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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카페, 영화관, 호텔, 루프톱…
신혼집의 틀을 깨다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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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은동의 한 주택가에 들어선 ‘남녀 하우스’의 북측 면은 여성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곡선과 창 주위에 분홍 타일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집값 비싼 서울에서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집은 시간과 비용에 쫓겨 해결해야 할 난제다. 원룸, 신축빌라, 오피스텔, 소형 아파트로 압축된 선택지에서 고른 집은 시간과 비용에 따라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2년 전 김명실(35), 홍중희(40) 부부가 서울 홍은동에 지은 ‘남녀 하우스’는 정해진 답안에서 벗어난 둘의 생활방식과 성향에 맞춘 신혼집이다. 맞벌이인 부부는 “결혼을 결심하면서 우리 둘만의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라며 “집은 아이 없이 살기로 한 우리가 아이 대신 계속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매개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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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카페 같은 주방은 부부가 아침에 커피를 마시거나, 퇴근 후 와인을 즐기기 좋은 구조로 설계됐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카페, 영화관, 호텔, 루프톱…

부부는 예산에 맞춰 북한산 아래 70.83㎡(대지면적 약 21평)의 작은 땅을 샀다. 설계를 맡은 서재원ㆍ이의행 건축가(에이오에이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공동소장)는 한 층이 38.44㎡(약 12평)인 4층짜리 협소주택으로 올려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부부는 건축가에게 ‘집 같지 않은 집’을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부부에게 ‘집 같지 않은 집’은 가사노동과 휴식으로부터 해방된 집이다. “보통 집에 가면 요리나 청소, 빨래 등 가사를 하거나 아니면 푹 퍼져서 쉬거나 둘 중에 하나예요. 저희 부부는 집 안에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집이었으면 했어요.”


부부는 여행과 영화, 와인을 좋아한다. 둘은 퇴근 후 카페나 와인바에 가듯 집에서 함께 와인을 즐기고 싶고, 여행에서 사온 포스터나 그림을 집 벽에 걸고 싶고, 영화관 못지 않은 큰 스크린과 사운드로 영화를 감상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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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은 영화관 같은 거실이다. 긴 창을 통해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지만 창 앞에 큰 스크린을 내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청록색 대리석을 거실 벽에 부착해 남성적인 공간으로 연출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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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거실 뒤편에는 청록색 타일을 붙인 남자 화장실이 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건축가는 이들 부부의 로망을 층으로 분리해 실현해냈다. 1층은 카페 같은 주방이다. 주방 한가운데에 길이 2m, 높이 90㎝의 커다란 테이블을 뒀다. 기능보다 감성을 우선한 공간이다. 서 소장은 “처음부터 카페나 와인바처럼 가운데에 큰 테이블을 두는 것을 염두에 뒀다”라며 “지나가기 힘들고 요리하기엔 불편할 수도 있지만 테이블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고, 대화하기에 좋은 감성적인 공간이다”고 설명했다. 부부는 “요리를 많이 하지 않고, 먹더라도 간단하게 해 먹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2층은 영화관 같은 거실이다. 긴 창 앞에 키가 낮은 수납장과 두 개의 안락의자를 두었다. 바깥 풍경을 감상하거나, 커다란 스크린을 내려 영화를 볼 수 있다. 거실 벽 뒤로는 남자 화장실이 있다. 3층은 호텔 같은 침실이다. 2층과 위치와 면적은 같다. 다만 침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긴 창 대신 환기를 위한 작은 창만 냈다. 침실 뒤편에는 여자 화장실을 두었다. 4층은 박공 지붕 아래 작은 휴식 공간과 테라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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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과 같은 구조의 3층은 호텔 같은 침실이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긴 창 대신 환기를 위한 작은 창만 냈다. 청록색 대리석의 벽을 쓴 2층과 달리 3층은 붉은빛 원목을 덧대 여성적 공간에 따뜻함을 더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각자의 방은 따로 없다. 부부는 “한 사람이 거실(2층)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이 루프톱(4층)에 있으면 서로 방해하지 않고 온전히 개인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물건으로 채운 방을 둘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신 2, 3층에 있는 널찍한 화장실을 각각 쓴다. 부부는 “출퇴근 시간이 겹치는데다 개인 위생용품을 두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적 공간인 만큼 부부라도 화장실은 따로 쓰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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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거실 뒤편에는 분홍 타일을 붙인 여자 화장실이 있다. 협소주택이지만 각자의 화장실을 두어 사용 편리를 높였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북쪽은 여성, 남쪽은 남성을 상징

부부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하면서도 집은 복잡하지 않다. 기존의 협소주택은 집의 다양한 기능을 한데 수용하기 위해 공간을 쪼개고 쪼개 복잡해지기 일쑤였다.


바닥이 네모 반듯한 집 가운데 벽 하나만 세웠다. 중앙을 관통하는 계단은 층마다 좌우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공간을 만든다. 각 층은 계단을 통해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고, ‘8’자형의 순환 동선을 이룬다. 계단을 오르면 거실이나 침실 등으로 문 없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앞뒤로 미닫이 문이 달린 화장실을 통로처럼 지나다닐 수도 있다. 거실, 침실 공간을 방해하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해 층간 이동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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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루프톱 공간은 부부의 휴식 공간이다. 비정형의 창으로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테라스에서 햇빛을 쬐기에도 좋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길이나 크기가 대칭을 이루는 창들은 집의 조형미를 한껏 보여준다. 1층 주방에서 마당을 조망하는 창은 고정 창이다. 창의 길이와 그 앞에 놓인 테이블의 길이, 주방 옆 차고의 유리블록의 길이까지 의도적으로 나란히 맞췄다. 이 소장은 “환기를 위한 창은 따로 있고, 고정 창은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용도이다”라고 했다.


2층 거실 전면의 긴 창도 열리지 않는,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창이다. 대신 양 옆에 환기를 위한 대칭 구도의 창이 있다. 3층 침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전면 창을 내지 않은 대신 양 옆에 2층과 같은 크기의 창을 내어 2,3층으로 수직 대칭을 이룬다. 3층은 다른 층과 달리 집의 앞뒤가 아닌 좌우로 창을 내었다. 4층은 아래층과 달리 비정형의 창이 있다. 계단을 올라오면서 오른편의 마름모 창으로는 풍경이 점차 확대되듯 보인다. 왼편의 원형 창은 시야를 위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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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은동의 ‘남녀 하우스’의 남측 면은 남성을 상징한다. 창 둘레의 청록색 타일과 조형미를 살린 창이 돋보인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대칭의 창들은 건물의 표정을 만들어낸다. 긴 직사각형 창과 4개의 작은 사각 창이 있는 집의 남측 외관은 남성의 얼굴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남측 창 둘레에는 청색 타일을 덧댔다. 4개의 사각 창과 1개의 원형 창이 있는 북측 외관은 여성의 얼굴을 나타낸다. 창 둘레에는 분홍색 타일을 붙였다. 이 타일은 단순히 디자인을 위해서 색을 바꾼 게 아니라 벽돌로 인해 단열이 연속되지 않는 부위를 타일로 메워 단열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건축가는 “부부의 삶을 보면서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이 크게 달라졌고, 이들의 삶을 집이라는 건축으로 담았다”라며 “상징을 위한 상징이 아니라, 기능을 맞추면서 어떤 상징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2층 거실과 화장실은 청록색의 대리석과 타일을 썼고, 3층 침실과 화장실은 붉은빛의 원목과 분홍색 타일을 쓴 것도 기능에 충실하면서 남녀의 상징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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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 콘크리트 내부의 차가운 느낌을 보완하기 위해 원목 가구를 많이 썼다. 1층 주방의 원목 테이블은 카페 같은 주방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사이즈를 크게 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부부의 요구대로 노출 콘크리트로 내부를 마감한 집은 안온한 집보다는 차가운 집의 느낌이 난다. 부부는 여행하면서 산 전시 포스터와 그림, 이국적인 식물을 심은 화분, 원목 가구 등으로 집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둘이어서 가능한, 둘에 딱 맞춘 집이지만, 둘은 이 집에 평생 살 생각은 없다고 했다. “현재 우리의 생활에 딱 맞춘, 매우 만족스런 집이지만, 50대에는 도심을 벗어나 전원에서 마당도 있고 좀 널찍한 집을 지어보고 싶어요. 평생 살 집이요? 우리가 10년, 20년 뒤에 어떤 모습일지 모르는데, 평생 살 집이 필요할까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