 전투 끝에 어렵사리 진군했다. 왕궁터에 전투 중 사망한 병사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불교사원 해조사(海潮寺)를 건립했다. 명청 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보수했고 지금 모습은 1929년 중건했다. 그런데 사원의 형태가 한옥과 흡사하다. 굳이 올라온 이유다.


정면과 측면을 봐도 안동의 양반가 저택과 비슷하다. 한 바퀴 돌며 본 뒷모습도 정말 닮았다. 구이저우 산에 한옥 닮은 건물은 왜 있을까? 해룡둔을 안내한 장금룡 씨는 명나라 토벌군에 임진왜란 참전 병사가 많았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명나라 조정은 본격적으로 양응룡 세력 토벌에 나섰다. 토벌군에는 임진왜란 포로도 상당수 참여했다. 전사자를 위령하고자 지은 건물이 한옥과 비슷한 이유가 이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한다. 물론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해룡둔 관문에 씻겨나간 피비린내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하산하면서 오로지 한옥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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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해지심에 있는 육우 조각상.

해룡둔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펑강(凤冈)으로 간다. 구이저우 ‘차의 어머니’로 불리는 라오차마를 만나러 간다. 구이저우에서는 차밭도 바다다. 차밭이 바다처럼 펼쳐진 차해지심(茶海之心)은 면적이 69만㎢다. ‘동쪽에 룽징, 서쪽에 펑강’이라는 말은 유기농으로 품질 좋은 차를 만든다는 자신감이다. ‘다경(茶经)’을 지은 은둔 거사 육우가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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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차해지심 풍경. 들판 가운데에 하트 모양으로 경작지를 조성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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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해지심을 소개하는 딩차오잉 취복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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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해지심의 차밭 할아버지.

차밭 중앙의 하트 모양 덕분에 전망대 관람이 덜 심심하다. 구이저우 차를 널리 알린 딩차오잉 여사는 유명세에 어울리지 않게 촌부같은 인상이다. 소박한 차림새의 그룹 ‘회장님’이 유기농으로 재배한 차를 자랑한다. 차밭으로 내려가 직접 따기도 한다. 차밭에 나타난 주인 할아버지는 차향처럼 포근한 미소로 화답한다. 보드랍고 자그마한 찻잎이 특유의 제조 과정을 거쳐 입맛에 맞는 차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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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복헌의 소봉초당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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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봉초당에 전시된 펑강 백차 ‘봉’.

취복헌 대표인 딩 여사가 소봉초당(巢凤草堂)으로 안내한다. 취복헌는 구이저우는 물론 전국 유통망을 갖춘 차 전문기업이다. 호반 옆에 아담한 찻집이 있다. 기도하는 동자승이 머리 위로 연기를 뿜고 펑강 차밭에서 만든 백차 ‘봉’이 진열돼 있다. 펑강을 대표하는 녹차는 신시차(锌硒茶)다. ‘신’은 아연이며 ‘시’는 셀레늄이다. 아연은 면역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셀레늄은 항산화 작용에 탁월하다 자랑한다. 원소기호를 차 이름으로 쓰다니 재밌다. 차해지심의 녹차 효능을 자랑하려는 마음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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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고진에서 본 ‘사도적수’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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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고진의 사도적수기념관.

쭌이에서 서북쪽으로 190km 떨어진 토성고진(土城古镇)으로 간다. 화물선이 오가는 강이 있고 철교도 세웠다. 1935년 1월 중국공산당 정치국은 쭌이에서 좌경모험주의를 배격하고 대중노선을 강조한 마오쩌둥을 대표로 뽑았다. 장제스 국민당 군대를 피해 사도적수(四渡赤水)를 단행한다. 적수를 네 번 건너는 기동작전이다. 적수 건너 토성으로 진군한 전투가 첫번째 도강이다. 홍군은 기발한 작전과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고 적을 따돌렸다. 장정을 거쳐 옌안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신중국 정부는 해방 후에도 토성을 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사도적수기념관과 홍군대장 주더가 머물던 저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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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고진의 18방 중 선박 회사인 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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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18방 중 설탕 회사인 탕방.

토성은 예부터 부두를 기반으로 상업이 발달했다. 토성은 18방(十八帮)으로 번성한 마을이다. 18방은 열여덟 종류의 상품과 서비스를 취급한 상인집단(상방)이자 기업이다. 차ㆍ소금ㆍ설탕ㆍ염색ㆍ약ㆍ쌀ㆍ식용유ㆍ술은 생활필수품이다. 말ㆍ철ㆍ나무ㆍ돌ㆍ공연ㆍ선박ㆍ여인숙도 상방을 만들어 운영했다. 질서를 유지하는 집단과 거지 조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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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18방의 중개인 조직인 경기방 조형물.

가장 흥미로운 상방은 경기방(经纪帮)이다. 대광정은 가산을 탕진하고 우연히 쌍방 교역을 성사시킨 후 보수를 받았다. 이에 착안해 중개업에 눈을 떴다. 이를 눈여겨본 왕자광과 함께 일했지만, 수익을 나누는데 자꾸 문제가 생겼다. 경기방을 만들어 합작을 했다. 상업이 발달하니 중개상도 생겼다. 토성에서 중개인을 편이(偏耳)라 부른다. 대광정과 왕자광이 나란히 앉아 서로 협의하는 장면이다. 18방과 관련된 조형물이 몇 걸음 걸을 때마다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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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고진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업은 채 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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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고진의 ‘천하태평’ 가게 앞에서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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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토성고진 풍경. 오성홍기가 더욱 붉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길에서 아이를 업고 밥을 먹는 아주머니, 마작을 즐기는 아저씨, 무심하게 핸드폰만 들어야 보는 할아버지, 마실 나온 사람이나 강아지도 모두 평화로운 모습이다. 사도적수 첫 진군 마을인 토성, 군인이 마을로 들어섰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오성홍기 나부끼는 골목을 걷자니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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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단하 지형으로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린 불광암 입구.

토성에서 적수를 따라 30분가량 북쪽으로 가면 불광암이 나타난다. 붉은 사암이 연출한 단하 지형이다. 중국 단하는 장강 이남 전역에 걸쳐 있다. 후난성 랑산, 광둥성 단샤산, 푸젠성 타이닝, 장시성 룽후산, 저장성 장랑산과 함께 구이저우 츠수이(赤水) 단하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올렸다. 단연 돋보이는 풍광은 불광암이다. ‘단하 중 으뜸’이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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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불광암 절벽에 떨어지는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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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암은 너비 1km가 넘는 거대한 바위다.

1시간가량 원시 삼림를 오르면 거대한 절벽이 나타난다. 자세히 보면 활처럼 약간 휜 암반이다. 너비가 1,117m나 된다는데 믿을 수 있는가? 높이도 385m에 이르는 수직 절리다. 분수처럼 솟아난 폭포가 아래로 직하한다. 폭포수는 약 269m를 떨어지며 옆으로 42m까지 활짝 펴진다. 붉은 사암에서 떨어지는 하얀 폭포가 마치 ‘불(佛)’ 자처럼 보인다고 한다. 1시간 겨우 머물렀는데 불광암이 펼친 감상평을 마냥 부정하기 어렵다.


세계문화유산 해룡둔과 세계자연유산 불광암을 함께 둘러본 구이저우 북부. 소수민족 문화가 굳건히 남은 구이저우는 아직 한국인에게 여행지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남쪽 카르스트 지형, 북쪽 단하 지형이 남북에 각각 천연 향기를 제공한다. 먀오족ㆍ둥족ㆍ수이족ㆍ이족ㆍ야오족 등 18개 민족이 어울려 산다. ‘차이나는 발품 기행’에 구이저우만큼 풍성한 여행지도 없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