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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스타트업리포트

[스타트업리포트]아마존 1위 생리대, 한국서 만드는 이유

by한국일보

[35회]김지영 라엘 최고운영책임자(COO) “코로나19로 온라인 판매 급증…화장품도 출시”


라엘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며 주목을 받는 신생(스타트업) 기업이다. 인터넷에서 이 업체의 유기농 생리대 주문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에서만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라엘의 한국 사업과 전체 운용을 총괄하는 김지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코로나19 때문에 미국에서 생리대 사재기를 많이 한다”며 “마스크에도 들어가는 부직포가 부족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 종류가 달라 생산에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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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전한 생리대’로 아마존 판매 1위


기술로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 펨테크(페미닌테크)를 지향하는 이 업체는 미국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201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 여성 3명이 설립한 이 업체는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생리대 부문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비결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생리대였다. 피부에 닿는 부분과 흡수재에 화학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순면과 자연 성분으로 생리대를 만든다. 김 COO는 “다른 제품에 들어간 타이어를 만드는데 쓰이는 화학 성분과 자극적인 염소 표백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며 “가장 안전한 성분으로 생리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이 아마존 이용자들의 후기를 통해 알려지며 유명 회사 제품들을 누르고 아마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리대가 됐다. 이용자들이 아마존 게시판에 “내 인생 최고의 생리대를 만났다” “기능성이 뛰어나다”는 등 각종 호평을 올리면서 평점이 5점 만점에 4.9점으로 상승했고 자연스럽게 제일 좋은 제품으로 알려져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김 COO는 “이용자들의 좋은 평가 글이 이어져 따로 선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국내에서도 주문이 늘기 시작했고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겠다는 유통업체까지 등장했다. 라엘은 이에 대응하고자 2018년 국내 법인을 설립했고 김 COO가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라엘의 시작은 엉뚱하고 단순했다. 3명의 창업자들이 모두 생리대 제조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다. 아네스 안은 미국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기 계발서를 쓰는 작가였다. 평소 사용하던 생리대의 품질이 떨어져 불만을 느낀 안씨는 아예 제품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디자이너인 원빈나,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을 나와 디즈니에서 일한 백양희씨와 손잡고 라엘을 창업했다.


마침 일부 기업이 제품에 화학 물질을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리대 파동이 터졌다. 김 COO는 기존 생리대 제조회사들이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여성들의 불편을 체감하는데 둔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리 기간에 피부에 발진이 생기거나 가렵고 냄새 나는 문제 등은 제품 탓일 수 있다”며 “기존 생리대 회사의 남성 경영자들은 체험하지 못한 문제여서 제품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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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혁신이 잘 된 국내 제조업체에서 OEM 생산


라엘은 기존 생리대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내부에 개발팀을 두고 있다. 여기서 어떤 성분이 안전한지 찾아내 제품에 적용하는 일을 맡는다. 김 COO는 “접착제를 하나 쓰더라도 어느 나라의 어떤 기업이 어떤 성분으로 만들었는지 일일이 확인한다”며 “이렇게 찾아낸 유기농 소재와 성분을 적정 비율로 조합해 편안한 디자인으로 개발하는 것이 제품 경쟁력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라엘은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제품의 성분과 재료를 공개하지 않는다.


어렵게 찾아내고 개발한 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가격은 올라간다. 김 COO는 “유기농 성분을 사용하면 팩당 4,000~7,000원인 다른 회사 제품보다 1.5~2배 가량 비싸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건강에 대한 대가로 생각한다.


이 업체의 또 다른 경쟁력은 바로 국내 공장이다. 라엘은 창업 때부터 전세계에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국내에서 만든다. 이를 위해 충북 음성의 제조업체 SSK와 장기간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 제휴를 맺었다.


창업자들은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세계 공장을 뒤졌다. 김 COO는 “미국 유기농 생리대 제조사들의 공장도 대부분 유럽에 있는데 가봤더니 20년 이상 된 노후 시설이었다”며 “중국은 낮은 단가로 만들어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청결 문제가 있어 곤란했다”고 전했다.


반면 국내 제조업체들은 새로운 기계 도입 등 혁신이 잘돼 있었다. 그 중 기존 업체에 생리대를 만들어 납품하던 곳을 찾아냈다. 김 COO는 “이 공장은 라엘과 손잡으며 유기농 생리대 제조사로 주가를 올리며 수출까지 하고 있다”며 “모든 제품에 꼭 제조사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라엘은 판매가 늘며 오프라인으로도 진출했다. 미국에서는 아마존에 이어 오프라인의 대형 유통업체 타겟이 라엘 제품을 판매한다. 국내에서는 라엘 자체 쇼핑몰과 쿠팡, 마켓컬리 등 인터넷 쇼핑몰을 비롯해 이마트 롯데마트 올리브영 등 주요 오프라인 유통점에서 제품을 팔고 있다.


라엘은 이제 본격적인 펨테크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생리대를 넘어 다른 분야까지 바라본다. 김 COO는 “여성들은 생리 기간에 호르몬 변화로 뾰루지가 나는 등 각종 피부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마스크팩, 스킨케어 등 화장품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화장품들도 화학성분을 배제한 천연 성분으로 만든다. 뿐만 아니라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소재를 이용한 비건 화장품을 지향한다. 우선 로션과 스킨, 세안수, 클랜저, 토너, 세럼 등 7종의 제품을 이달 초부터 국내외에서 판매하고 있다.


김 COO는 이 제품들이 해외에서 K뷰티를 알리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미국 유통업체들이 K뷰티로 대표되는 한국 화장품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미국에서도 라엘 브랜드로 화장품을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큰 언니 같은 기업이 되자’


‘큰 언니 같은 기업이 되자.’ 지속적으로 여성들을 위한 정보를 주고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라엘의 모토다. 학교 지원 교육도 이런 차원에서 하고 있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요청하면 찾아가 올바른 생리대 사용법 등을 강의한다. 김 COO는 “의외로 많은 여학생들이 생리대 사용법을 몰라 뒤집어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학교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어머니들이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을 나가면 꼭 라엘 제품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몸에 좋은 제품을 사용하라고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여학생들의 교복 치마 안쪽에 부착할 수 있는 생리대 주머니인 ‘포미 포켓’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COO는 “주머니 안에 생리대 2개가 들어간다”며 “생리 시작 전에 미리 주머니를 준비해 놓으면 갑자기 당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리 알림 챗봇과 갑자기 생리가 시작됐을 때 주문하면 2시간 내 배달해주는 생리대 특급 배송 서비스는 펨테크 기업으로서 기술의 성과다. 챗봇은 생리 주기를 입력해 놓으면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생리 3일 전에 알려준다. 김 COO는 “바쁜 일상 때문에 생리 주기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생리대 주문이 가능한 챗봇을 통해 이런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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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와 삼성 출신 김지영 COO, “도전과 공감정신이 스타트업의 경쟁력”


원래 김 COO는 삼성에서 12년을 근무했다. 이전에는 야후코리아에서 인수합병(M&A)을 담당했다. SK텔레콤과 야후코리아의 합병 논의가 한창이던 2006년에 야후코리아측 담당자였다. 그는 “당시 SK텔레콤은 SK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야후코리아를 인수하려 했으나 야후코리아는 생각이 달랐다”라며 후일담을 들려줬다.


김 COO는 삼성물산에서 오랫동안 패션사업을 하다가 지난해 초 라엘에 합류했다. 그는 “처음에 제안을 받고 알아보니 생리대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여성들이 회사를 만들어 아마존에서 판매 1위를 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며 “앞으로는 대형 브랜드들이 아니라 고유 가치관과 차별성을 가진 개성강한 작은 브랜드들이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직 동기를 털어 놓았다.


김 COO는 국내 1위 대기업에서 작은 스타트업으로 옮긴 뒤 두 가지 큰 차이를 느꼈다. 도전력과 소비자들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다. 그는 “스타트업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타협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스타트업은 소비자들의 반응에 빠르게 공감하고 이를 제품과 판매에 바로 반영한다”며 “이런 것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김 COO는 이제 대기업이 시장을 선도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판단이다. 그는 “과거에는 유통을 장악하면 시장을 선도했다”며 “이제는 판매 창구가 아니라 소비자 반응과 제품의 소구력이 중요하다”고 지목했다.


올해 라엘과 김 COO의 목표는 새로 출시하는 화장품의 판매 성공이다. 이를 위해 대중적 인지도를 확산시키기 위한 TV 광고도 기획 중이다. 김 COO는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이달 중 모델 없이 메시지만 내보내는 TV 광고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삽입형 생리대(탐폰)와 빨아쓰는 생리대, 생리컵 등 신제품 출시도 검토 중이다. 김 COO는 “미국에서 판매중인 탐폰을 여름께 국내 출시 예정”이라며 “빨아쓰는 생리대 및 생리컵 출시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진출도 중요한 사업 아이템 중 하나다. 김 COO는 “미국, 유럽 등 19개국에서 제품을 판매 중”이라며 “중국 진출은 제휴 등을 통해 온라인 판매를 먼저 시작하고 나중에 오프라인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겸 스타트업랩장 wolfpa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