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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천재인가 괴물인가...배우의 정신도 조종한 스탠리 큐브릭

by매일경제

스탠리 큐브릭 (영화감독, 1928~1999)

이야기의 제왕 vs 연출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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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팔아치운 소설책은 어림잡아도 3억5000만부다. '이야기의 제왕'이란 별명답게 SF, 스릴러, 판타지 장르를 넘나들며 40년 넘게 전 세계 독자를 유혹 중이다. 무엇보다 공포소설 영역에서 스티븐 킹이 쌓아올린 업적은 현존 작가 누구도 넘보기 어렵다. 대표작 '그것(IT)'을 읽은 독자는 평생 '피에로 공포증'을 가지고 살지도 모른다.


스티븐 킹은 유독 영화가 사랑하는 작가다. '캐리'(1976), '샤이닝'(1980), '미저리'(1990), '쇼생크 탈출'(1994), '돌로레스 클레이본'(1995), '그린 마일'(1999), '미스트'(2007)는 스티븐 킹 소설이 원작인 영화다.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IMDb에서 스티븐 킹을 검색하면 300건의 작품이 나온다. 모두 스티븐 킹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와 드라마다. 다만, 이 많은 스티븐 킹 각색물 가운데 수작 비율은 초라하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 정도를 제외하곤 졸작이 대부분이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꾸준히 영화로 제작될 만큼 매력적이지만, 그의 문장이 지닌 마력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은 얼마 안 되는 '스티븐 킹 수작 각색물' 중에서 첫 번째로 손꼽힌다. 동시에 스티븐 킹이 극도로 싫어하는 영화다. 스티븐 킹은 스탠리 큐브릭이 자신의 원작을 송두리째 뒤집었다고 화내며 '샤이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스티븐 킹은 직접 드라마판 '샤이닝'을 제작하며 스탠리 큐브릭에 맞섰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원작자 분노가 무색하게 영화사에서 '샤이닝'은 두고두고 회자될 작품으로 남았다. 촬영기법, 미술, 편집 등 영화 테크닉을 몇 단계 올려놓은 걸작으로 대우받는다.

천재 그리고 괴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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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를 촬영 중인 커크 더글라스(왼쪽)와 스탠리 큐브릭.

큐브릭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칭송받는다.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 때문에 광인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큐브릭에겐 단 한 장면 때문에 수십 번 반복 촬영하는 건 기본이었다. 재촬영 하는 이유를 배우, 스태프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완벽주의자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법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행도 많다. 큐브릭은 영화 스태프들에게 특정 메모장만 쓰도록 강요했다. 영화 포스터에 들어가는 텍스트는 오직 '푸투라'라는 서체로만 쓰도록 했다. 해외 버전 포스터 디자인에도 일일이 간섭했다. 영화 촬영이 끝나면 세트를 철저히 부숴버린 걸로도 유명하다.


큐브릭은 17세에 잡지사 사진기자로 4년간 활동한다. 이 기간에 습작 삼아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다. 1953년 장편영화 '공포와 욕망'으로 공식 데뷔한 큐브릭은 3년 후 '킬링'을 만들며 재능을 인정 받는다. 큐브릭은 당시 유명배우였던 커크 더글러스 눈에 들어왔다. 더글러스는 큐브릭에게 블록버스터 한 편을 같이 찍자고 제안했다. 당시 더글러스는 영화 '벤허' 주연 캐스팅에서 떨어져 자존심을 구긴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직접 영화를 제작하고 주연배우로 나서며 '벤허'에 복수할 계획을 품고 있었다. 젊은 큐브릭은 처음으로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영화를 찍었다. 그렇게 '스파르타쿠스'라는 걸작이 탄생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큐브릭은 '스파르타쿠스'를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필모그래피에서 지워버리려고도 했다. 더글러스는 감독으로 큐브릭을 앉혀만 놓고 자신이 종종 촬영 현장을 지휘했다. 큐브릭은 각본 수정, 최종 편집 작업에서도 배제됐다. 자존심 상한 큐브릭은 결심했다.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만 영화를 만들겠다고. 유럽 감독들이 할리우드로 진출할 때, 큐브릭은 반대로 미국을 떠난다. 그는 비교적 자유로운 제작 환경을 찾아 영국으로 간다. 오늘날 세상이 칭송하는 큐브릭의 영화는 모두 이제부터 탄생한다.

아날로그 영화의 최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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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

영국으로 넘어온 큐브릭은 차례대로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4),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시계태엽 오렌지'(1971)를 만든다. 미래가 배경인 세 작품은 이른바 '미래 3부작'으로 불린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큐브릭의 완벽주의 성향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오프닝 장면부터 이야기 해보자. 영화는 원시시대에서 시작한다. 세력 다툼을 벌이던 유인원 중 하나가 동물 뼈를 손에 쥔다. 뼈를 무기로 적들을 제압한다. 인류의 조상이 최초로 도구를 사용하는 순간이다. 유인원은 뼈를 하늘로 집어 던진다. 공중에 던져진 뼈는 한 순간 우주를 비행하는 탐사선으로 대체된다. 유인원은 인간으로, 뼈는 우주선으로 진보한다. 수백만 년간 이뤄진 진화를 몇 분 만에 담은 큐브릭은 본격적으로 우주 서사시를 펼쳐 놓는다.


컴퓨터그래픽 없이 제작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디테일은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 작품에 밀리지 않는다. 이 영화엔 그 당시 인류가 쌓은 우주과학이 총동원됐다. NASA에 자문을 구한 큐브릭은 작은 설정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영화 속 우주선 승무원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 머리카락이 기계에 껴 우주선이 오작동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우주에서 인간은 아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과학적 사실도 그대로 반영했다. 이 영화는 적막한 우주에서 우아하게 유영하는 우주선의 이미지로 기억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이 장면 뒤엔 고행에 가까운 수작업이 있었다. 큐브릭은 등속도(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미니어처를 미세하게 이동시키며 한 프레임씩 촬영해 이어 붙였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서사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30여 분이 지나서야 첫 대사가 나올 정도다. 이 영화를 본다는 건 관람보다는 체험에 가깝다. 최면 같은 미감으로 가득한 장면들은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빨려들게 한다. 아날로그 시대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기술이 완벽하게 녹아든 이 작품엔 디지털 영화가 도달할 수 없는 질감이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이 '아폴로11호'를 타고 달에 가기 1년 전에 개봉했다.

귀신 들린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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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의 한 장면.

큐브릭 영화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 원작소설이 있다는 점이다. 큐브릭에게 원작이란 자신의 입맛대로 요리해야 할 원재료였다. 그는 원작을 해체하고 조립하며 완벽하게 자신의 이야기로 재건축했다. 스티븐 킹 '샤이닝'과 큐브릭 '샤이닝'은 '귀신 들린 호텔'이라는 뼈대만 공유할 뿐 공통점이 없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잭은 귀신에 들려 가족을 해치려한다. 그러면서도 끝내 아들에게 "도망쳐"라고 외친다. 악에 사로잡힌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부성애가 있다. 소설 '샤이닝'은 인간을 향한 온기를 남겨둔 작품이다.


반면, 큐브릭의 '샤이닝'은 손대면 동상에 걸릴 것처럼 섬뜩하다. 온기 따윈 없다. 광기, 두려움, 피비린내만 존재한다. '샤이닝'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큐브릭의 완벽주의가 절정에 달한 작품이다. 영화 배경인 호텔은 거대한 밀실이다. 큐브릭이 창조한 이 공간은 지나치게 반듯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복도, 화장실, 로비는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설계돼 있다. 한 치 오차 없이 정돈된 이곳은 멸균실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 안에 갇힌 인간의 고립감은 두드러진다.


'샤이닝'은 스테디캠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스테디캠은 움직이는 피사체를 카메라가 흔들림 없이 따라가는 촬영기법이다. 잭의 아들 대니가 세 발 자전거를 타고 적막한 호텔 구석구석 다니는 장면에 스테디캠이 적용됐다. 카메라는 대니를 따라다니며 호텔 안내인처럼 오싹한 '큐브릭 월드'를 소개한다. 대니 등 뒤를 집요하게 쫓는 카메라는 마치 호텔에 깃든 귀신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의 시선이기도 하다. 귀신과 관객의 시선이 포개지는 이 순간이 주는 기이한 감응은 쉽게 떨쳐내기 어렵다.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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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의 한 장면.

"영화 연출의 최고 거장. 우리는 모두 그의 영화를 모방하느라 허덕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큐브릭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찬사처럼 큐브릭이 후배 감독에게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리들리 스콧, 조지 루커스, 크리스토퍼 놀런, 제임스 캐머런 등 할리우드 간판 감독들은 큐브릭에게 받은 영향을 스스럼없이 고백했다. 다만, 큐브릭이 위대한 이유는 미장센, 편집, 음향, 촬영기법에서 혁명가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천재 테크니션인 동시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이단아였다.


10편을 겨우 넘는 그의 영화는 대부분 금기를 건드린다. '샤이닝'의 귀신 들린 호텔엔 설정이 붙어 있다. 호텔 터는 과거에 인디언 공동묘지였다. 큐브릭은 영화 곳곳에 인디언 문화 상징을 심어뒀다. 인디언 무덤 위에 설립된 호텔은 원주민 주검을 딛고 우뚝 선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이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는 피투성이 건국사를 큐브릭은 무자비한 방식으로 끄집어냈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큐브릭 작품 중 가장 문제적인 영화다. 수위 높은 폭력 장면 탓에 27년간 상영이 금지됐을 정도다. 주인공 알렉스는 악마다. 노숙자를 폭행하고, 아무 집에 들어가 여성을 강간하고, 살인도 저지른다. 죄책감은 전혀 없다. 알렉스는 체포돼 감옥에 갇힌다. 알렉스에게 국가기관이 접촉해 이런 제안을 한다. "교화 프로젝트에 참가하면 가석방 시켜주겠다." 알렉스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알렉스는 폭력과 연관한 모든 것 앞에서 몸이 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도록 정신개조를 당한다. 악이라는 감정을 거세당한 알렉스는 다시 사회로 나온다. 착한 시민이 된 알렉스는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범죄 피해자들에게 무참히 보복 당한다. 알렉스는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다. 그렇게 개조됐다. 알렉스는 끝내 자살시도를 한다. 영화는 여러 가지를 묻는다. 인간은 얼마나 악할 수 있는가? 인간의 의지는 통제 가능한가? 악인의 의지는 통제해도 괜찮은가? 큐브릭은 끔찍한 이야기 위에 불편한 질문을 툭 던져놓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예술의 냉혹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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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에서 공포에 질린 셜리 듀발의 모습.

큐브릭의 완벽주의에는 어두운 면도 많았다. 큐브릭이 혹사시킨 건 자신과 스태프뿐만이 아니다. 그는 배우 심리까지 장악하려 했다. 세상에서 연기를 가장 잘하는 배우라고 말해도 상관없는 잭 니컬슨조차 '샤이닝' 촬영 때 종종 큐브릭과 부딪혔다. 니컬슨은 큐브릭 의중을 금세 간파했고 끝내 압도적인 광인 연기를 펼쳤다. 반면 니컬슨 아내 역할을 맡은 배우 셸리 듀발은 큐브릭의 먹잇감이 됐다. 듀발의 대본엔 공포에 질려 겁먹은 표정을 짓거나 비명을 지르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큐브릭은 듀발이 정말로 공포에 짓눌린 상태로 연기하길 원했다.


큐브릭은 촬영장에서 의도적으로 듀발을 소외시켰다. 스태프들에게 절대로 듀발에게 칭찬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쉴 새 없이 듀발에게 화를 내며 감정적으로 몰아붙였다. 듀발은 점점 어두워졌다. 영화 후반부 니컬슨이 도끼로 화장실 문을 무참히 부수는 장면은 며칠간 반복 촬영됐다. 좁은 화장실에 갇혀 있던 듀발은 자신을 노리는 도끼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순간을 수십 번이나 견뎌야 했다. 듀발은 큐브릭의 바람처럼 실제로 공포에 잡아먹혔다. 촬영 중 신경쇠약에 시달려 탈모증상까지 보였다. 영화 후반부 충혈된 두 눈으로 실신 직전까지 다다른 듀발의 모습은 그저 연기라고만 보기 어렵다.


한 배우의 실제 감정까지 끄집어내 영화에 갈아 넣은 큐브릭의 장인정신은 섬뜩하다. 큐브릭은 예술을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져다 바칠 수 있는 부류였다. 덕분에 우린 그가 만든 작품을 감상하며 혹은 체험하며 극한에 다다른 영화 미학을 맛본다. 동시에 예술의 냉혹한 얼굴을 보며 오싹함을 느낀다.


조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