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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버려지는 화장품,
예술로 태어나다

by서울문화재단

화장품 그림 작가 김미승

 

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화장품의 종류와 그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커져가는 산업 규모에 맞게 메이크업 아티스트, 뷰티 유튜버, 뷰티 크리에이터 등 관련 직업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김미승 작가의 작업은 조금 독특하다. 그는 버려지는 폐화장품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화장품 그림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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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화장품으로 그린 그림들. 가수 퍼렐 윌리엄스, 가인, 씨엘.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다

화장을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북적북적한 화장대 위에 사용하는 화장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쓰지 않는 화장품이 몇 개씩은 있다. 굳은 마스카라, 눈가에 번지기 쉬워 손이 안 가는 아이라이너, 취향에 맞지 않는 색상의 립스틱, 유통기한이 지난 파운데이션 등은 다 사용하지도 않은 채 버려지거나 화장대 자리만 차지한다. 이러한 화장품들이 아까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환경오염을 유발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내 전공인 미술을 접목해 화장품을 이용한 그림 작업을 시도했다. 이는 화장품 본래의 미적 역할을 살리면서 화장품을 다시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이제는 ‘리사이클링 아트’(Recycling Art)이자 ‘화장품 그림’이라는 독특한 장르로 자리한다.

 

화장품으로 사람을 그리는 첫 과정은 파운데이션으로 메이크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파운데이션으로 피부 결을 표현하고, 셰이딩(Shading)하는 것처럼 음영을 주어 윤곽을 잡은 뒤 마스카라로 머릿결을 표현하거나 아이섀도로 입술 색을 표현한다. 제품 용도에 제한 없이 화장품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표현이 불가능할 것 같던 부분의 표현이 가능해지고 나만의 노하우를 찾아갈 때, 재미와 희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어떤 때는 미술 도구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어떤 때는 메이크업 도구로 종이에 화장을 한다. 그렇게 화장품으로 그린 그림의 질감은 각도와 빛에 따라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화장품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어떤 제품을 써볼까’ 하는 고민마저 즐겁다.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라는 여자들 사이에서의 명언처럼 말이다. 나는 이렇게 3년째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애정을 가지고 작업하는 화장품 그림이지만, 아직도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바로 작품 보관의 문제다. 수정 메이크업이 필요한 것처럼 파우더 형태의 제품에는 가루날림이 있고, 때로는 묻어난다는 안타까운 단점도 있다. 그래서 수정을 몇 번이고 한 뒤 최대한 손에 닿지 않게끔 마무리하여 보관해야 한다. 또 리퀴드 유형의 제품을 사용할 때는 종이가 일어나기 쉬워 유의해야 하고, 유분이 많은 제품은 기름이 번져 종이에 얼룩이 지기도 한다. 색이 있는 크라프트지에 그리다 보니 그런 단점이 눈에 띄기 쉽다는 점도 문제다. 하지만 크라프트지는 하얀색의 일반 종이보다 피부색과 가까우며 약간의 질감 또한 느낄 수 있다. 친환경적인 재사용 용지라는 점 역시 ‘리사이클링 아트’로서의 화장품 그림과 궤를 같이하기에 크라프트지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미술 재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한 칸이 비어 있는 퍼즐에 마지막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아직 이룬 것보다 이룰 것이 더 많다

씨엘, 혁오, 포니, 아리아나 그란데 등 좋아하는 뮤지션부터 아티스트, 유명인의 초상 또는 영화 장면을 그려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좋아요’와 댓글을 받았고 방송과 기사, 모바일 콘텐츠에 소개되면서 화장품 그림이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나의 그림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안 쓰는 화장품들을 ‘그림활동에 써주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택배로 보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받은 화장품들만 해도 수백 개가 되었다. 덕분에 당시 그림활동 자체로는 소득이 많지 않던 내가 재료비에 대한 부담은 덜게 되었다. 몹시 감사한 일이었다.

 

‘취업의 길이 아닌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주변에서 많이 받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조금은 빤한 이야기지만, 하고 싶은 일이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꿈은 노력하면 누구나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려운 순간에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 아닐까. 액자 구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간들도 내 꿈을 위해 다가서는 순간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는 잘 버텨왔다. 아마 앞으로도, 잘 버틸 것이다.

 

한 팬에게 “꿈을 향해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저도 ‘돈이 되지 않아’ 접어두었던 꿈을 꺼내고 싶어지네요. 앞으로도 예쁘고 좋은 그림들 많이 보여주세요!”라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돈은 중요한 문제지만, 돈이 꿈을 성취하는 데 제일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것, 그리고 처음의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힘들어지거나 고민에 빠질 때면, 그 메일을 생각하곤 한다. 다시 처음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끔.

 

앞으로도 화장품 그림 작가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어 나가려면 작품의 발전을 위한 시도와 연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과의 연계 프로젝트 등 주어지는 기회들을 통해서 자원 재활용 예술이란 분야의 홍보 역시 꾸준히 할 계획이다. 아직 나는 이룬 것보다 이룰 것이 더 많다고 믿는다.

 

글·사진 김미승

화장품 그림 작가. 인스타그램 ‘me.seung’, 페이스북 ‘화장품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