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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마술피리’

by미루미소

훈훈하지만 치밀한 오페라

얼굴이 하얗게 뜬 모짜르트. 그를 앞에 두고 목청을 높여 잔소리를 하는 그의 장모. 여기서 영감을 얻어 ‘밤의 여왕 아리아’를 만들어내는 모짜르트. 극적 재미를 높여주기 위해 영화 ‘아마데우스(1984)에서 삽입된 이 장면은 실제 사실과는 다르다고 한다. 계기가 어찌됐든 엄청난 기교와 발성을 요하는 이 아리아는 모짜르트의 음악적 천재성을 상징하는 테마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아리아를 품고 있는 오페라 ‘마술피리’는 모짜르트가 운명을 달리하기 두 달 전, 그것도 초연 이틀 전 완성됐다.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 기존의 오페라와는 달리 독일어로 작곡 된 파격 속에 ‘사랑’이라는 주제를 치밀한 구도와 음악에 얹어 표현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사랑 받는  대표적 가족오페라이다.

 

신분이 달라 융합하기 쉽지 않은 두 인물 ‘타미노’와 ‘파파게노’가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 ‘밤의 여왕’과 현자 ‘자라스트로’의 대립 구도 등 이 오페라에는 섞이기 쉽지 않은 양 극단의 모습들이 계속 등장한다. 하지만, 모짜르트는 이러한 구도의 꼭대기에 해소 또는 화합의 결말을 둠으로써 정반합 혹은 삼위일체를 이루고자 했다. 이 밖에도 세 시녀, 세 천사, 세 가지 시련 등 ‘3’으로 대표되는 극적 장치들을 유연하게 접목시켜 후대에 그 치밀함이 칭송되는 모짜르트의 진면목을 보였다.

‘피리 소리’, 필름에 담기다

‘예술의 전당’은 대형 프로젝트 ‘SAC on Screen’을 통해 공연∙전시 콘텐츠들을 영상화 해왔다. ‘땅끝마을 초등학생도 예술의전당 공연을 본다’는 캐치프레이즈는 꽤 설득력이 있다. 작품들 또한 심사숙고 한 티가 난다.

 

이들 중 오페라 ‘마술피리’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경재 연출을 필두로 최고의 지휘자 임헌정과 함께 성악계의 어벤져스들이 출동한 대형 프로젝트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참고 링크)

 

그러나 한가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종종 무대에서 내려오는 냄새마저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 앞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동적인 움직임과 생생한 육성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이 공연 직관의 매력이다. ‘SAC on Screen’…공간적 제약을 벗어나겠다는 큰 뜻은 이루었으나 이를 옮겨 담은 영상과 음향은 어떤 한계를 벗어났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냄새는 포기할 수 밖에 없겠지만, 마술피리는 어떤 음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색으로 살아난 소리와 노래

‘SAC on Screen’ 프로젝트 상의 ‘마술피리’는 그냥 녹화 방영용 필름이 아니다. 영상에 담기 위해 음악계, 음향계, 무대, 의상 각 분야의 유명 디자이너들이 동원된 작품이다.

 

그래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영상이다. 물론 개별 관객이 능글 맞은 ‘파파게노’보다는 귀여운 ‘파파게나’를 보고싶다거나 하는 사소한 시선의 소망까지 들어줄 순 없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무대를 전달하기 위해 연출됐다.

 

영상의 큰 축은 ‘회화’적 느낌이며 ‘색’을 입은 소리였다. 극 상황, 배우의 심리를 색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 바탕이 되는 무대는 흰색으로 일관돼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 흰 바탕을 느낄 새 없이 무대는 계속 옷을 바꿔 입는다. 워낙 최근 공연 무대장치가 창의적이고 역동적인지라 이 부분을 기본으로 보는 입장에서 이러한 빛과 색의 운용은 차별성이 있다.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마술피리’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마술피리’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마술피리’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파파게노

이경재 연출가는 이야기가 ‘잘 보이는’ 작품이 나오길 기대했다고 했다. 연출에 의해 하얀 종이 위에 배우들이라는 붓이 그림을 그렸고, 디자이너에 의해 무대 또한 목소리를 냈다. 소리와 노래는 빛과 색깔의 리듬 속에 조화를 이루어냈다. 이러한 빛과 색깔의 장치만으로도 관객은 충분히 즐길 만 했다.


빛과 색깔이 연출해 낸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다. 가장 흥미롭게 봤던 점인데, 타미노가 마술피리를 불 때 붉게 파랗게 피리가 빛을 낸다는 것이었다. 뮤지컬이라면 입으로 어쭙잖게 피리를 부는 흉내를 냈을지도 모르나 이 오페라에선, 아니 이 영상에선 피리가 빛을 내는 것으로 그 소리를 전달하려 했으며 무게감을 유지했다. 이 영상의 컨셉과 맞는 적절한 장치였다는 감상이다.

 

배우와 무대 자체를 따라가는 시각의 동선도 훌륭했다. 배우의 얼굴과 전체 구도를 포함하는 원근을 적절히 조절했으며-클로즈업 될 때 종종 배우와 합창단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영상 환경의 한계리라- 산만한 느낌 없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마술피리’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마술피리’

마술피리를 부는 타미노 왕자

귀가 느끼는 스크린 속 공연

김우경, 박현주, 서활란, 전승현 등 세계적 명성의 성악가들이 목소리를 냈다. 눈은 호강을 하는 듯 한데 내 귀는 그 목소리들을 어떻게 느끼고 있었을까.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마술피리’

파미나 공주(박현주)와 타미노 왕자(김우경)

물론 향후 작품이 방영되는 환경에 따라 이 목소리들은 다르게 전달될 것이다. 그럼 이 필름이 최대한 낼 수 있는 목소리는? 우선 이 작품을 접한 시내의 유명 예술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 극장의 음향 시설에 대해 검색해 봐야 했다. 작품의 음향 스펙보다 먼저 그 스펙을 소화한 극장의 시설이 궁금했던 것이다.

 

음향적으로 충분히 구현이 가능한 환경이라면 이 작품으로 인해 귀 또한 호강할 수 있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성악가들의 노래 고음 부분에서 ‘역시 기계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 살짝 들긴 했지만, 이 말 또한 괜한 시비거리가 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

 

귀가 호강한 부분은 또 있다. 자막과 한국어 대사. 이태리어가 아닌 독일어로 작곡됐다는 것이 ‘마술피리’의 고평가 관점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이태리 말이건 독일 말이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필름엔 자막을 담을 수 있다. 독일어 노래에 담긴 악센트를 느끼며 마음의 귀는 한국어를 듣게 된다.

 

‘마술피리’는 배우들간 대사가 큰 역할을 하는 ‘징슈필(Singspiel)’ 오페라이다. 연출가에 따르면 이 대사 부분은 제작진에게 큰 고민이었다. 해답은 한국어 대사로 결론이 났다. 엄격하게 독일 원작 대본에 충실하고자 했으면서도 한국어 대사로 관객에게 다가가고자 했으며 적절한 현세 코드의 의역이 보충되었다. 이 영상화 사업의 목적이 땅끝마을까지 도달하기 위한 것이라면 세심한 고민과 배려가 아닐까 생각되는 지점이다.

‘여왕은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고 손을 잡았다’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마술피리’

이 작품 속에는 삼각형의 장치들이 많이 등장한다. 배우들이 들고 있는 피라미드형의 등불, 지팡이 끝의 삼각 조형, 배우들의 위치 선정 등. 극 내부 관계들 속에도 ‘타미노와 파미나’,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자라스트로와 밤의 여왕’ 세 지점이 이어지는 것도 그러하다. 모짜르트가 강조한 ‘3’의 구도와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에선 ‘밤의 여왕’이 원작에서와 같이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고 현인 ‘자라스트로’의 손을 잡고 일어나 함께 웃는다. 양쪽의 갈등이 화해와 용서로 ‘합(合)’이 되어 해소되는 결말 구조를 이끌어냈다. 작품 내내 강조된 삼각 구도는 가장 견고한 형태의 정신을 상징했던 것이다.

 

‘프리메이슨’의 일원이었던 모짜르트는 여러가지 프리메이슨적 의미를 오페라 곳곳에 장치했으며 특히 정신적으로는 자유, 평등, 박애를 표현하고자 했다. ‘Sac on screen 마술피리’는 그런 의미에서도 원작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791년 9월 서민들이 모이는 빈 비덴 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마술피리’. 서민들을 위해 ‘징슈필’ 스타일로 작곡된 이 독일어 작품을 보면서 떠들썩하게 목청을 높여 웃는 모습들이 극장을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들이 이젠 스크린을 앞에 두고 재현되기를 바라는 것이 예술의전당 제작진의 의도일 것이다. 극장 한 켠에서 이를 지켜보는 살리에르는 없을지라도.

 

우연하게 스크린에서 ‘마술피리’를 만난 한 사람으로서, 앞에서 운운한 거창한 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훈훈한 시도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팬이 한 명 더 늘어난 듯 하다.

 

글. M (뜨내기 영화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