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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김진의 나 혼자 간다

비포선셋, 위고…
어디로든 걸으면 예술이 되살아나

by경향신문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


헤밍웨이가 사랑한 ‘레 되 마고’ ‘카페 드 플로르’,

지금도 영수증에 당당히 박힌 ‘문학 카페’…

콘센트도 없고 테이크아웃도 안되지만 빛이 난다


노트르담 대성당서 빅토르 위고의 역작을 떠올리고,

맞은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찾아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의 애틋하고도 운명적인 재회를 떠올린다

경향신문

영화 <비포 선셋> 에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재회하는 장면을 촬영한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올해로 창립 100년을 맞는 책방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헤밍웨이는 스물두 살이던 1921년부터 7년을 파리에서 지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파리 생활을 추억하는 회고록을 썼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제목의 책이다. “젊은 시절, 파리에서 보낼 수 있는 행운이 그대에게 따라 준다면, 파리는 축제처럼 평생 당신 결에 머물 것이다. 내게 파리가 그랬던 것처럼.” 파리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헤밍웨이는 가난한 무명 작가였다. 헤밍웨이는 왜 그 초라한 시절에 ‘축제’(feast)란 말을 붙였을까. 무엇이 그의 파리 시절을 아름다운 축제로 만들었을까. 파리에 머무는 동안 한 사람의 ‘아름다운 시절’을 생각했다.

가르송이 있어 빛나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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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 문을 연 카페 ‘레 되 마고’는 예술가와 혁명가들이 모이는 사랑방이었다. 20대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낸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이 카페의 단골이었다. 헤밍웨이는 훗날 파리에서의 가난한 무명작가 시절을 “축제”라고 표현했다.

파리는 분명 커피로 자부심을 뽐낼 만한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카페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이기도 하다. 날이 궂어 카페 놀이를 해야겠다 생각한 날이었다. 파리 6구 생제르맹으로 갔다. 쇼핑과 문화의 거리지만, 무엇보다도 ‘카페 드 플로르’와 ‘레 되 마고’가 있어 빛나는 곳이다. 두 카페 사이 도로엔 어느 카페로 들어갈까 망설이는 여행자가 늘 서 있다.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말에 생긴 두 카페는 단골손님도 거의 같다. 랭보, 헤밍웨이, 카뮈, 앙드레 지드, 피카소 그리고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파리 카페 이야기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주인공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다. 사랑을 하되 또 다른 사랑을 인정하고 구속하지 않는다는 계약. 연인은 작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삶과 사랑을 논했을 것이다. 카페는 철학과 문학의 산실이었다. 여전히 카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주최하며 신예작가를 후원한다. 영수증에도 문학 카페라는 말이 당당하게 박혀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카페 역사와 유명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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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카페 문화는 19세기 중반에 꽃을 피웠다. 늘 지식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엔 카페의 수가 20만개에 이를 정도로 흔했다지만 지금은 3만여개로 줄었다. 그 이유에 대해 실내 흡연 금지 때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카르푸에 가도 값싸고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도 흔한 것이 현실인데 휴대폰 충전할 콘센트 하나 없는 오래된 카페를 굳이 현지인이 찾기란 만무한 일 아닌가. 이젠 그저 여행자를 위한 관광명소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만 자부심만큼은 예전 그대로인 듯했다.


인파에 끼어서 작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도저히 사색이 불가능할 만큼 손님이 넘치고 하나같이 수다스러웠다. 눈길을 끄는 것은 빽빽하게 늘어놓은 나무 테이블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웨이터였다. 파리에선 웨이터를 ‘가르송’(garcon)이라 한다. 프랑스 말로 소년·젊은이를 뜻하지만, 사실 카페의 가르송은 모두 나이 지긋한 중년 아저씨들이다. 아마도 19세기엔 청년이 서빙을 담당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타이를 매고 까만 조끼를 덧입은 채 무릎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새하얀 천을 팔뚝에 툭 걸어놓았다. 은색 쟁반을 들고서 손님에게 다가가는 몸짓은 퍽 도도하다. 여긴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콘센트도 없고 테이크아웃도 안되지만, 그것들에 비할 카페가 아니라는 듯이. 카페는 가르송으로부터 빛이 났다.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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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는 19세기 초 헐릴 위기에 처했던 노트르담 대성당의 재건을 위해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 를 썼다. 신이 아닌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대성공을 거뒀다. 화재로 폐허가 된 노트르담은 언제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주말이면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퍼지던 센강의 시테섬. 그 한가운데 조용하게 사람들을 모으는 노트르담 대성당. 화마로 반이 폐허가 되고 말았지만, 우아하게 서 있던 노트르담이 여전히 그립다.


프랑스를 여행하다 보면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당을 자주 보게 된다.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호칭으로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하나의 노트르담은 바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프랑스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1831)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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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는 오로지 신만을 이야기했다. 신과 가까워지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시켜 돌을 쌓아 뾰족한 성당을 올렸고 값비싼 그림으로 내부를 장식했다. 사람은 뒷전이고 신을 기쁘게 하는 일만이 가치 있는 일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그런 성당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역시 19세기의 일이다.


신부는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에스메랄다는 근위대장을 사랑했다. 성당에서 자란 꼽추 콰지모토도 에스메랄다를 흠모했다. 학대를 받던 흉측한 외모의 꼽추에게 연민을 갖고 유일하게 다가온 사람이 에스메랄다였다. 결국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로 신부와 근위대장을 유혹했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하고 만다. 콰지모토는 에스메랄다를 죽음으로 몰고 간 신부를 성당 계단에서 밀어 죽이고 그녀 곁에 잠든다.


빅토르 위고가 헐릴 위기에 처했던 노트르담 대성당의 재건을 위해 이 소설을 썼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신이 아닌 인간의 사랑을 그려낸 것도 있지만, 파리의 심장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켜낸 공로를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콰지모토가 종을 울리던 종탑에 올라가 파리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중세의 한가운데 있는 듯 고풍스러운 파리가 펼쳐졌다. 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약자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 성당에서 빅토르 위고는 신 대신 장애인과 이교도 여성을 그려냈다. 성당에서 나와 퐁네프 다리를 건넜다. 또 다른 소외된 이웃이 떠오르는 것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때문이었다. 쥘리에트 비노슈와 드니 라방의 처절하고 미성숙한 사랑이 겹쳐졌다. 강변을 따라 오래 걸었다.

너와 나의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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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선셋

센 강변에 자리 잡은 오래된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명성에 비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노란색 간판과 초록색 문은 가로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길가에 내놓은 가판대에서 보물을 찾듯 집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면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셰익스피어 얼굴과 한 줄의 시가 간판 아래 걸려 있다. “And art alive still, while thy book doth live(당신의 책이 살아 있는 한, 예술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동시대 극작가 벤 존슨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찬미시 중 일부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9년 만에 재회하는 운명적인 무대가 바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이다. 퀴퀴한 종이 냄새가 가득한 책방에서 두 사람은 또다시 애틋해진다. 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성지순례하듯 이곳을 들르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사람들은 여러 언어로 쓰인 책들 사이, 먼지 쌓인 소파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책을 봤다.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미국 여성 실비아 비치가 1919년 처음 문 열고, 역시 미국인인 조지 휘트먼이 1951년 이어받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서점이면서 가난한 문학 지망생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열린 공간으로 여태껏 꾸려왔다. 영화에서도 에단 호크가 고양이와 함께 이곳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파리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그려낸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이 서점이 나온다. 파리를 흠모하기로 유명한 우디 앨런은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에 대한 헌사를 필름에 담았다. 벨 엘포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속된 번영기를 뜻하는 말이다.


성당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오래된 푸조 자동차가 나타나 주인공 길 펜더를 1920년대 파리로 데리고 간다. 1920년대에 도착한 주인공은 스콧 피츠제럴드와 거트루드 스타인, 피카소와 달리를 만나 예술을 논한다. 주인공이 꿈꾸던 벨 에포크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아름다운 시대’를 사는 드가, 고갱, 로트레크는 자신들의 시대가 엉망이라며 화내고, 오히려 19세기를 그리워한다.


사람이란 늘 과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가 보다. 우디 앨런은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시절은 누군가에게 분노의 시절이었을 수도 있다. 이 순간이 축제임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갈 때, 파리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19세기가 남긴 파리의 흔적 속에서 나만의 벨 에포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김진 |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