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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로드리고 – 아랑훼즈 협주곡

토요명화의 추억

1980년 12월 6일부터 2007년 11월 3일까지 27년간 토요일 저녁마다 영화를 좋아하던 많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했던 KBS-2TV <토요명화>의 오프닝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토요명화>는 2003년까지 시청률 30~40%를 육박할 만큼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으나, 이후 VOD, 케이블TV, 인터넷TV의 성장으로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2005년에는 10% 내외로 시청률이 떨어졌고, 2007년 11월 3일 마지막 방송 이후 폐지되었다. <토요명화>와 유사한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MBC <주말의 명화>도 2010년에 41년만에 폐지되었다. 영화는 케이블TV나 VOD로 보는 것이 이제는 상식인 세상이다.


다양한 많은 시네마 전문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유독 <토요명화>가 기억에 남는 것은 친숙한 오프닝 뮤직 때문일 것이다. “딴딴딴딴~” 4개의 음만 들어도 토요명화가 생각날 정도다. 당시 오프닝 영상을 다시 들어보자.

이 유명한 토요명화 오프닝 음악의 원곡이 클래식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원곡에 비해서 TV에 사용된 베르너뮐러 오케스트라(Werner Muller Orchestra)의 편곡 버전이 워낙 웅장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원곡은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 1901-1999)"가 작곡한 <아랑훼즈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이라는 클래식 기타를 위한 협주곡이다.


이번에는 원곡을 들어보자. <아랑훼즈 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다.

편곡 버전보다 웅장하진 않지만, 섬세한 아름다움이 더 많이 느껴질 것이다. 


재밌는 것은 대부분의 협주곡은 독주자의 솔로 연주와 오케스트라 반주로 이루어지는데, 아랑훼즈 협주곡 2악장은 오보에(정확하게는 잉글리쉬 호른) 솔로와 기타 독주자의 2중주 형태를 가진다. 아마도 작곡가 입장에서는 감성을 살리기에 기타라는 악기보다 오보에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작곡가 로드리고는 3살때 디프테리아에 걸려서 거의 시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8살때부터 성악, 피아노, 바이올린 공부를 시작하였고, 16살에 화성과 작곡을 하게 되었다. 맹인 수준의 시력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곡은 점자로 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출신답게 기타를 자신의 주 전공으로 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아랑훼즈 협주곡은 그의 나이 38살때 기타리스트 산츠(Regina Sainz)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작곡 하였다.

아랑훼즈 이름의 유래

아랑훼즈는 원래 스페인 마드리드 지방의 도시 이름이며, 문화경관지역은 2001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 선정되었다. 특히 아랑훼즈 왕궁은 고원의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쌓인 유명한 정원을 가지고 있다. 로드리고는 특히 이 곳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을 가장 대표하는 협주곡에 “아랑훼즈”라는 이름을 붙인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여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토요명화의 추억

아랑훼즈 왕궁의 전경

클래식 기타 대중화와 세고비아

<아랑훼즈 협주곡>을 통해서 클래식 기타 협주곡의 존재를 알았다면, 이제 클래식 기타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보자.


지금은 포크 기타, 재즈 기타, 일렉 기타에 밀려서 인기가 과거 같지는 않지만, 클래식 기타는 역사와 전통으로 보면 다른 클래식 독주 악기에 못지않다. 하지만 결정적인 약점인 음량의 한계 때문에 오케스트라 편성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다른 악기들에 비해서 소외된 감이 없지 않다.


원래 기타라는 악기 자체는 4,500년전 수메르 왕국의 “판두라”라는 악기에서 유래하지만, 현재와 같은 기타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19세기 스페인 제작가인 “안토니오 데 토레스 후라도(Antonio de Torres Jurado, 1817-1892)”에 의해서다. 그래서 클래식 기타를 스패니쉬 기타라고도 부른다.

 

세계적인 작곡가들에게 클래식 기타는 피아노와 더불어 작곡할 때 가장 많이 활용되는 악기 중에 하나였다. 베토벤은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다"라고 할 정도였다. 

 

클래식 기타의 중흥기를 이끈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es Segovia, 1893-1987)"다. 그가 연주한 바하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무반주 첼로 소나타, 류트 모음곡 편곡은 클래식 기타 뿐만 아니라 모든 클래식 음악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세고비아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라고 부른다.


로드리고와 동시대 거장이었던 세고비아는 <아랑훼즈 협주곡>을 자신에게 헌정하기를 기대했으나, 로드리고가 자신이 아닌 친구에게 헌정하자 이후 아랑훼즈 협주곡을 절대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로드리고는 거장의 서운함을 달래고자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을 그에게 헌정하였고, 세고비아의 음반으로 남아있는 대부분의 협주곡은 <아랑훼즈 협주곡>이 아니라 이 곡이다. 거장이라고 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닌가 보다. 

토요명화의 추억

1962년 11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에서 세고비아 공연 모습

여전히, <로망스>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명곡들 덕분에 클래식 기타는 독주 악기로서 최소한의 인기는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로망스>는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금지된 장난(Forbidden Games, 1952)”에 삽입되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금지된 장난”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아도, 한번쯤 클래식 기타로 연주되는 <로망스>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다.

토요명화의 추억
최근에 클래식 기타 연주자들은 영화 음악 참여에 적극적이다. 국내 클래식 기타 대가 중의 한명인 이병우의 경우, "국제시장, 해운대, 괴물, 왕의 남자” 등 다양한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활동중이며, 꾸준히 솔로 음반을 출시하고 있다.


클래식 기타는 클래식 악기의 주류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많은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아련한 기억속에 있는 추억의 “토요명화” 처럼 말이다.

<아랑훼즈 협주곡> 추천음반

토요명화의 추억
1. 나르시소 예페스(Narciso Yepes)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77년 도이치그라모폰

영화 "금지된 장난” <로망스>를 연주한 대가. 10현 기타의 새로운 매력을 느껴보자. 1957년 마드리드 챔버오케스트라 협연과 비교 감상도 추천함


토요명화의 추억
2. 페페 로메로(Pepe Romero) -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오케스트라, 1994년 PHILIPS

로메로 패밀리 중에 가장 다이나믹한 음색을 가진 페페와 마에스트로 네빌 마리너의 환상적인 콤비


토요명화의 추억
3.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89 CBS

세고비아의 후계자, 기타의 황태자라 불리는 윌리암스의 세련된 연주. 줄리안 브림과의 듀엣 연주만큼 인기있는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