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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Chopin Prelude In E minor, Op.28, No.4 ’Suffocation'

영화 ‘플로렌스’와
쇼팽 전주곡 4번 ‘질식’

영화 ‘플로렌스’와 쇼팽 전주곡 4번

메릴 스트립과 휴 그랜트가 주연한 영화 “플로렌스”를 통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라는 실존 인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헐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그리고 실제로 뛰어나 노래 실력을 가진) 메릴 스트립이 역사상 최악의 음치 소프라노로 알려진 플로렌스 역을 맡은 것 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게다가, 영화 음악의 거장 알렉산드로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가 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완성도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졌다.

 

플로렌스의 노래 실력은 영화 속에서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유투브를 통해서 당시에 실제로 그녀가 노래한 곡들을 들어볼 수 있다. 플로렌스가 직접 노래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를 들어보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서, “진짜 이런 수준의 가수가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플로렌스의 1944년 10월 25일 카네기홀 프로그램 내용이 사진으로 기록이 남아있다. 어쩌면 그냥 돈 많은 개인이 클래식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 정도를 빌려서 자축 공연을 가졌다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플로렌스’와 쇼팽 전주곡 4번

플로렌스의 카네기홀 공연 프로그램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유투브에서 플로렌스의 노래들은 조회수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리고 아마존 쇼핑몰에 가보면 지금도 무려(?) RCA 레이블로 플로렌스의 레코드를 구입할 수 있다. 레코드 표지에 Glory(????)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어쩌면 이것이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풍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뛰어난 실력에 대한 존경심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에 대해서도 존중해 주는 것 같다.

영화 ‘플로렌스’와 쇼팽 전주곡 4번

플로렌스의 레코드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플로렌스와 그의 전속 반주자인 멕문(사이먼 헬버그)이 같이 쇼팽의 전주곡 4번(Chopin Prelude In E minor, Op.28, No.4 ’Suffocation')을 연주하는 바로 이 장면이었다.

영화 ‘플로렌스’와 쇼팽 전주곡 4번

쇼팽 전주곡 4번은 ‘질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매우 슬픈 곡이다. 사실 이 부제들은 쇼팽의 제자인 ‘한스 폰 뵐로’가 붙인 이름들 인데, 전주곡 24곡에 모두 부제들이 붙어 있다. (쇼팽의 전주곡만큼 부제가 음악을 잘 표현하는 경우도 흔하진 않다) 이 순간이 영화 전체에서 플로렌스의 숨겨진 마음과 열정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장면과 음악이었다.

 

쇼팽의 전주곡 4번은 누구나 연주할 수는 있지만, 잘 연주하기는 매우 어려운 곡이다. 쇼팽 전주곡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 곡의 특징도 역시 ‘왼손’이다. 왼손의 화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음악의 수준이 달라진다. 영화 속에서 멕문은 이 연주를 통해서 플로렌스의 영원한 왼손이 되어주기로 결심한다.

 

자칫 실제 인물의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그려낸 평범한 영화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쇼팽의 피아노곡 하나가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자의 능력일 수도 있지만 음악의 힘이 크다.

 

쇼팽 전주곡 4번 ‘질식’의 실제 연주를 들어보자. 2015년 쇼팽 콩쿨 우승자인 조성진의 공연 실황 연주가 유투브에 올라와 있어서, 우리는 그의 연주를 쉽게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즐겨찾기 해두고 계속 들어도 된다)

전주곡은 쇼팽의 피아노 곡이지만, 피아노 연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크로스오버 연주도 자주 되는데,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멤버였던 지미 페이지(Jimmy Page) 1983년 런던 ARMS 라이브 콘서트 연주도 유명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실력과 능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결과 만능주의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열정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누군가는 그 열정에 대해서 이해해주고 기억해주어야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플로렌스가 죽기 전에 한 이야기가 그녀의 열정을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할지는 모르나, 내가 노래를 하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Some say that I couldn’t sing, but no one can say that I didn’t sing

쇼팽 전주곡 추천음반

영화 ‘플로렌스’와 쇼팽 전주곡 4번
1.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hur Rubinstein) –1953년, RCA Victor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상 최고의 쇼팽 스페셜리스트의 품격을 느끼고 싶다면. 


영화 ‘플로렌스’와 쇼팽 전주곡 4번
2.알프레드 코르토 (Alfred Cortot) –1934, 1949, 1933년, EMI

최초의 쇼팽 전주곡 레코드. 오래된 음반의 잡음이 거슬리지만 역사적인 소장 가치 


영화 ‘플로렌스’와 쇼팽 전주곡 4번
3.크리스티안 짐머만(Krystian Zimerman) –1975년, Deutsche Grammophon

1975년 쇼팽 콩쿨 우승자, 40년이났지만 여전히 빛나는 아름다움


영화 ‘플로렌스’와 쇼팽 전주곡 4번
4.조성진 (Seong-jin, Cho) – 2015 쇼팽 콩쿨 공연 실황, 2015년, Deutsche Grammophon

최고의 감성, 최고의 음질, 현대적 감각 – 그리고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