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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이주엔 꼭

어느 대통령과
어느 감독의 이야기

by맥스무비

어느 대통령과 어느 감독의 이야기

(왼쪽부터) 2014년 8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 동조단식 현장을 찾은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과 세월호 침몰사고 후 34일만에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 맥스무비DB

두 사람의 이야기는 2014년의 일들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해 4월 16일 우리나라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고, 대통령은 침묵했습니다. 여름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국민들의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8월 9일부터 영화인들도 동조 단식에 동참했습니다. 영화인들의 동조 단식 5일째이던 8월 13일,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던 그날 오후,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영화인 동조 단식 천막을 방문했습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한국의 동료 영화인들을 지지하기 위해 세월호 광장까지 직접 걸음한 이유는 그가 감독이면서 인권운동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열다섯 살 때부터 반체제 운동을 시작한 모흐센 감독은 혁명 조직에 가담해 열일곱 살에 사형선고를 받고, 6년 수감 생활 끝에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사면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이란 정부로 의심되는 수많은 테러와 암살 협박으로 지금은 조국을 떠나 영국 런던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영화인 동조 단식 천막에 앉아 있던 영화인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양우석, 이송희일 감독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용오 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차례를 기다려 김용오 씨를 만난 모흐센 감독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 아이들은 꽃이고 별이다.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이 아이들의 꽃 같고 별 같은 마음이 다음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위로의 말을 전한 순간이 기억납니다.

 

2014년의 이야기는 그해 10월 열린 19회 부산국제영화제로 이어집니다. 영화제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부산시와 갈등을 빚었고, 이후 정치적 외압 논란, 집행위원장 경질, 영화인 보이콧 등 파문이 일었습니다. 광화문에 왔던 모흐센 마흐말마프 감독은 2개월 만에 <대통령>을 들고 영화제를 찾았습니다. 이 영화는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지원작이었고, 모흐센 감독은 1년 만에 영화를 완성해 다시 부산에 온 것이었습니다.

 

모흐센 감독은 영화제 기자 회견에서 2011년 중동 지역에 불었던 반독재 시위 ‘아랍의 봄’ 이후에도 끊어지지 못하는 폭력의 고리를 보면서 “왜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말처럼 <대통령>은 권력을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된 어느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독재자를 통해 평화를 이야기 하는 영화입니다.

어느 대통령과 어느 감독의 이야기

'어느 독재자'는 무너지는 독재 권력자의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독재자의 심판 앞에서 누구도 떳떳할 수 없는 폭력의 아이러니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만든다. 사진 디씨드

대통령(미하일 고미아쉬빌리)는 어린 손주(다치 오르벨라쉬빌리)와 함께 도주 길에 올라 자신의 악행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부로 쌓아 올린 자신의 궁전과 전혀 다른 가난의 황무지에서 자신을 원망하며 “독재자에게 죽음을!” 외치는 국민들의 핏발서린 눈동자를 목격하면서 독재자는 자신의 과오를 들여다봅니다. 영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혁명으로 바뀐 세상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살풍경을 보여줍니다. 무기 없이 자행되는 침묵이라는 폭력, 폭력에 폭력으로 항거하는 방식이 민주주의를 향할 수 있느냐고 우리에게 날카롭게 묻습니다.

 

2017년 3월 31일 새벽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판단하여 처리하는 대통령을 보았습니다. 그가 이끈 정부가 부산영화제 파행을 불러온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오늘 대통령의 뜻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수반이 되는 최고의 통치권자’. 듣기만 해도 막중한 임무의 뜻을 저버린 대통령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에 더 가까웠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오는 4월 6일(수) <대통령>이 <어느 독재자>라는 제목으로 3년 만에 다시 관객과 만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대통령의 구속으로 다시 확인한 우리는 이제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중대한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대통령>에서도 독재자를 붙잡은 국민들이 묻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영화에서 직접 들으시길 바랍니다.

 

대신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를 이 자리의 답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재앙 같은 일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목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영화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그러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 정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