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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30년? 40년?이 고작…’
한국 아파트 수명이 유독 짧은 이유

by머니그라운드

한국 아파트의 수명은 30, 40년으로 짧다.

반면 사막의 맨해튼으로 불리는 예멘 시밤에는 16세기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지금도 현역이다. 콘크리트도 아닌 진흙에 지푸라기를 섞어 말린 벽돌로 지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콘크리트가 문제인 걸까? 대표적인 콘크리트 건물 중 1930년대 완공된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비행기 충돌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나라 아파트의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2006년 발표된 주택산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독일이 79년, 프랑스 86년, 미국이 103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재건축 내용연수는 20년 전후에 불과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아파트 수명이 유독 짧은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더 알아보자.

1. 급격한 경제발전과 시장논리

우리나라의 아파트 수명이 짧은 이유는 급격한 경제 발전과도 연관이 있다.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건설업을 활용했다. 건설업은 임시 및 일용직 고용 비중이 높아 저소득층의 수익을 높이는 등 경기부양 효과가 가장 큰 사업으로 꼽힌다.

이후 한국은 아파트 천국이라고 불릴 만큼 아파트로 가득한 나라가 되었다.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택 유형 중 59.9%가 아파트이며 단독주택은 24.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독주택과 달리 70년대 지어진 반포, 개포, 압구정 등 소위 2세대 아파트 이후 아파트는 주거시설로 각광받으며 서울 지도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후 세기말에 완공된 타워팰리스를 시작으로 아파트는 점차 고층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경제와 건축기술이 동시에 발전하면서, 아파트 옆에는 향상된 기술이 적용된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소득수준 상승과 함께 주거에 대한 눈이 높아졌고, 사는 아파트가 어디인지, 어떤 브랜드 인지도 중요해졌다. 기존 건축 기술이 열악했던 만큼 수요를 채우는 과정에서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이 선호되었다. 30년 전과 30년 후의 삶이 완전히 바뀐 만큼, 30년 전 지어진 조악한 아파트에서 계속 살고자 하는 이들도 재건축 수익에 따라 빠르게 줄어들었다.

초기 아파트들은 층수가 낮아 재건축을 통해 층수를 높이는 등 세대수를 늘려 수억 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여기서 유행한 재건축 재테크를 위해 고의로 건축물을 방치, 파손하여 노후화시킨 일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재건축 연한인 30년이 지났더라도 건물에 이상이 없다면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재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안전진단 100점 중 55점 이하의 점수(D, E)를 받아야 했다. 아파트가 ‘사는 곳’이 아닌 투자 대상으로 전락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2. 태생적인 내구성 문제

그러나 본질적인 내구성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43년 밖에 되지 않은 잠실 5단지 아파트는 2010년 이미 안전진단 D 등급을 받았다. D 등급 건물은 ‘긴급하게 건물을 보수·보강하거나 사용 제한’ 해야 한다. 물론 재건축 재테크가 유행할 당시, “경축! 안전진단 D 등급 판정!”같은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핵심은 흙과 지푸라기도 아닌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지은 건물이 약 30년 만에 안전을 위협할 만큼 내구도가 약해졌다는 점이다.

2006년 주택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아파트의 콘크리트 강도는 210~270㎏/㎠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콘크리트 강도는 아파트의 수명을 좌우한다며 해외 아파트 콘크리트 강도도 공개했다. 아파트 수명이 긴 미국 아파트의 콘크리트 강도가 400~500㎏/㎠를 유지하고 동남아도 300~400㎏/㎠에 달했다.

안전진단 D 등급을 받았던 잠실 5단지 아파트의 재건축이 진행되지 않은 지 10년이 지났다. 2019년 5월 단지 복도 천장에서는 노후된 복도 천장에서 수박 크기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지기도 했다. 내부 설비 노후화도 진행되고 있다. 상하수도 오수 파열로 지하실에 인분이 유입되거나 수도배관이 노후화되어 녹물이 나오는 일은 노후 아파트의 일상에 불과했다.

준공된 지 20, 30년 지날 때마다 재건축을 진행하는 것이 단순히 시장논리가 아닌 이유다. 전문가들은 1977년 도입된 선분양 제도도 한국 아파트의 수명을 낮추는데 한몫했다고 말한다. 선분양제로 돈을 받은 뒤 건축을 시작하면서 건설회사가 제품 경쟁력보다 원가절감, 이윤 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선분양제는 신축 아파트에 금이 가거나, 각종 하자가 발생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3년 한국주거학회에서 울산대 주거환경 학과 김선중 교수는 선분양 아파트 하자 발생건수를 발표했다. 그는 서울 소재의 아파트 476가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입주 후 3개월간 9978번의 하자가 발생했으며, 이는 1가구당 20.67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하자 중 건축부문은 62.9%, 전기부문 21.2%, 설비 부문은 15.5%를 차지했다.

아파트 수명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LH, KICT, SH는 100년 동안 재건축이 필요 없는 ‘장수명 주택 실증사업’ 기공식을 세종시에서 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장수 건물 건축공법은 기존 아파트보다 10~20% 많은 비용이 든다. 때문에 일반 건설사들은 각종 규제와 낮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을 감안한 아파트 설계를 지속하고 있다.

건설업 관계자는 “30~40년 뒤에 어차피 허물 것이라면 굳이 100년 버티는 설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건설사는 아파트 수명이 짧아야 일거리가 생긴다. 다만 이미 재건축된 아파트들이 규제 한도에 맞춰 신축되어 이전과 같은 수익성은 보장할 수 없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건설사가 자재를 전반적으로 하향시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업계가 한국 아파트의 수명이 쉽게 늘어나지 않을 거라 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