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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아파트를 찍는 공학도…
나는 ‘아파트 덕후’입니다

by경향신문

재건축 앞둔 아파트 주로 찍는 건 사라질 것에 끌리기 때문, 철거 땐 마음 아파서 안 가죠

1980년대 말 지은 25층짜리 상계주공 4단지는 중간 몇 층이 ‘뻥~’…지금은 상상조차 어려운 ‘놀이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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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계주공4단지 뒷모습. 3개층 6개 집 크기 공간이 뚫려 있다. 설계 당시에는 놀이터로 만들었다.

최종언씨(30)는 아파트를 찍는다. 아파트만 찍는다. 아파트 사진을 찍어 올리는 트위터 계정 ID는 ‘CDAPT’. 그가 사는 창동아파트의 줄임말이다. 트위터 자기소개는 한 줄이다. “아파트를 좋아함.” 재건축 예정인 아파트 단지들을 찾아다니며 철거되기 전 사진을 찍고, 새 아파트 입주 전 최대 전기부하를 점검하는 의미로 하는 ‘점등식’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는 ‘성냥갑’이라며 폄하하는 곳, 누군가에겐 그 평범함조차 부러운 꿈의 주거공간이 된 아파트. 3D프린터를 만드는 공학도는 어쩌다 아파트에 빠졌을까. 지난 12일 ‘아파트 덕후(아파트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 아마추어 사진가 최종언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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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토요나카시 센리뉴타운. 일본 아파트의 세 가지 타입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어쩌다 아파트를 찍게 됐나요.


“저는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았어요. 서울 도봉구 창동 주공아파트 2단지에 살다 19단지 앞에 있는 동아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요. 어느 날 생각해보니까, 창동 주공 1~4단지가 있고, 17~19단지는 있는데 중간이 없는 거예요. 문득 1단지부터 19단지까지 찾아서 한 번씩 돌아보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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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동 동아아파트. 최씨가 찍은 첫 번째 아파트 사진.

중간 단지들은 찾았나요.


“네(웃음). 원래 창동 옆 상계동에 주공 1단지부터 19단지까지 있었던 거예요. 17~19단지는 지어질 때는 상계동 소속이었는데,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갑자기 창동주공아파트로 이름만 바뀐 거죠.”


그게 아파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나요.


“네. 보통 아파트 자체를 구경하러 가진 않잖아요. 아파트는 그냥 콘크리트 덩어리인데 볼 게 뭐 있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아파트만을 대상으로 관찰해보니까 재밌었어요. 특히 30~40년 된 대단지는 나무가 정글처럼 울창하게 우거진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옛날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없어서 뿌리가 더 깊게 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무와 건물들이 같이 있는 게 보기 좋더라고요. 재건축이 되면 나무들이 잘리거나 옮겨지거나 그러죠.”

현관 앞 정원이나 산책길, 정글 같은 나무들 속 대단지…창문·비상계단·모서리 등 오래된 아파트, 자세히 보면 각양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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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의정부 용현주공아파트 단지와 나무.

피사체로서 아파트만의 매력은 뭐죠.


“아파트가 다 똑같이 생겼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달라요. 현관도 어떤 곳은 정원으로 만들어져 있고, 어떤 곳은 산책길로 이어지고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아파트들도 조금씩 생김새가 달라요. 창문의 크기, 비상계단이 난 방향이나 모양, 모서리의 깊이 등등. 그런 걸 발견하는 게 재밌었어요. 상계주공 4단지 아파트는 1980년대 말에 지어졌는데 그 당시 초고층(25층) 아파트였대요. 근데 아파트 중간 몇 층(여섯 집)이 뻥 뚫려 있더라고요. 신기해서 알아봤더니, 원래 설계 당시에는 놀이터로 만들었던 공간이래요. (아파트 중간층에 놀이터를 만들었다고요?) 네. 근데 충간소음 때문에 없어지고 텅 빈 공간이 됐대요. 그런 걸 알아가는 것도 재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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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지하실. 몰래 들어가서 찍은 곳. 경비원들의 휴게공간으로 사용 중이었다. (오른쪽)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계단.

최씨는 아파트 전경과 함께 아파트와 단지를 이루고 있는 부분을 나눠 사진을 찍는다. 최근 ‘현관’ ‘모서리’ ‘나무’를 주제로 각각 세 권의 사진집을 독립출판물로 출간했다. 책 표지는 트친(트위터 친구)들의 투표를 거쳤다. 투표는 이런 식이다. ‘모서리 표지 정하기 설문조사’. 1, 둔촌주공의 모서리 2, 삼익비치타운의 모서리 3, 망미주공의 모서리 4, 방배삼호의 모서리. 39%의 지지를 받아 모서리 사진집의 표지는 둔촌주공아파트의 모서리로 결정됐다. 트친들은 그에게 어떤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올리기도 한다. 사진집은 11월15~17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독립출판물 마켓에서 판매했다. 지난 10월15일부터 11월3일에는 아파트 사진을 포스터로 만들어 파는 ‘포스터샵’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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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둔촌주공아파트와 단지 안 굴뚝.

주로 아파트의 어떤 모습을 담나요.


“재건축을 앞둔 오래된 단지형 아파트를 좋아해요. 곧 사라질 곳이라서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신식 아파트는 앞으로 볼 날이 많잖아요. 이주 마감날이 정해지면 캘린더에 날짜를 표시해놓고 찍으러 가요. 사람들이 다 떠나면 펜스를 두르고 못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그 전에 가야 해요. 한번은 막혀 있는 곳을 돌며 찍다가 경비 아저씨한테 걸려서 나오기도 했어요.


철거되는 모습도 보러 가나요.


“음… 마음이 좀 그래서 철거가 진행될 때는 잘 안 가게 돼요. 자주 가던 단지가 갑자기 확 바뀌어 버리는 모습을 보는 게 좀 이상하더라고요. 특히 둔촌주공아파트나 개포주공아파트 같은 곳은 기록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저도 여러 번 갔는데 갑자기 나무들이 다 사라져 있는 걸 보니까 충격이었어요. 재건축이라는 게 엄청나게 큰 사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큰 단지의 아파트와 나무들이 참 거대해 보였는데, 재건축이 시작되면 다 사라져 버리죠. 재건축 예정 단지는 굉장히 특이한 분위기가 있어요.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고, 입장이 다른 분들이 서로 다른 현수막을 걸고 싸우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현장이 정리돼요. 기분이 묘하죠.”

새 아파트, 입주 전 단 한번뿐인 ‘점등식’ 굉장히 멋져…지난달 장례식까지 치른 강원도 태백 화광아파트, 허물어지기 전 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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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락동 헬리오시티 단지 점등식.

점등식도 찍으러 다니죠.


“아파트 수명이 몇십년인데, 점등식은 딱 한 번이니까요. 2년 전쯤 부산에서 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데 뭔가 하얗게 반짝하더라고요. 충주신도시 아파트 점등식이었어요. 정식 입주 전에 최대 전기부하를 점검하기 위해 하는 건데, 실제로 보면 굉장히 멋있어요. 점등식 날짜는 입주민들에게만 문자로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서, 부동산 블로그나 입주민 카페 등을 통해 정보를 검색해요(그의 트위터를 보면 먹방 유튜버가 맛집의 새 메뉴 개시를 놓쳐 아쉬워하는 것처럼 ‘어느 어느 단지 점등식을 놓쳤다’는 멘션이 종종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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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언씨가 지난 12일 서울 남산 회현제2시민아파트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1970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서울시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더 찍고 싶은 아파트가 있나요.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 화광아파트요. 철거 예정이라 10월에 아파트 장례식까지 했대요. 대구 최초의 아파트인 동인시영아파트, 오늘 와 본 남산시민아파트도 다시 와서 찍고 싶어요. 작년 8월 일본 도쿄와 오사카로 휴가를 갔는데, 트위터로 알게 된 일본인 아파트 덕후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아서 닷새 동안 아파트만 돌아다녔어요. 일본 아파트는 창문에 새시가 없고, 아기자기하면서 좀 더 관리가 잘된 느낌이었어요. 우리나라는 재건축을 기대하고 외관 정비를 잘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그때그때 관리를 잘해서 오래된 단지도 깨끗해 보였어요. 유럽의 아파트도 보러 가고 싶어요.”


아파트를 찍고 나니, 주거공간으로서의 아파트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던가요.


“2016년 4월부터 지금까지 아파트를 100곳 정도 찍었어요. 한 곳을 열 번 이상 간 적도 있고, 한 번만 간 곳도 있는데요, 평범해 보이는 공간도 제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더라고요. 아파트를 싫어하고 비판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근데 저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아파트에서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잖아요. 제 포스터샵 전시에 와준 한 30대 여성분이 아파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제 사진을 보니까 여러 추억이 떠오른다고 해주셨어요. 이왕 사는 거, 아파트를 있는 그대로 보고 뭔가 매력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본업은 뭔가요.


“학교(한양대 기계공학)에서 공부하면서 회사도 다니고 있어요. 제가 2학년까지 다니다 3D프린터 만드는 회사를 창업해서 운영했었어요. 사업을 접고 작년부터는 바이오3D프린터 설계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서울과학사’라는 이름으로 3D프린터로 만든 여러 모형을 판매하고 전시하는 활동도 하고요.”


나중에 계속 살고 싶은 주거공간도 아파트인가요.


“아… 사실 제가 돈을 많이 벌면 차고가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긴 해요. 제 전공이 기계라, 제 차 정비를 제 힘으로 해보고 싶거든요. (반전이네요.) 네(웃음).”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