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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미술 세계의 의사, 회화보존전문가 조자현

미술 작품을 치료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

by서울문화재단

우리가 수백 년 전 창작된 미술 작품을 미술관에서 만나기까지에는 많은 이의 노력이 숨어 있다. 특히 미술품보존전문가는 긴 시간이 흘러 손상되고 변형된 미술품을 살려내는 ‘미술계의 의사’다. 국내에서도 점점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는 보존복원전문가의 세계에 대해 알아본다.



미술 작품을 치료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미술 작품도 아프다. 저마다 다른 형태와 증상으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앓고 있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마치 환절기에 감기에 걸리듯 사계절에 의한 기온과 상대습도의 큰 폭의 변화, 자외선, 미세먼지 등 자연과 환경적인 요인에 인해, 또는 사람들에 의한 사고로 의도치 않게 손상된다. 제작 연도가 오래되어 자연 노화현상을 겪기도 한다. 이렇게 손상된 예술품 중 운이 좋은 경우 작품의 소장자나 큐레이터에 의해 병원을 찾게 되는데 그곳에 바로 미술품보존전문가들이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미술품 보존・복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전문 보존가의 부재와 보존과학에 대한 몰이해 및 오해가 올바른 보존・복원의 기반을 구축, 시행하는 데 걸림돌이 될 위험이 있다. 많은 이들이 미술품 원본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복원이나 보존에 대해서는 매우 낯설어한다. 작품의 원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보존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아직 미술품 복원이 하나의 전문 분야로 인정받기보다 비밀리에 하는 작업으로 인식되며, 작품에 복원 이력이 생길 경우, 작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문 보존가의 직업에 대한 인식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복원과 보존의 개념이 혼용되지만, 미술품 보존에 있어 장인의 경험에 의해 공방에서 이루어지던 전통적 방식의 복원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고, 전 세계적으로 과학적・분석적인 방법론이 복원 분야에 도입되며 보존과학의 세계가 도래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미술 작품을 치료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애정은 기본, 미술사부터 유기화학까지 두루 섭렵해야

회화보존전문가가 되겠다고 결정한 것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난 후였다. 다양한 시각예술 장르에서도 회화는 개인적으로 가장 친근한 형식이자 재료이고 선호하는 매체였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예원학교를 거쳐 학부에서도 미술 실기를 꾸준히 했지만, 창작에서 이루어지는 보람보다 미술 작품에 대한 이론, 사회학, 심리학, 미술사적 관점으로 보는 회화의 세계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당시 타학과의 과목 중에 미술품보존학개론에 관한 강의가 있었는데 청강 허락을 받고 수업을 참관했다. 이를 통해 회화 보존 세계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으며, 회화를 오랫동안 그리고 다양하게 공부해왔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 학교의 회화보존학과 과정은 아카데믹한 영어 점수를 기본으로 유기화학, 물리학, 미술사, 보존과학과 분석학, 보존윤리, 보존실습 및 이론 등을 포함해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석사 논문까지 마쳐야 했기에 만만치 않았다. 2년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영어로 수업과 실습과정이 진행됐고, 주말과 방학기간은 과제 및 리서치, 석사 논문 준비로 도서관에서 지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공부하고 습득하는 모든 것이 새롭게 접하는 것이며, 회화 작품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동기 부여가 확실했다. 특히 1학년 여름방학 기간에 영국 테이트(TATE) 미술관에서 연수를 받으며 국제학회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함께 연구했던 선생님들이나 동문들과의 지속적인 네트워킹은 여전히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본성을 지키는 윤리의식, 예술적 가치의 지속적인 연구 중요

회화보존전문가는 기본적으로 회화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고, 동시에 회화 작품의 물성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유기화학적 접근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또한 보존처리에 앞서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기준에 의해 미술 작품이 변형되거나 수정되지 않아야 함을 보존윤리의식으로 지키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보존처리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보존의 세계를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복원하기에 앞서 작가의 재료와 기법을 통한 물성 리서치, 미술사적 맥락을 통한 예술적 가치 연구, 수많은 보존 테스트 과정을 거쳐 작품에 최소한 개입해 원본성을 지켜야 한다.


보존전문가는 작품의 수명을 연장하고, 작품의 보존처리 후 보존되는 환경 조성을 계획 및 제안하는 ‘미술 세계의 의사’다. 훼손된 작품들 중 대부분은 먼지, 황사, 곰팡이, 이물질에 뒤덮여 있다. 이를 ‘때’라고 통칭했을 때 ‘때’를 이루는 구성 물질이 중금속인지 미생물인지에 따라 제거하는 용제도 달라진다. 이에 사용하는 약품과 열악한 작업환경은 보존전문가의 건강 상태를 좌우하기도 한다. 한편 찢기고 균열이 간 작품들이 내 손을 거쳐 건강을 되찾았을 때, 소장자나 담당자가 보존처리된 작품을 보고 흐뭇해할 때 보존전문가는 보람을 느낀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 협업에 의한 보존처리는 더욱 값지다.


나는 보존전문가로서 작품의 올바른 보존처리와 함께 예방 보존(preventive conservation)의 차원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지난 세기의 작품을 감상하듯, 20세기의 작품들도 먼 미래, 다음 세대에게 감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앞으로도 국내의 모든 회화 작품을 작가의 인지도로 가름하지 않고 하나의 문화재로 여기며, 올바른 미술품 보존・복원 인프라 구축과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저술 활동과 연구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고자 한다.


글·사진 조자현 ZENA Art Conservation Seoul 대표.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노섬브리아대학교에서 회화보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품 보존・복원(컨서베이션conservation)을 키워드로 국내 작가들의 재료와 기법을 보존과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학제 간 연구를 통해 보존을 올바르게 시행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