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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꿈의 사각지대

서울, 고단한 누군가가 꿈 꾸는 풍경

by서울문화재단

서울의 출퇴근길 풍경은 지하철과 버스가 무언가를 연신 마시거나 뱉어내는 듯한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끊임없이 무언가가 이동하고 움직이기에 도시는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 사실 그런 흐름 속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선 채로 잠을 자거나 누군가 사물을 신묘하게 이용하는 풍경을 찰나에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풍경을 글이나 그림으로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고단한 누군가가 꿈 꾸는 풍경

출퇴근 시간의 서울은 거대한 아메바와 같은 원생동물처럼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하게 머릿속에 그려진 서울의 윤곽선이 안에서 밖으로 좌에서 우로 상하로 서서히 꿈틀대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건 보통 그 시간에 지하철의 환승역을 통과하거나 광역버스 정류장 앞의 거대한 행렬을 마주했을 때다. 그때의 서울은 어떤 일정 시간에만 활발히 운동하는 물컹한 생명체로 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서울의 늦은 밤거리는 그 많은 사람의 행렬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텅 빈 거리와 건물만이 이곳이 서울임을 상기시켜준다. (*신기루는 보통 공기의 온도 차이가 크고 불안정한 대기층에서 빛이 굴절하며 물체가 원래의 위치에서 보이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이동하는 사람들을 신기루라고 표현하는 것은 관찰자로서 느끼는 감상적인 시선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비어 있는 상태 역시 부동산 가격의 온도 차이 혹은 여러 연유로 무수한 시간을 길 위에서 버스 안에서 지하철에서 서로의 식사 메뉴를 추측하듯 숨 냄새를 맡으며 이동할 수밖에 없는, 서울을 근거지로 하는 많은 사람의 생활이 만들어낸 풍경이기 때문이다. 솔직한 마음의 신기루는 오히려 서울의 한복판에서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눈앞에 펼쳐지는 꿈의 공간일 것이다.

도시의 신묘한 드리머(dreamer)

매일매일의 당연한 일과로 여겨지는 꽤나 고된 그 출퇴근, 혹은 통학의 여정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생각들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나의 경험에 빗대어 짐작해본다면 ‘이 길 위에서의 10분만 덜어내어 침대에서 자고 싶다’ 거나 ‘집에서 한 5분만 더 뒹굴거리고 싶다’는 소박하고 간절한 꿈을 잠시 꾸고, 깜박 잠이 들거나 창밖을 보거나 이내 스마트폰에 집중하게 되는 일련의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나 싶다. 때때로 생각은 나아가 길 위의 시간에 지쳐 그만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나의 집, 나만의 공간처럼 편안하게 변할 수는 없을까 하는 데 이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소박하고도 간절한 바람이 어떤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내리며 그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서서히 신비한 능력을 갖춰나가게 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움직이는 지하철에서 안정적으로 서서 잠든 사람, 타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만 그들의 그림자를 빌려 햇빛 혹은 바람을 피하거나, 혹은 도시의 기물들을 나의 가구 혹은 신체 일부처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처럼, 초연하며 편안하게 길 위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꾸려나가는 이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따금 이들의 모습은 이것도 신기루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절묘해 마음속으로 박수를 탁 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런 행동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의 감탄이다. 그런데 다소 신묘한 그 순간에 사실 그 행동을 하는 당사자는 어떠한 간절함 때문에 스스로를 비가시적인 존재로 오인하는 듯도 하다. 길 위의 어떤 곳도 많은 이의 눈으로부터 완벽한 사각지대가 될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당사자에게는 희미해지는 것은 아마도 혼자만의 버블과도 같은, 자신만의 영역에서 순간적 편안함에 압도당하거나, 혹은 잠, 쉼 등등의 순간의 간절한 갈증이 해소에 이르러 잠시의 달콤함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에서 꾸는 꿈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만 달콤한 것이다.

서울, 고단한 누군가가 꿈 꾸는 풍경

시선의 사각지대에서 마주치는 기이한 풍경

결국 이런 장면을 이루는 것은 아침, 저녁으로 서울을 움직이고 잠자게 하는 많은 사람이다. 제각기 다른 신체 특성과 성격을 가진 그 사람들이 잠시라도 시간과 공간이 응축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자신만이 꿈꾸는 사각지대를 꾸려가려 하는 노력이 쌓여 이루는 장면이다. 도시에서 생활하며 각자 적응하기 위해 어떤 습성을 키워온 것이 순간의 본능 혹은 감정과 결합하며 행동양식이 변화하는 중대한 인류 역사의 한 장면은 아닐까 하는 조금 거창한 생각도 해본다. 야생의 상태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많은 동식물종의 특수성이 진화와 퇴화를 반복하며 정립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이 일궈내는 중대해 보이는 순간은 인류학자나 동식물학자의 기록이 아닌 관찰력이 좋은 **누군가에게 목격되어 도시인들의 무용담처럼 도시를 떠돌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한마디로는 표현하거나 규정하기 어려운 서울의 내적, 외적 특징들을 그 일상적이면서 묘한 움직임이나 행동들로 언어를 대신해 표현해주고 있다는 감흥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 두산백과 참조.

** 목격자의 예로는 나 혹은 호상근과 호상근재현소에 방문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윤재원 아티스트, 독립매거진 <칠진>을 함께 만들었다.

그림 호상근 일러스트레이터. 2012년 꿀풀에서 개인전 <내가 본 것, 네가 본 것: 호상근 재현소(Things I’ve seen, Things you’ve seen: HOSANGUN REPRODUCTION OFFICE)>를 열었다. 2012년 <구석진풍경>이라는 책을 출판, 현재까지 ‘호상근재현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