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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지극히 味적인 시장(21)

노란색 가지, 열무 닮은 듯 열무 아닌 배추…너, 보는 맛이 있다

by경향신문

경기도 양평

 

알려지지 않은 양평 특산물, 부추

‘특구’ 별칭에도 관련 음식 드물어

양평 5일장, 규모 크고 활기 넘쳐


문호리 리버마켓 등 직거래 장터

개성 있는 농산물 만날 수 있어

고정관념 깰 수 있는 좋은 기회


용문면에서 만난 ‘소 한 마리 탕’

‘감’이 와서 시켜봤는데 “흥했네”

개군면엔 꼭 들르는 순댓국집도


양수리에 2개 장 서는 내달 9일

강변 경치, 가을 맛 보러 가볼까

경향신문

3일과 8일에 열리는 양평 오일장은 양평역 앞이라는 지리적 장점 덕분에 시장 규모도 크고 찾는 이도 많아 활기가 넘친다.

남양주의 조안면과 양평을 사이에 두고 북한강이 흐른다. 여주, 광주와 맞닿은 곳은 남한강이 흐른다. 양수리 앞에 두 큰물이 만나는 곳이 두물머리다. 두물머리는 지금이야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한때는 양평 유기농업의 메카였다. 2000년 초, 양평을 여행이 아닌 일로 처음 간 것이 두물머리 입구에 있던 팔당유기농협회였다.


포털사이트에서 양평을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두물머리, 해장국, 카페, 맛집, 전원주택 등이 뜬다. 많은 이들이 양평을 자주 찾는 목적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물 좋고, 산 좋은 양평에서 예쁜 곳과 맛있는 곳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식재료를 찾아다니는 필자는 유기농 된장을 제조·판매하는 양평 옥천면 가을향기, 읍내에 있었던 유기농 김치와 수산물 가게, 개군면의 바질과 고추냉이 농장, 서종면의 유기농 더덕 농장 등을 찾아 양평을 많이 오갔다. 양평을 대표하는 것들이 쌀, 딸기 등 많지만 그중에서 생산하는 양에 비해 덜 알려진 것이 ‘부추’다.

양평의 숨은 특산물 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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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부추·실부추라고도 불리는 재래종 솔부추, 양평의 직거래 장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색의 가지와 개성배추(위 사진부터).

오이소박이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밀가루 반죽에 넣고 얇게 부치는, 새콤매콤하게 무쳐 돼지국밥과 궁합을 맞추는, 잘 삶은 꼬막에 갖은 양념과 함께 넣고 무치는 등 다양한 요리에서 부추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 지역에 따라 정구지, 솔, 졸, 새우리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익숙한 식재료다. 경상도에서 옛날에 정구지로 불렸던 부추는 지금의 부추와 달랐다. 우리가 먹고 있는 부추는 일본에서 도입한 ‘그린벨트’와 개량한 품종들이다. 병에 강하고 잘 자라는 그린벨트는 1957년 일본에서 육종한 품종이다. 재래종은 1년에 2~3차례 수확하는데 그린벨트는 두어번 더 수확할 수 있다. 생산성이 떨어져 정구지라 불리던 재래 부추는 사라지고 사투리만 남았다.


양평과 강원도 홍천, 원주와 경계를 이루는 동쪽 끝에 청운면과 양동면이 있다. 두 곳 모두 부추와 연관이 있다. 양동면은 2000년 초반부터 몇몇 농가가 모여 부추 재배를 시작한 곳으로 지금은 부추 특구로 지정될 만큼 부추 재배가 많은 곳이다. 대기업 냉동 만두에도 양동에서 생산한 부추가 들어간다. 양동에서 생산하는 부추는 재래종이 아니다. 양동면이 부추 특구지만 하우스에서 자라는 부추는 볼 수 있어도 부추 관련한 음식은 먹기 힘들다. 재작년부터 가을에 여는 부추축제에서만 잠깐 부추 음식 맛을 볼 수 있다. 양동에 갔다가 우동 한 그릇 먹으면서 딸려 나온 단무지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동에 단무지도 좋지만, 양동이라면 부추로 만든 겉절이가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동 북쪽에 있는 청운면에는 봄철에만 나는 산부추가 있다. 부추는 백합과의 작물로 양파, 파, 마늘 등과 같은 집안이다. 부추는 양파나 파처럼 황화합물인 알리신 성분을 가지고 있어 아린 맛과 특유의 향이 있다. 재배 부추가 생산성은 일본 품종보다 떨어져도 향이나 맛이 더 진하다. 지역마다 재래 부추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솔부추 정도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살 수 있다. 영양부추, 실부추는 솔부추를 달리 부르는 것으로 정식 명칭은 솔부추가 맞다.


3일과 8일에 열리는 양평의 오일장은 다른 지역과 사뭇 달랐다. 서울과 인접한 위치에 전철이 정차하는 양평역 앞이라는 지리적 장점으로 시장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상설 시장 주차장을 중심으로 시장이 서고 주변 골목을 따라 이어졌다. 시장의 규모도 규모지만 파는 사람, 사는 이도 많아 장터에 활기가 차고 넘쳤다. 흥정이 이뤄지는 풍경에 절로 흥이 느껴질 정도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강원도나, 경북의 농산물이 모였다. 다양한 농산물이 있지만 양평에서 생산한 것 찾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오일장의 중심은 외지 상인들과 농산물이 자리 잡고 있어 양평의 농산물은 더 찾기 힘들었다. 안동산, 서산산 제철 생강은 많아도 양평에서 생산한 생강은 찾기 힘들었다. 양평 오일장의 유일한 아쉬움이다.

직거래 장터의 묘미

양평의 맛을 오롯이 즐기기에는 양평 서종면에서 열리는 문호리 리버마켓이 제격이다. 리버마켓은 2014년부터 200번 넘게 장이 서고 있는 대표 직거래 장터다. 양평읍 오일장이 제일 큰 장이지만 유일한 것이 아니듯 리버마켓이 양평에서 유일한 직거래 장터는 아니다. 올해 처음으로 직거래 장터를 연 ‘두물:뭍 농부시장 자연으로부터’가 있다. 농부시장은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별도의 시간도 마련돼 있지만 물건을 고르면서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재미가 있다. 사전에 SNS로 신청하면 미각 교육이나 각자 준비해온 찬을 앞에 두고 재료와 음식에 대한 본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직거래 장터라고 저렴한 것은 아니다. 직거래 장터에 나오는 농산물이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늘 먹던 것이라도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배추만 하더라도 익숙한 배추 대신 열무 모양과 비슷한 개성배추를 구경할 수 있다. 가지는 대부분 보라색을 떠올리지만 사실 보라색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얀색, 녹색, 노란색 등 다양한 가지가 있어도 다양한 경험이 없는 탓에 보라색만 떠올리게 된다. 한 번 고정관념이 생기면 깨기 어렵다. 다양한 경험이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토대가 된다. 아이들과 함께 장터 구경을 하면 좋은 이유다. 리버마켓보다 규모가 매우 작지만 시작하는 장터치고는 내실이 꽤 있거니와 작은 규모라 친밀감이 있다. 11월까지 격주 토요일(11월9일, 23일)에 열리기에 양수리 토요장터와 두물머리를 같이 구경하면 좋다. 홈페이지(https://fromnature.imweb.me/)


양평에는 수많은 식당이 있다. 거나하게 차린 상차림에 고기나 장어를 굽거나 닭이며 민물고기로 끓인 탕이나 찌개를 올린다. 한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메뉴도 강변 구경만큼 쉽게 맛볼 수 있다. 집밥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그냥 일상의 반찬이 오른 평범한 밥상이었다. 집밥을 이야기하며 특별함을 내세우는 곳이 많지만 풀뿌리 식당은 엄마가 늘 차려주는 밥상과 비슷하다. 딱히 꾸미지도, 무엇인가 더하지도 않는다. 몇 가지 반찬에 고기가 더해지는 날이면 7000원에 딱 1000원 더 받을 뿐이다. 몇 년 동안 지역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꾸러미’ 사업을 하다가 식당을 차렸다. 꾸러미를 만들기 위해 공동구매한 지역 농산물 위주로 만든 찬으로 식단을 짠다. 어묵 등 몇 가지 가공식품을 제외하고는 재료는 지역의 것만 쓴다. 화려함은 없지만 진솔함은 가득 찬 밥상이다. 주문하기 전에 1000원을 더 내면 공정무역 커피가 후식으로 나온다. 별도의 예약이 없으면 점심만 엉업한다. 풀뿌리 밥상 010-6230-7729

가을에 누리세요, 양평의 맛

천년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면에도 5일과 10일에 장이 선다. 양평 읍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웬만한 군 단위 장과 규모가 비슷할 정도다. 용문역 바로 앞부터 시작하기에 전철 타고 구경 삼아 가기 좋다. 시장 구경 삼아 몇 바퀴 돌다 보니 어느 식당에서 내세운 세움 간판 중에서 ‘소 한 마리 탕 8000원’ 메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여행이나 출장 중 괜찮은 ‘감’이 발동할 때가 있는데 딱 그 순간이다. 물론 망하는 때도 있지만 흥하는 경우도 비슷하게 있기에 느낌 따라 식당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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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원의 행복’ 소 한 마리 탕, 지역 농산물 위주로 차려낸 풀뿌리 밥상, 삶은 간조차도 고소한 개군면의 대표 메뉴 순댓국(위 사진부터).

주문한 탕을 받아 보니 오늘은 ‘흥’한 날이었다. 한우를 사용했으나 8000원이라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뽈살, 머릿살, 양지, 심줄, 사태가 부족함 없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한우 썼다고 하면 1만원, 2만원 훌쩍 넘어가는 식당이 태반인데 8000원이다. 다음에 용문 갈 일이 있다면 1만2000원 하는 갈비탕도 좋을 듯싶다. 소 한 마리 탕 수준으로 봐서 ‘역대급’ 갈비탕을 맛볼 것 같다. 식당 이름에 목장이 들어가지만 목장 직영은 아니다. 양평군에서 생산한 한우만 사용한다. 산채한우목장 (031)771-1172


양평 개군면은 적어도 필자에게는 한우 브랜드화의 효시 같은 곳이다. 1997년 분당의 모 백화점이 개점하면서 다른 곳과 달리 개군한우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워 인기몰이했다. 개군한우의 성공 이후 시·군마다 생산하는 한우에 별도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또한 수소를 거세한 한우가 고급 브랜드 육으로 자리 잡은 계기기도 했다. 한동안 개군 하면 한우만 떠올리다가 지금은 순댓국이 먼저가 됐다. 십몇년 전 양평 개군에 있는 유기농 된장을 만드는 곳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한 순댓국집에 들렀다. 같이 나온 삶은 간의 고소한 맛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순대를 주문하면서 보통은 잡내 나는 곳이 많아 간은 빼 달라 한다. 이 집 돼지 간은 고소함이 남다르다. 삶은 간이 맛있으니 국물이나 순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양평 출장길에 해장국은 찾아 먹지 않아도 순댓국만큼은 찾아 먹는다. 양평읍에서 20분 정도 가야 개군면이다. 읍내에서도 먼 시골이지만 식당 문 열기 무섭게 손님이 가득 찬다. 개군할머니토종순대국 (031)772-8303


이런저런 일로 일주일 동안 양평에 세 번 갔다. 푸른빛이 완연했던 나무들이 이틀 뒤가 다르고 그 하루 뒤가 사뭇 다르게 노란빛을 띠었다. 다음주에 갈까, 하다 보면 단풍은 봄꽃처럼 금세 사라진다. 양평 양수리에 두 개의 장이 서는 11월9일, 단풍구경 삼아 나들이하면 좋을 듯싶다. 강변에 어리는 노을이나 야경도 가장 예쁜 시기가 가을이다.


필자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