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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겸손할 필요 없는 배우, 전도연의 ‘이름값’ 활용법

by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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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적으로 스스로를 많이 가뒀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타깝게 생각하죠. 저를 그렇게밖에, 써먹을 수밖에 없는 감독들을….”


지난 11일,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 개봉(19일)을 앞두고 만난 배우 전도연(47)은 ‘파하하’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간 필모그래피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 다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을 탓하지 않았다. 지난해 특별출연해 화제가 됐던 영화 <백두산>을 두고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솔직히 현장에서는 (제 연기가) 어색했어요. 혹시나 하고 영화를 보러갔는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깜짝 놀랐어요.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죠. 내가 열심히 안 해도 괜찮구나.” 그의 얼굴엔 여전히 장난기 어린 미소가 가득했다.


역시, 전도연은 겸손하지 않다. 비난이 아니다. 그는 ‘겸손이 미덕’이라는 사회적 요구를 용기 있게 거절할 줄 아는 예외적 인물이다. 자신의 성취를 알고,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포부의 소유자다. 그것이 ‘전도연’이라는 이름 석 자의 가치를 위해 애써온 자신의 인생과, 그 ‘전도연’과 함께 호흡하는 동시대 한국 영화인들을 위한 예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칸의 여왕’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최고 배우 중 한 명으로서 전도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일에 열중한다. 많은 이들이 ‘겸손’이라는 이름의 ‘자기 학대’를 습관처럼 반복하는 세상 속에서, 그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새 길을 낸다. 특히 성취를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도 ‘건방지다’는 평판을 감당해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에게 빛나는 귀감이 된다. 겸손을 거절하는 배우, 전도연의 30년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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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스타는 어떻게 배우가 되었나

전도연이라고 날 때부터 ‘칸의 여왕’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 상품을 타러 잡지사에 갔다가 눈에 띄어 CF 모델이 됐다. 초콜릿 CF를 찍었는데, 모델 얼굴을 알리고 싶었던 제과회사에서 오디션장에 데려가는 등 매니저 노릇을 했다. 그렇게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1990)으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빨리 끝내고 놀 생각뿐”이었다. 영화 <구미호>(1994) 오디션 현장에서는 테스트 촬영 제안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할 지경이었다. “남자친구 만나야 해서 시간 없는데요.”


연기 욕심이 싹튼 것은 KBS 드라마 <사랑할 때까지>(1996)에서 배우 박근형에게 꾸지람을 들은 이후였다. 이 악물고 연습에 매진한 끝에 영화 <접속>(1997)으로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를 치른 그는 연기를 천직으로 생각하게 만든 작품 영화 <해피엔드>(1999)를 만난다. “<해피엔드>는 감독님과 소통하면서 내 생각과 느낌을 전하고 상의하며 찍은 작품이었다. 27세 나이에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는데도 신이 나서 능동적으로 했다. 그때부터 현장을 즐기게 됐고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됐다.”(2019년 씨네21)


이후 배우로서의 존재감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영화계에서의 입지뿐만이 아니라, 작품 내에서의 영향력이 커졌다. 작품의 ‘부품’을 넘어 ‘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끊임없이 ‘싸운’ 결과다. 영화 <너는 내 운명>(2005) 촬영 현장에서 화를 냈던 일화는 유명하다. 스피커를 뜯어내고 은하(전도연)와 석중(황정민)이 손을 잡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시나리오에 없다. 배우 황정민과 이야기를 나눈 박진표 감독은 전도연과의 상의 없이 이 장면을 촬영했다. “겁나 신경질냈죠. 제가 모르는 부분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장면은 어려운 신인데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알게 되니까 화가 났어요. 지금도 불만족스러워요.”(2007년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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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여왕’, 다양성을 갈망하다

스스로도 가장 격렬한 ‘싸움터’였다고 꼽는 작품 중 하나인 영화 <밀양>은 2007년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서른넷에 얻게 된 ‘칸의 여왕’이란 새 이름.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밀양> 이후 ‘칸의 여왕’ 자리에 맞게 작품들을 채우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웠어요. 지금도 ‘칸의 여왕’과 전도연 사이 간극을 늘 채워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칸의 여왕’과 씨름하는 그에게 간극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한치 고민도 없이 답한다. “(영화계에) 작품적이나 장르적인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여성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가 부재한 현실에 대한 아쉬움은 그의 인터뷰에서 자주 등장한다. 2011년 “다작을 하기엔 흥미로운 여자 캐릭터가 너무 부족하다”는 말은 2013년 영화 <집으로 가는 길>로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반복된다. “쉬는 2년 동안 남성 영화가 주류이자 피크였잖아요. 저도 조용히 남자 배우들 나오는 영화 보러 다니면서 기다렸어요. 여배우에게 기회가 안 주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비단 한 가지 이유만은 아닐 거예요.”(세계일보)


채워지지 않는 갈망 앞에서 그는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완벽주의’라는 평까지 들으며 분투한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무뢰한>(2014)에서 연기한 ‘김혜경’에 대한 해석은 그 분투를 압축한다. “<무뢰한>은 기본적으로 누아르 장르고 남자 이야기다. 남성 중심 영화에서 대상화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깨버린 게 김혜경인 것 같다. <무뢰한>을 선택할 때 오승욱 감독님께 그걸 깨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2019년 씨네21)


그러나 ‘여왕’이 되었어도 세상은 여전히 ‘겸손’을 가르치려 들었다. 2016년 tvN 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또 다른 ‘김혜경’을 연기한 전도연은 황당한 논란에 휩싸였다. 케이블 사상 최대 회당 출연료인 9000만원을 받는다는 ‘고액 출연료’ 논란이 인 것이다. 한참 후배인 남자 배우들의 회당 출연료가 이미 1억원을 넘어선 때였다. 당시 소속사는 “전도연의 출연료 관련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비판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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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이 ‘이름값’을 활용하는 방법

“감독님께 잘하라고 했죠. 부담이 많이 크셨을 것 같아요. 잠 못 자도 싸죠. 전혀 개의치 않아요.” <지푸라기>로 상업영화 데뷔를 앞둔 김용훈 감독과의 작업을 묻자 전도연은 또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흥미롭다. 유명 감독과의 작업은 손에 꼽힌다. 영화 <접속>부터 <해피엔드>, <내 마음의 풍금>(1999),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카운트다운>(2011), <생일>(2019), <지푸라기> 등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전도연이 자신의 이름값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제가 동의만 된다면, 신인 감독들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대단하신 감독님들 많이 계시지만 이미 무언가 돼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 이야기는 사람들이 이미 들어줄 준비가 돼 있는 거잖아요. 신인 감독님들은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전도연으로서, 배우로서 내가 들어줄 준비가 돼 있고 듣고 싶은 이야기라면 관객들에게도 함께 들려주고 싶어요.” 신인 감독들에게 ‘잘하라’는 부담을 주는 ‘무서운 배우’ 전도연의 속내는 이렇다. 관계가 불편해지거나 평판에 얼룩이 생기더라도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그의 결단은 참여한 모든 작품에 대해 “자신 있다” 말하는 자긍심으로 열매 맺는다.


“배우는 결국 남에서 시작해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는 직업인지도 몰라요.”(2010년 이동진 닷컴) 30년의 배우 인생, 전도연이 발견한 ‘전도연’은 여전히 일에 대한 욕망으로 들끓는다. “생일 케이크 불을 끄면서 소원 빌라고 하잖아요. 전 무조건 말해요. ‘닥치는 대로 일하고 싶다. 뭐든지 할 거야.’” 2020년 한 해도 일로 채우고 싶다는, 이 최고의 배우를 위해 한국 영화계가 좀 더 부응하길 바랄 뿐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