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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김진의 나 혼자 간다(16)

숲을 헤치며 오르는 산악열차…발걸음 가볍게 ‘편백의 나라’로

by경향신문

대만 아리산


해발 4000m 육박 ‘대륙 스케일’ 중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

일제 수탈 목적 산림철도 재활용한 ‘빨간색 협궤 열차’ 인기만점

운무가 키운 녹차밭 장관…종착지 신목역, 건물 없이 나무 플랫폼

경향신문

아리산 최고령 수목인 이 편백나무는 무려 2300년을 살았다. 높이 45m, 둘레 12.3m에 달한다. 밑동에서 올려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아리산엔 장수하는 나무가 흔하다. 뿌리가 죽으면 또 다른 뿌리가 살아나 거대한 나무로 뻗어나간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아리산(阿里山). 자이(嘉義)라는 이름의 도시로 향했다. 자이는 아리산으로 가기 위한 관문 도시로 가오슝에서 북쪽으로 1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자이에서도 시골로 들어갔다. 이튿날 새벽부터 시작하는 산행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오가는 사람은 관광객 몇 명뿐. 썰렁한 마을에 세븐일레븐이 있는 것은 현지 식당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외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는 걸 금세 눈치챘다.


마을 어귀 낡은 간판을 달고 있는 작은 식당. 타이베이의 세련된 레스토랑에 익숙하다면 대만 시골 밥상에 당황할 수 있다. 이것은 연남동이나 강남 번화가에서만 밥을 사먹던 외국인이 전라도의 홍어집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충격과 비슷하다. 닭요리는 정직하게 닭 한마리를 그대로 썼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벼슬과 닭발, 심지어 발톱까지 유지한 채로 나온다. 빨간 소스를 뒤집어 얹은 돼지고기는 발효한 음식처럼 톡 쏘는 특징이 있고, 향신채를 한 포대 정도 갈아 넣은 듯한 부침개는 젓가락을 서성이게 한다. 이것이 시골 인심이고 대만의 솔이라면 여행자로서 어찌 회피할 수 있단 말인가. 먹었다. 꾸역꾸역 허기만 겨우 채우고 나서 호텔로 직행하지 못하고 세븐일레븐을 두리번거렸다.

아리산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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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산의 명물, 산악열차. 창 밖으로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가 닿을 정도로 좁은 협곡을 덜컹거리며 올라간다.

새벽. 버스는 아리산을 빙글빙글 감아 돌며 올라간다. 아리산의 정식 명칭은 아리산국가풍경구. 백두산만큼 높은 다타산(2663m)을 포함해 해발 2000m가 넘는 봉우리 20여개가 모여 있는 산맥을 통칭한다. 그중 아리산은 해발 2481m에 이른다. 국내 최고봉인 한라산이 2000m가 조금 안 되니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위용이다. 대만은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작은 섬이지만 최고봉인 위산이 해발 4000m에 육박할 정도로 험준한 산세를 자랑한다.


시계추처럼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머리를 차창에 쿵쿵 박다가도 어느새 나타난 푸르른 녹차밭에 시선이 붙들렸다. 대만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아리산’ 브랜드 차를 파는 카페를 발견할 수 있다. 아리산은 세계적인 차 산지로도 유명하다. 구름과 안개가 가득해 ‘운무가 키운 차’라는 별명이 있다. 2시간 반 정도 달리고 나서 관광버스는 들뜬 여행자를 아리산 높은 곳에 토해놓았다. 여기서 미니 산악열차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 트레킹을 시작하게 된다. 아리산 관광상품은 ‘버스-미니 산악열차 체험-트레킹’이라는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만은 높은 산맥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고, 열대와 아열대를 나누는 북회귀선이 아리산 산맥을 가로지른다. 이런 이유로 아리산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운무가 가득하던 하늘에 어느새 산봉우리들이 빼죽 머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년에 30일도 안 된다는 아리산의 청명한 하늘이다.


고작 10분 정도만 달릴 뿐인데도 비싼 가격을 받는 산악열차를 체험해보려고 일부러 아리산에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산악열차는 인기만점이다. 빨간색 빈티지 열차 안에 나란히 앉아있으면 마주 앉은 사람의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다. 철로의 간격이 좁은 협궤이기 때문이다. 덜컹덜컹, 끼이익.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울창한 숲을 관통해 올라갈 때마다 작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천년 나무숲을 걷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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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기울기도 허락하지 않은 채 쭉 뻗은 나무들. 이렇게 키가 크고 곧은 나무는 일제시대에 늘 수탈의 대상이었다.

물기 머금은 흙 냄새가 온몸을 감싸면 이제 본격적인 트레킹이다. 촘촘하게 박혀 있는 이쑤시개처럼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아리산에 빽빽하게 서 있다. 이끼가 뒤덮은 나무 밑동, 땅 위로 스멀스멀 기어올랐다가 다시 자취를 감춰버린 다리통만 한 나무 뿌리,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솟아버린 나무. 열대의 기운을 한껏 받은 나무의 위용이 저돌적이라고 할 만하다. 편백나무는 소나무의 5배나 많은 피톤치드를 발산하는 나무로 강력한 항균, 살균 작용을 한다. 아리산에 오면 만성비염도 고칠 수 있다는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렸다.


중국인들이 대만에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타이베이도 가오슝도 아닌 바로 이 아리산이다. 어쩐지 이 산은 대만에서 보기 드문 대륙 스케일을 뽐낸다. 수령이 1000년을 훌쩍 넘은 나무는 아리산에 흔하다. 최고령 편백나무를 신목(神木)이라 하는데, 나이가 2300살에 이르고 높이는 45m, 둘레는 12.3m에 달한다.


아리산에 대한 기록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제가 매우 탐냈다는 점이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으로 대만을 지배하게 된 후 아리산의 삼림자원 수송을 위해 1911년 아리산에 산악철도를 건설했다. 일본인들이 유독 아끼는 히노키(편백) 목재를 비롯한 수많은 거대 목재를 수송하기 위해 지어진 철도가 바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지금의 삼림열차다. 아리산에서 지름이 1~2m는 될 만한 나무 밑동이 싹뚝 잘린 흔적들은 모두 일제의 만행이다. 아리산은 일제의 남벌로 인해 크게 훼손됐지만 이후 인공림을 조성하면서 천년 수령의 고목 사이로 어린 나무가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역사가 남긴 다른 흔적

대만을 여행하다 보면 일제 식민 잔재를 관광상품으로 재활용해 랜드마크 수준으로 만들어놓은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아리산의 삼림철도도 그렇고, 타이베이의 일제시대 양조장을 뜯어고친 화산1914창의문화원구와 일제의 담배공장이었던 송산문창원구가 대표적이다. 자이 시내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히노키 빌리지도 그렇다. 히노키 빌리지는 일제강점기에 산림업을 담당하던 일제 관료들을 위한 숙소 29채가 보존돼 있는 지역이다. 대만보다는 일본이 강하게 느껴진다. 대만 사람들은 기모노를 빌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작고 섬세한 것을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와 달콤한 먹거리는 얼핏 봐도 일본을 닮았다. 일제 마을에서 학사복을 입고 졸업사진을 찍는 대학생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기까지 했다.


50년 동안 일제의 지배를 받았지만 대만은 일제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유럽, 일본, 중국의 정치적 간섭을 오랜 기간 받은 역사적 배경이 있어서다. 특히 일제는 대만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정책을 펼쳤다.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시행한 창씨개명조차 대만에서는 극히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만 했다. 일부 대만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진정한 독립이며 더 큰 일이라고 믿었다. 청나라로부터 찬밥 신세도 겪은 대만이기에 일제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일제가 남긴 잔재를 경제 발전의 디딤돌로 삼거나 관광자원으로 이용해 소득을 올리고 있으니 일본은 크게 미워할 이유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대만 특유의 유순한 국민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대만 곳곳에 화려하게 남은 일제 잔재 앞에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우리와는 식민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아리산 트레킹의 종착지는 신목(神木)역이다. 역사도 없고 나무로 만든 플랫폼만 남았다. 100년 전엔 목재를 날랐고 지금은 고산지대 주민이 재배한 차를 들고 시내로 내려가는 길. 낡은 철로에 서서 서성거리니 시간이 멈춘 듯 느껴졌다. 낡은 역은 직접 재배한 와사비, 옥수수, 산나물을 등산객에게 팔며 소박하게 사는 아리산 고산마을 주민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후텁지근한 대만에서 실내가 아닌 곳에서 쾌적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아리산에서만큼은 레몬처럼 상큼한 하루를 보냈다.


김진 |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