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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7년 동안 천천히 고친 40㎡ 작은 집… 손길 안 닿은 곳 없는 ‘가족 같은 공간’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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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매입할 당시 서울 연희동 주택. 1960년대 스타일의 붉은색 벽돌, 창문을 절반 정도 가린 담이 있다(왼쪽 사진). 부부가 이 집을 회색 벽돌, 빨간 대문 집으로 바꿨다(오른쪽). 정재은 제공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52년 된 40㎡(건축면적 12평) 단층집을 산 동갑내기 정재은(44)ㆍ김선웅 부부는 7년째 집을 고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말짱하다. 회색 벽돌 집은 작지만 단단하다. 산뜻한 빨간 대문 너머 마당도 갖췄다. ‘ㄷ’자 집은 작지만 거실과 침실, 주방과 화장실, 욕실이 오밀조밀 다 있다. 박공 지붕 아래 원목을 덧댄 다락도 있다.


하지만 부부는 ‘욕조를 넣어볼까’ ‘싱크대에 타일을 붙여볼까’ ‘다락에 칸막이 서랍장을 달아볼까’ 고민을 계속 한다.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집 그 자체가 가족 같다. 정씨는 최근 집과 함께한 시간을 글로 풀어낸 에세이 ‘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앤의서재 발행)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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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자 집 거실에서 주방 쪽을 바라보면 길가로 낸 불투명 유리창으로 햇빛이 비친다. 정재은 제공

52년된 집의 대수선

부부가 우연히 이 집을 발견한 건 2013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2년마다 빌라를 옮겨 다니다 큰 주택 사이에 끼인 작은 집을 봤다. 1968년 지어진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고, 쥐 나올 것 같았다는 게 부부의 첫 인상이었다. 집은 별로였지만 높은 건물 하나 없이 산 밑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집값도 근처 빌라의 보증금 수준이었다.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집을 샀다.


돈도 시간도 없으니 건축가 없이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손댈 곳은 넘쳐났다. 뼈대만 남기고 다 바꾸는 대공사였다. 부부는 “집 만드는 게 덧셈 아닌 뺄셈이란 게 아이러니”라며 “원래 집의 3분의 1을 없애고 짐도 최대한 줄였다”고 말했다.


벽을 세워 불법 증축했던 부분을 걷어내고 원래의 마당을 살렸더니 ‘ㅁ’자 집이 ‘ㄷ’자로 바뀌었고, 70㎡의 땅을 가득 메웠던 집은 40㎡로 줄었다. 새로 벽을 세우면서 창은 최대한 많이 냈다. 집 높이는 유지하되 바닥부터 지붕까지 새로 올렸다. 좁은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층을 나눠 다락을 만들었다. 외관은 붉은 벽돌을 떼고 회색 벽돌로, 대문도 빨간 페인트를 칠한 감각적인 문으로 바꿨다. 수납공간을 만들기 위해 1층 침실에 단차를 내어 바닥에 수납장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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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앞 공간엔 폴딩도어를 설치, 집에서 마당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정재은 제공

대대적 공사에는 두 달 걸렸다. 낡은 주택 고치는 데 통산 걸린다는 반년보다 훨씬 짧았다. 부부의 비결은 “건축가 없이, 그때그때 시공업자를 섭외하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재료를 썼다”는 데 있었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대신 도면도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해서 하는 일이 많았다.


새집에 들어온 부부는 마냥 뿌듯했다. 창으로 오가는 바람과 햇살을 마음껏 누렸고, 마당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더없이 행복했다. 조용한 마을의 한 숙소에 머무는 여행자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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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고치면서 다락을 만들었다. 부부는 낮은 지붕에 머리를 기대면 집과 머리를 맞댄 듯한 기분이 들어 좋다 했다. 정재은 제공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편했다. 시간과 비용에 쫓겨 즉흥적으로 결정했던 것이 뒤늦게 후회로 돌아왔다. 거실과 마당을 연결하는 폴딩도어(접이식 문)는 단열이 안돼 겨울이면 추웠고, 최대한 많이 낸 창은 영리하지 못한 탓에 채광이나 환기가 부족했다.


내부 동선도 꼬였다. 수납을 위해 단차를 낸 침실은 짐을 꺼내거나, 잠을 잘 때 불편했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거실은 통로 같아서 눕기도, 앉기도 애매했다. 창을 가로막은 냉장고는 좁은 부엌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서재 겸 작업실로 쓰고자 했던 다락은 짐을 쌓아두는 창고가 돼 버렸다.


“비용, 시간도 부족했지만 우리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우리가 어디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지, 우리가 집에서 무엇을 하기를 좋아하는지 사실 정확하게 몰랐어요. 그저 다락이 있으면 좋겠다, 창이 컸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집을 고쳤던 것 같아요. 공간을 알아가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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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가렸던 냉장고를 돌리기 위해 ‘ㄷ’자형 싱크대를 ‘ㄴ’자형으로 바꾸었다. 주방에는 노란색과 주황색 등 집에 활기를 불어 넣는 원색을 과감하게 썼다. 정재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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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납 공간을 만들기 위해 1층 침실 바닥에 수납장을 만들었지만(왼쪽 사진), 부부의 동선에 맞게 수납장을 뜯어내고 거실을 만들었다(오른쪽). 정재은 제공

7년째 고친 집에는 중고가 가득

다시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천천히 고쳤다. ‘ㄷ’자였던 주방 싱크대 한쪽을 잘라내고 상부장도 떼어냈다. 싱크대를 줄인 덕에 창문을 가리던 냉장고를 돌려놓았다. 창 밖 풍경이 보였다. 이번에는 침실 바닥의 수납장을 뜯어내고 거실을 만들었다. 매트리스는 다락으로 올렸다. 환기를 위해 작은 팬을 천장에 달았다.


부부는 “침실이나 주방이 더 작아졌지만 오히려 편안한 공간이 됐다”라며 “많고 넓은 게 아니라 우리에게 딱 필요한 정도가 있는 게 좋다는 걸 집을 고치면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집을 고치면서 갖고 있던 짐도 대폭 정리했다. 정씨는 “보지 않으면서 전시해두듯 진열한 책, 입지 않으면서 보관한 옷, 들춰보지 않는 과거의 글 등을 모두 정리했다”라며 “작은 집에 살면서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게 군더더기인지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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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앞에 둔 6단 중고 철제 캐비닛. 캐주얼 차림을 즐기는 부부의 옷장이 됐다. 6단이라 계절별, 아이템별로 옷을 나눠 넣기 좋다. 정재은 제공

이 작은 집의 단출한 살림살이는 대부분 중고다. 다락에서 쓰는 이동형 에어컨은 양재동 한 원룸에서 30대 남자와 살던 녀석이다. 풀옵션 원룸으로 옮기면서 부부에게 줬다. 책상은 홍대 근처에 디자인 회사가 문 닫으면서 부부 집에 왔다. 컴퓨터 전선을 넣는 구멍도 친절히 뚫려 있다. 옷장이 필요했던 부부는 재활용센터에서 헬스장에서 썼을 법한 6단 철제 캐비닛을 샀다.


부부에게 중고품은 묘한 느낌을 준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던 처지”에 최상의 대안이었지만 “재질과 색상도 제 각각인 가구를 보고 있노라면 내 취향을 반영하지 못한다” 싶었다. 하지만 또 “전시장처럼 잘 꾸며진 집보다는 각자의 사연이 있는 가구들로 꾸민 집”이 마음에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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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마당은 부부가 매일 계절을 느끼는 공간이다. 정재은 제공

집의 마당은 작지만 강력하다. 원래 잔디를 깔려 했지만 오래된 집이라 시멘트를 덮었다. 미련이 남은 부부는 3년 전 이웃이 쓰다 남은 벽돌을 가져다 화단을 만들었다. 수국 앵두 남천 등 부부만의 추억이 있는 나무를 심었다. 두 세 걸음이면 닿을 작은 마당 덕에 부부는 일 년에 네 번쯤 인식했던 사계절을 매일 체감하게 됐다. 정씨는 “꽃이 피면 봄이고 단풍이 지면 가을이구나 했는데 마당에 있는 나무를 직접 돌보고 매일 매일 계절 변화를 느낀다”며 “온전히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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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외벽에 작은 구멍을 내어 길고양이가 쉬어 갈 수 있게 했다. 정재은 제공

부부에게 집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어떤 집을 짓겠다는 목표는 애초에 없었어요. 어떤 사람은 이상형을 정해놓고 이상형을 만나 결혼 하지만, 자연스럽게 같이 있고 함께하다 반쪽이 되기도 하듯 저희에게 집은 어떤 조건으로 말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곳이에요. 7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우리 집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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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