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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나는 착한 의사로 살고 싶었다” 유서 남겼지만…여전한 현실

by경향신문

그의 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것이 내 블로그 마지막 글이다. 그저 보통의 착한 의사로 살고 싶었지만 세상은 허락해주지 않았다.”


지난 3월 한 성형외과 전문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성형○○’ 블로그에 A4용지 9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그는 “한 번의 죽음까지 생각했던 나였기에 다시 의사로 사는 것이 행복했고, 내일 죽을 생각으로 오늘을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남기고 간 유서에는 그가 열심히 살려 노력한 ‘현실’의 수많은 오점들이 기록돼 있었다. 그가 운영하던 블로그에는 여전히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지만, 유서는 비공개 상태로 전환돼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그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많은 환자들은 최근까지도 그의 블로그에 진료상담을 문의하고 있었다.

경향신문

양심의 가책 받지 않는 유령의사 현실

그는 유서에 “착한 의사로 살고 싶었지만 살 수 없었다”고 했다. 그와 같은 대학 출신인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답답할 정도로 착한 친구였고, 환자에게는 한없이 좋은 의사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인은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했던 사람이고, 몸을 망쳐가면서도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주변 사람들은 그가 이토록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유서 속에는 대학병원 안의 부당한 시스템 구조와 능력과 관계없이 벌어지는 파벌싸움, 그리고 유령수술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령수술은 환자가 자신의 수술을 해주기로 한 의사가 아닌, 환자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의사 또는 의료진 등이 집도의 대신 수술을 시행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그는 대학병원의 파벌에 치여 개업병원 쪽으로 밀려났고, 그곳에서 원치 않는 대리수술을 해야만 했던 ‘유령의사’였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유령의사는 대표원장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개원한 뒤 또 다른 유령의사를 부린다. 유령의사가 또 다른 유령의사를 낳는 해괴한 구조가 현재 대한민국 성형업계에 퍼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처럼 자신의 행위를 폭로하고, 내부고발하는 의사는 드물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자신이 유령수술을 하지 않는 의사라도 같은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에 대해서는 묵인해야 한다는 일종의 변태적인 동업의식이 의사들 사이에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의 유서를 옮긴다.


“말하지 않고 생을 다하는 건 너무 억울하다. 나도 비난받을 것이다. 내부고발자가 우리나라에서 보호되지 못하지 않는가? 나는 많이 망설였지만, 사실 이 같은 일은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 나도 주위에서 보았고, 들었다. 더 많은 전공의 선생님과 종국에는 환자분들의 피해가 없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나는 글을 써야 했다. 진실은 그래도 밝혀져야 한다. (중략)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어보면 저(低)수가의 뒤틀어진 의료시스템에서 사악하지 않게 착한 의사로 살아가려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바지 기장 줄이는 것보다 얼굴의 열상 봉합수술 수가가 더 싼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의사들은 치료라는 의사의 기본에 충실하기 힘들다. 또 무분별한 결과가 입증 안 된 각종 미용성형, 소비자를 속이는 시술과 수술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 보건의료 저수가 시스템이, 자본이 의사들을 어쩔 수 없는 돈 버는 공장으로 가도록 이래저래 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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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대학병원은 끼리끼리 그들만의 리그로 온전하게 건설되어 있다. 다들 미용성형이 돈이 되니까 그곳으로 몰린다. 생명과 재건치료는 오히려 너무 헐값이 되어버렸다. 매우 실력 있는 의사들과 비전문의 의사들이 점점 미용성형 시장으로 빠지고 있다.”


“2017년 가을부터 개원 이래 조직적으로 시행된 유령수술의 온상에서 나는 더 있을 수 없었다. 이 유령수술은 직원들 모두 알고 있어도 점차 그 나쁜 짓에 둔감해졌다. 수익을 위해서 공장 시스템은 더 가속화되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종용하는, 종용되고 있는 비윤리적인 유령 대리수술은 할 수 없었다. 이런 나를 바보 같다고, 먹고살려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그간 아파서 쌓인 빚들을 갚으려면 그래도 유령수술을 하며 자기 합리화를 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지만, 그간 내가 살아온 의사로서 인생을 이 비도덕·비윤리적 불법행위에 송두리째 버리기는 싫었다. 아니, 그렇게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내 삶의 존재가치를 이렇게 버릴 수는 없었다. 이 직업을 유지하고자 환자에게 나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저수가로 인한 의사들의 미용성형으로의 진출, 과당경쟁, 덤핑, 공장식 병원운영, 대리 유령수술, 달콤한 과장·허위 성형광고, 사람들의 성형에 대한 가볍게 여김, 아름다움의 본질 왜곡, 어린 사람들의 무분별하고 위험한 성형, 사악한 마케팅 업체의 난립, 이 모든 것이 악순환되고 있다. 거대 병원에 종사하는 간호조무사, 코디네이터, 젊은 의사들, 이 사람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각종 불법과 증명되지 않은 (시술을 하면서) 성형에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고자 비자발적으로 동참하다 결국은 윤리에 둔감해져 자발적으로 동참한다. 성형시장에 종사하는 이들은 갈수록 악해지고 있다.”

윤리에 둔감해지는 성형시장 종사자

“이 모든 것은 이 의료제도를 이렇게까지 파탄내고, 의료를 경시하게 만든 정부의 책임이 크다. 소수의 악한 의사와 자본들이 많은 사람을 의료의 악의 연대로 몰아넣고 있다. 나는 이 미용성형 악의 연대의 중심에서 더 이상 의사로서의 가치를 찾기 힘들었다. 실존의 의미를 잃은 나의 몸은 이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다. 내 지금 고발과 내 종국의 선택이 공장식 병원과 의원에 종사하는,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불법의료와 부도덕에 가담한 어린 간호조무사들도 함께 힘들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그리 가서는 안 되고, 아무도 이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더 악화될 것이다.”


그가 의료계의 문제를 내부고발하며 스스로를 내던진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가해자이자 방조자인 의료계와 보건복지부는 그의 죽음을 잠깐 추모했을 뿐이다. 2016년 8월 윤소하 정의당 의원의 유령수술 금지조항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 발의로 현재 의료법 제24조의 2항에는 유령수술 금지조항이 명문화돼 있지만 이 법조항은 유령수술을 시켰거나 유령수술을 한 의사를 상해 또는 살인으로 처벌할 수 없는 ‘의사 보호법’으로 전락해버렸다. 적발돼도 일정 기간의 자격정지 처분만 있을 뿐 법 스스로 그들이 살인자는 아니라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무색할 정도로 유령수술은 변형된 형태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강남의 한 대형 성형외과 병원에 근무 중인 다른 의사는 자신의 진료과, 취업시기 등을 모두 공개하지 말아달라며 짧게 고백했다.


“나는 유령수술 병원으로 알려진 많은 병원 중 한 곳에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의사다. 나는 이곳에서 의사가 아닌 상담실장의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 떠다니는 유령으로 살고 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