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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북녘에서 떠내려온 ‘남편 은행나무’ 그렇게 800년…임자, 그곳은 편안하오?

by경향신문

강화도 선착장에서 1시간20분, 민통선 구역 ‘볼음도’

북녘에서 떠내려온 ‘남편 은행나무’

북에서 내려와 800년 한자리를 지킨 볼음도 은행나무는 온 마을 사람들의 거실이자 놀이터였다. 문화재청과 섬연구소는 북과 접촉해 내년부터 양쪽의 은행나무에서 같은 날 함께 제를 지내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나무 하나를 보려고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섬으로 가는 길이다. 지난 16일 아침 일찍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탔다. 승선권에는 ‘야외 숙영 금지’ ‘사진 촬영 및 낚시 금지’ ‘해안선 일대 미확인 물체(폭발물) 촉수 금지’ 등 ‘무시무시한’ 주의사항이 나열돼 있었다. 민통선 안으로 들어간다는 실감이 났다. 차량과 승객을 가득 실은 배는 석모도를 지나 왼쪽으로 내처 달렸다. 1시간20분쯤 지나 목적지인 볼음도에 닿았다.

북녘에서 떠내려온 ‘남편 은행나무’

800년 전 헤어진 부부 나무의 전설

볼음도는 인구 257명(2018년 7월 기준)의 조그만 섬이다. 주민 대부분은 쌀과 고추, 마늘, 땅콩 등 농사를 짓는다. 섬인데도 어업 비중이 작다. 접경지역이라 해안가 출입과 어로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차를 몰아 섬 반대편으로 향했다. 20분이 채 안 돼 도로 끝이 보였다. 해안선에 가까워지니 집집마다 농업용수로 쓴다는 저수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3~4년 전부터 심었다는 연꽃이 퍼져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 왼쪽으로 800년 됐다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4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밑동 둘레가 10m, 키가 24m에 이르는 나무는 멀리서 봐도 위용이 당당했다. 시골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당산나무 같은 풍채지만 풍기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은행나무 왼쪽으로 난 조그만 오솔길을 올랐다. 언덕 위에는 큼지막한 정자와 벤치가 준비돼 있었다. 앞을 바라보니 바다 건너 북녘땅이 선명했다. 하늘은 맑았고 시야도 좋았다. 멀리 해주 수양산의 능선이 뚜렷이 보였다. 정자 앞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보니 바다 맞은편의 북한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 들녘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왔다. 볼음도에서 불과 5.5㎞ 떨어진 그곳이 바로 은행나무의 고향이다.

북녘에서 떠내려온 ‘남편 은행나무’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온 주민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고려시대인 800년 전 큰 홍수가 났고 호남리에 있던 부부 은행나무 중 수나무가 뿌리째 뽑혀 떠내려왔다. 볼음도 주민들이 그걸 건져 바닷가에 심었다. 오가는 어부들을 통해 은행나무 부부의 소식을 알게 된 남북의 주민들은 매년 정월 그믐에 풍어제를 지내며 헤어진 두 나무를 위한 제를 같이 올렸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남북이 함께 치르던 이 행사는 맥이 끊겼다. 볼음도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어업이 쪼그라들며 풍어제 역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노릇을 했다.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며 섬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그날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은행나무 아래서는 더운 줄을 몰랐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옷자락이 쉴 새 없이 펄럭였다. 신기했다. 볼음1리 이장 김희신씨(66)는 “은행나무 그늘이 천연 냉장고”라고 했다. 에어컨이라는 게 없던 시절 여름이면 주민들은 은행나무로 피서를 왔고, 대낮에도 잠깐만 누워있으면 한기가 돌아 금세 집으로 돌아갈 정도였다고 했다. 나무 밑동에선 둘러앉은 어른들이 밀거적을 짜고, 높은 가지마다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재잘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은행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면 두껍고 튼튼한 가지들이 얽혀 뻗은 모습이 꼭 거미줄 같았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처럼 수많은 사연을 나무는 지켜봐왔다. 단오 무렵이면 동네 청년들은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달았다. 동네 개구쟁이들은 그네를 타다 곧바로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곤 했다. 볼음도에서 나고 자란 오형단씨(59)는 은행나무 아래서 데이트하던 추억을 들려줬다. “바로 앞이 바닷가 백사장이니 분위기 좋잖아요. 밤에 데이트하다 군부대 차가 지나가며 라이트를 비추면 얼른 나무 뒤로 숨고 그랬는데…” 회상하던 오씨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바다를 압축한 조개회의 맛

북녘에서 떠내려온 ‘남편 은행나무’

갯벌은 섬을 먹여살린다.

섬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인 ‘저어새둥지’에 짐을 풀었다. 주민들이 공동 운영하는 그곳 식당에서 김밥을 먹던 박진화 화백(61)을 소개받았다. 민족미술인협회 회장을 지낸 그는 20년 강화도 생활을 정리하고 4년여 전 볼음도에 정착했다. “섬에서 팽팽한 생성의 기운이 느껴졌어요. 높은 산 하나 없이 나지막한 데다가 갯벌이 쫙 펼쳐진 모습이 잉태가 가능한 여성 같은 느낌이랄까. 여기서 작가로서 제2의 출발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방문한 첫날 작업실을 옮기겠다고 말을 꺼냈죠.” 볼음도에서 그는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4월’이라는 제목을 단 5개의 연작을 완성했다. 억울하게 간 아이들을 위해 바친 그 나름의 씻김굿이었다.


작업실 구경을 하고 차까지 얻어 마신 뒤 박 화백과 함께 오후 2시쯤 갯벌로 나섰다. 연간 2만명을 넘나드는 볼음도 관광객 대부분은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는 이 갯벌 체험을 하러 오는 이들이다. 트랙터나 경운기를 타고 간조 때면 7㎞ 이상 펼쳐지는 광활한 갯벌로 나가 백합을 캔다. 볼음도 주민들은 최고 품질의 백합이라 해서 ‘상합’이라고 부른다.


덜컹거리는 트랙터 짐칸에 타고 한참을 달려 바닷물이 찰랑대는 갯벌 끝부분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덕적군도의 섬들이 아스라이 점처럼 보였다. 오른쪽의 작고 희미한 점은 소연평도라고 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있는 길잡이용 나무 기둥이 아니라면 길을 잃기 딱 좋을 만큼 갯벌은 정처 없이 넓었다. 수백m가 넘게 이어진 건강망(바닷물이 드나들 때 걸리는 고기를 잡기 위해 갯벌에 길게 둘러친 그물)이 아득한 느낌을 더했다.


백합은 쇠로 된 끌개인 ‘그레’를 갯벌에 집어넣고 줄로 끌면서 잡는다. 그레에 뭔가 탈칵 걸리는 소리가 날 때 호미로 파보면 큼지막한 조개가 들어있다. 높새바람이 심해 1시간 동안 그레를 끌고도 두 사람이 12개의 상합을 캐는 데 그쳤다. 수확은 많지 않았지만 묵직한 주머니를 들고 돌아오는 기분이 삼삼했다. 잡아온 상합을 숙소 식당에서 시식했다. 관광객들은 주로 조개탕이나 찜을 해먹고 라면에 넣어 먹기도 한다. 섬 주민들은 회로 먹는 걸 즐긴다. 상합은 해감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주방에서 금세 입을 벌린 조개를 큰 접시에 담아내왔다.

북녘에서 떠내려온 ‘남편 은행나무’

조개 한 알에도 강화 바다가 그대로 들어 있다.

생전 처음 먹어본 조개회는 비리지 않고 담백한 맛이었다. 오래 씹을수록 입안에 단맛이 은은하게 퍼졌다. 초장을 찍지 말고 그냥 먹으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그래야 “조개 하나에 강화 바다를 압축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상합은 입을 벌리지 못하게 무거운 돌로 눌러두면 여름에도 사나흘씩 산 채로 보관이 가능하다.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이정운씨는 “노인들도 물때 맞춰 반나절만 일하면 하루 10만원 정도를 거뜬히 벌 수 있으니 상합이 섬의 효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볼음도는 다른 강화의 섬처럼 밴댕이와 농어 등 지역 수산물을 활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특이한 것은 농어 백숙이다. 3㎏이 넘는 씨알 굵은 농어를 통째로 끓이면 사골 국물처럼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데 청양고추 넣고 소금 간만 살짝 한 그 맛은 한번 먹어보면 잊기 힘들다 했다.

북녘에서 떠내려온 ‘남편 은행나무’

은행나무 앞에서 수십년 만에 다시 벌어진 잔치판에서 섬 사람들은 흥겹게 어울렸다.

다음날 오전 은행나무 아래에 주민 100여명이 모였다. 남북으로 헤어진 은행나무 부부의 재회를 기원하고 한반도 평화를 비는 행사가 열렸다. 섬연구소가 제안하고 문화재청과 강화군청이 예산과 집행을 맡아 만든 자리였다. 일부러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음력 칠월칠석으로 날을 잡았다. 은행나무 옆에 만든 무대에는 북한 호남중학교 뒷마당에 있다는 암나무(북한 천연기념물 165호) 사진이 걸렸다. 강제윤 섬연구소장은 두 나무에 바치는 평화의 시를 읊었다. “많은 섬사람들 태어났다 떠나고 또 태어나 떠나고/ 볼음도 사람들 온갖 기쁨과 슬픔 곁에서 지켜본 은행나무/ 무궁하시라 강녕하시라/ 이제 우리 겨레 평화 지키는 평화의 나무로 우뚝 서시라.”


한국문화재재단이 준비한 전통공연이 이어졌다. 한국의집예술단이 펼친 태평성대·살풀이 공연에 주민들은 연신 “잘한다” “얼쑤” “좋다” 추임새를 넣었다. 북춤과 풍물놀이로 분위기는 달궈졌고 흥이 난 주민들은 무대 위에서 공연단과 함께 어울려 춤을 췄다. 행사 종료를 알리는 사회자의 말에 한 주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사합니다” 크게 외쳤다. 좌중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진심이 터져 나온 그 인사말 한 마디가 왠지 은행나무에 바치는 섬사람 모두의 마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볼음도 |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