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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지극히 味적인 시장(26)

해 돋는 장관, 흥 나는 장터, 밥 부르는 장치…동해에 마음이 동해

by경향신문

동해 북평장


200년 역사 ‘북평장’, 대형마트도 울고 갈 정도로 사람들 북적

말려 먹는 생선 ‘장치’, 선어찜보다 살맛·씹는 맛·감칠맛 탁월


오일장 없는 삼척, 새벽 번개시장선 생물 오징어 5마리 1만원


추억 담긴 ‘물닭갈비’ 이색 경험, 물꼬기 식당 ‘대게라면’ 강추

경향신문

연초 해돋이 여행은 강원도 동해와 삼척으로 떠나보자. 사람 적어 호젓한 해변에서 아침해를 감상하고 이어서 인파로 떠들썩한 시장을 한 바퀴 구경한 뒤 제철 먹거리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매일 해가 뜨고 진다. 일상의 한 부분이지만 맨 마지막과 맨 처음은 의미가 남다르다. 한 해의 마지막 해를 보기 위해 인천의 섬 서도로 갔다. 영종도에서 10여분 배 타고 가면 호젓하게 낙조를 볼 수 있는 명소가 있다. 필자처럼 1년의 끝이 아쉬운 사람은 서해로 간다. 밝아오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한 이들은 동해로 간다. 서해에서 마지막 해를 보내고는 하루 묵은 1월2일의 새해와 장터를 보기 위해 동해로 떠났다. 동해(東海)도 맞지만 정확하게는 동해시(東海市)가 목적지였다. 해돋이는 수평선에 회색 띠처럼 두른 구름에 살짝 아쉬움이 남았지만 재미난 장터 구경에 해돋이의 아쉬움은 쉬이 잊혔다.

말린 생선 최강자 ‘장치’

동해 북평장은 예전부터 이름난 장터였다. 정선과 태백, 울진과 강릉에서 오는 길이 모두 동해에서 만난다. 각 지역의 산물이 동해에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기를 200년, 북평장은 긴 역사를 가진 큰 장이었다. 대부분 오일장은 우시장이 사라지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북평장은 세월의 야속함이 비켜갔다. 장터는 막 개점한 대형할인점처럼 사람과 상품이 차고 넘쳤다. 북평장을 두어 바퀴 돌다 보니 1996년 성남에서 일할 때가 생각났다. 성남은 다른 신도시처럼 할인점과 백화점의 격전지였다. 마크로, 까르푸, 이마트, 킴스클럽을 비롯한 할인점과 청구(훗날 롯데가 인수), 삼성프라자(현 애경) 등 백화점들이 역세권마다 자리를 잡고 전쟁을 치렀다. 그래도 5일에 한 번씩 모란장이 열리면 그날은 손님이 없어 파리만 잡았다. 무엇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모란장이었다. 북평장에 몰린 사람들을 보니 동해나 삼척의 할인점 직원들 처지가 눈에 보이듯 선했다. 1996년의 나처럼 파리 잡고 있을 게 분명해 보였다.


북평 파출소를 기점으로 장터를 알리는 입간판이 있는 사거리까지 약 400m 구간을 마주 보고 오일장이 선다. 파출소 맞은편 뒷골목도 비슷한 거리의 장터가 열린다. 세 곳의 직선 길이를 합하면 약 1.2㎞다. 장터를 연결하는 사이사이 골목에도 장사꾼들이 가득하다. 긴 장터는 파란선을 경계로 사는 이와 파는 이가 구분된다. 길 안쪽은 파는 이, 바깥쪽은 사는 이의 통로였다. 수많은 상품이 오가는 장터에서 가장 많은 것은 수산물이었다. 동해에서 나는 것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한 가자미도 꽤 있었다. 크기가 작은 국내산과 달리 살집이 제법 좋은 가자미다. 예전보다 원산지 표시가 잘되어 있어 필요에 따라 국내산과 외국산을 살 수 있다. 제철 맞은 산 오징어는 간이수족관을 만들어 파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문어를 삶아 파는 곳도 오징어 못지않게 많았다. 도루묵이며 도치 등 제철 맞은 생선이 있었지만 다 지나치고 말린 장치를 사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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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는 못생겼지만 맛이 좋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장치(오른쪽 사진)는 말린 생선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

장치는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본명은 ‘벌레 문치’다. 몇 백m 수심에서 사는 어종이라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찾는 이도 많지 않으니 전문적으로 장치만 잡는 배가 없어 더더욱 구경하기 쉽지 않은 어종이다. 장치도 살이 무른 어종이지만 도치나 곰치(본명은 미저리)만큼 무르지는 않다. 장치는 선어보다는 말려서 먹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장치를 매콤하게 찜을 하거나 매운탕으로 끓여 먹는다. 말린 생선으로 한 찜은 선어로 한 생선찜보다 씹는 맛, 감칠맛이 월등하다. 말린 생선 대부분이 맛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장치다.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살맛이 술이며 밥을 부르는 마력으로 가득 차 있다. 큰 것은 한 마리 2만원, 작은 것은 1만원 정도 한다. 작은 놈 한 마리면 어른 서너명이 탕과 찜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양이다. 참고로 식당에서 장치찜은 2만~3만원 정도 한다. 언제 또 살까 싶어 두 마리를 샀다.

이른 아침 여는 번개시장

3·8일에 동해 북평장이 열리지만 이웃한 삼척은 특별한 오일장이 없다. 대신 매일 새벽 삼척역 앞에 장이 선다. 이름하여 ‘번개시장’이다. 새벽에 열렸다가 아침이면 닫는 곳인데 근래에는 늦게까지 장이 선다고 한다. 삼척 장호항에서 해돋이를 보고 장터에 가니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흥정하는 말소리에 지역색이 가득했다. 생물 오징어 다섯 마리 1만원, 가자미 회 한 접시가 1만원이었다. 북평장이 서지 않을 때는 삼척 번개시장에서 저렴하게 수산물을 살 수 있다.


겨울이고 동해이니 당연히 곰치탕을 먹어야겠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물망치라 부르는 ‘고무 꺽정이’를 선택했다. 물망치의 외형은 아귀랑 비슷해 아귀 사촌이라고 불리지만 못생긴 외형만 비슷할 뿐 아귀보다 날렵한 모양새다. 더욱이 한반도 인근해 전역에서 잡히는 아귀와 달리 동해안에서만 잡히는, 겨울이 제철인 생선이다. 물망치를 비롯해 곰치, 도치, 꼼치 등 외형이 못난 생선들이 근래 인기다. 먼저 먹던 생선들이 자리를 비우자 그 자리를 꿰찼다. 명태는 아직이고 이미 돌아온 대구도 예전의 해장국 명성을 되찾지 못하는 까닭에 그동안 외면했던 생선들의 참맛이 널리 알려졌다. 물망치 살맛은 아귀랑 비슷하지만 쫀득한 식감이나 단맛이 한 수 위다. 매운탕의 국물에 단맛이 도는 까닭도 살맛이 좋아서다. 곰치탕의 시원함에 아귀의 쫀득한 살맛이 더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강원도에서는 물망치를 매운탕으로 먹지만 이웃한 경북 울진에서는 신김치를 넣어서 먹기도 한다. 부흥횟집(033-531-5209)


몇 년 전에 삼척에 갔다가 군부대 앞에서 평양냉면집을 봤었다. 눈길은 끈 것은 메뉴에 있는 통닭이었다. 시간이 없어 지나쳤지만 언젠가는 먹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먹었다. 처음에 봤던 곳은 무슨 사정인지 이틀 내내 문을 열지 않았다. 동해시에도 냉면과 통닭을 하는 곳이 있어 갔는데 업력이 무려 70년이 된 식당이었다. 30% 정도 겉을 깎아 낸 메밀 80%로 만든 면은 소면처럼 하얀빛을 띠었다. 메밀 면과 육수의 조합이 냉면의 매력인 동시에 식당마다 특징을 구별 짓는다. 동해의 냉면 육수는 동치미 국물에 소고기 국물이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메밀 순면 같은 면과 제법 잘 어울렸다. 주문할 때부터 궁금했던 통닭은 냉면과 의외로 잘 맞았다. 동치미 향 나는 육수와 아삭한 냉면 무김치가 통닭의 맛을 살렸다. 통닭은 그 자체로도 냉면 못지않게 완성도가 높다. 물냉면과의 궁합도 괜찮지만 비빔냉면으로 하면 더 좋을 듯싶었다. 냉면권가(033-533-9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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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제철인 물망치탕, 동해의 평양냉면과 통닭, 강원도 탄광촌의 명물 물닭갈비, 삼척 식당 ‘물꼬기’의 회덮밥 세트(위부터).

물닭갈비를 아시나요?

항구마다 어시장이 있고 회센터가 있다. 어느 곳이나 회를 흥정하고 소위 초장집에서 일정 비용을 내고 회를 먹는 방식이다. 회센터 주변으로는 지역의 대표 음식을 파는 곳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삼척항 주변에도 여느 항구와 마찬가지로 회센터가 있고 곰치탕을 하거나 대게를 쪄주는 식당이 즐비했다. 비슷한 음식을 파는 식당 사이에 ‘물꼬기’라는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머니는 회센터에서 장사하고 부산에서 온 아들이 밥을 파는 식당이다. 아침마다 경매에 나온 생선으로 만든 물회, 회덮밥, 구이가 주메뉴다. 단품으로 팔기도 하지만 세트 메뉴로도 구성해 다양하게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정식을 주문하면 회덮밥이나 물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구이와 반찬이 딸려 나온다. 두 명 이상이라면 대게 정식을 주문할 수 있는데 번듯한 대게는 아니더라도 즉석에서 대게로 라면을 끓여먹는 재미가 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나 연인, 가족끼리 가볍게 동해의 맛을 볼 수 있다. 물꼬기(010-9346-9822)


동해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는 올 때와 달리 삼척의 도계를 거쳐 태백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타면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호젓한 풍경을 즐길 수 있고 중간에 맛집도 들를 수 있다. 삼척 도계나 태백, 정선은 한때 석탄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일부 탄광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좋았던 시절의 음식문화는 아직 남아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음식이 ‘물닭갈비’다. 양념한 닭갈비와 다양한 채소에 육수를 넣어 끓여먹는 음식이다. 완성된 물닭갈비를 보면 닭볶음탕과 비슷해 보여도 맛은 전혀 다르다. 닭볶음탕이 닭과 감자의 조합이라면 물닭갈비는 닭과 채소의 조합이다. 먹는 방식도 다르다. 물닭갈비는 끓이면서 라면이나 우동을 넣어 먹다가 나중에 볶음밥을 해서 먹는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른 음식이다. 광부의 요리라고도 하고, 유흥가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물닭갈비의 유래는 설왕설래다. 그래도 일단 맛보면 유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닭볶음탕이나 춘천의 닭갈비와는 다른 맛이기 때문이다. 삼척이나 태백을 지나친다면 한번쯤 경험해볼 만한 음식이 바로 물닭갈비다. 텃밭에 노는 닭(033-541-9989)


장터가 크든 작든 사람이 있어야 흥이 산다. 동해 북평장은 시장 구경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이 나 있다. 이곳저곳 흥정 소리에 시나브로 흥이 물든 탓이다. 오가는 이들이 많기에 먹거리도 풍부하다. 어느 시장이나 하나 정도 있는 국숫집이나 국밥집도 몇 개씩 있다. 시장 구경하다가 요기하기 괜찮다. 특히 소머리국밥이 장터국밥처럼 얼큰하게 끓여서 나와 맛있다. 설날을 앞두고 해돋이를 볼 생각이라면 동해와 삼척이 좋다. 뜨는 해야 동해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사람이 적어 호젓하거니와 맛있는 먹거리도 많다. 영동고속도로의 끝인 강릉에서 고속도로로 30분 정도면 삼척이다. 생각보다 가깝다.


김진영 식품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