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전 지구로 ‘침입’하는 라쿤…“생태계에 치명적”

by경향신문

기후변화로 서식 가능 지역 북반구 북쪽 시베리아까지 확대

일본 ‘국토 점령’으로 골치…한국도 유기 사례 발견돼 ‘긴장’

경향신문

국내 한 동물카페에서 사육 중인 라쿤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북아메리카대륙이 원산지인 라쿤(미국 너구리)의 서식가능한 지역이 기후변화 때문에 2050년에는 캐나다와 시베리아, 러시아 서부 및 중·러 접경지역, 몽골 등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란 보고서가 나왔다. 강한 적응력을 내세워 세계 각지에 ‘외래종’으로 침입하고 있는 라쿤으로 인한 생태계 피해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프랑스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은 지난 6월24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리포츠’에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라쿤의 서식가능지역 확대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이 기후변화 시나리오 가운데 RCP8.5 경우로 분석한 결과, 현재는 라쿤 서식이 불가능한 지구 북반구의 북쪽 지역까지 서식가능지역이 넓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 시나리오 RCP8.5는 인류가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아 지구 평균기온이 가장 크게 상승할 경우를 상정한다.

경향신문

라쿤이 현재 서식가능한 지역은 원산지인 북미 대부분 지역을 비롯해 남미 중부와 남부, 아프리카 중부와 남부, 유럽 전체와 중동 일부, 중앙아시아 일부, 중국 및 한반도 전체, 동남아시아 일부, 호주 중부와 남부 등지에 걸쳐있다. 사실상 북극·남극권과 사막, 열대지방 등을 제외한 지구 대부분 지역이 외래종 라쿤의 서식가능지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연구진은 라쿤의 서식가능지역이 크게 확대되는 것 중에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지구 북반구 아한대지역의 숲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아한대지역의 숲에 라쿤 같은 새로운 포식자가 나타날 경우 현재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태계 전체에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라쿤은 인간이 보기에는 귀여운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생태계에서는 엄연한 포식자다. 라쿤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은 특히 크기가 작은 소동물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라쿤은 소형 무척추동물, 개구리 등 양서류, 조류와 그 알, 작은 포유류 등을 먹이로 삼는다. 도시환경에 적응한 라쿤의 경우 주로 음식쓰레기 등을 먹고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후 조건만 맞으면 어느 지역에서나 어떤 먹이를 먹고도 살아남는 적응력을 갖고 있다.


이미 외래종 라쿤으로 인한 생태계 피해가 일어나고 있는 유럽의 경우 1930년대 독일에 처음 도입된 이래 주변국으로 퍼져나가면서 현재는 유럽 전역에서 라쿤이 확인된다.


일본의 경우 1960년대 처음 도입된 뒤 현재는 47개 도도부현(광역지방자치단체) 가운데 42곳에서 서식 사실이 확인됐다. 일본의 경우 라쿤이 주인공이었던 애니메이션(맨 위의 그림) 이 인기를 끌면서 반려동물로 삼았던 이들이 1500여가구에 달했다. 그러나 가정 내 사육에 적합하지 않은 라쿤의 특성으로 인해 다수가 버려지면서 역시 일본 전역에 야생상태의 라쿤이 들끓게 됐다. 이 밖에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에서도 다수의 라쿤이 확인된 바 있다.


국내의 경우 아직 라쿤이 야생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는 않지만 동물카페에서 사육하는 개체와 개인이 기르는 개체 등이 야생으로 퍼져나갈 위험이 높은 상태다. 실내 사육에 부적합한 라쿤을 몰래 버린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무책임하게 라쿤을 기르는 이들 때문에 국내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 요크대의 동물행동학 연구자인 수전 맥도널드 교수는 지난달 30일 ‘내셔널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라쿤은 귀여워 보이지만 교활한 동물이기도 하다”며 “예비지식도, 대응책도 없이 들여올 경우 라쿤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생물들 다수가 희생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