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클래식 1도 모른' 유재석,
하프 연주 이끈 윤혜순 하피스트

by뉴시스

코리안심포니 하프수석

MBC TV '놀면 뭐하니' 프로젝트 참여

하프·클래식·코리안심포니 알렸으면

뉴시스

[서울=뉴시스] 유재석, 윤혜순 수석. (사진 = 예술의전당 제공) 2020.02.13 realpaper7@newsis.com

하프 연주에서 미끄러지듯 여러 줄을 오가는 '글리산도' 연주법이 구사될 때, 청중의 감정은 마천루를 오른다. 그 짧은 찰나가 주는 상승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천상의 소리'가 MC 겸 개그맨 유재석 손끝에서 태어나는 순간, 일상은 작은 행복감과 설렘에 물든다. 하프는 그렇게 지상의 악기가 된다. 유재석을 천상계에서 지상계로 이끈 스승은 윤혜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하프 수석. 17일 오후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윤 수석은 "유재석 씨의 손끝이 둥글둥글하고 살집이 도톰해서 이미 손모양이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잘 잡혀 있었어요. 소리를 너무 잘 냈다"고 흡족해했다.


지난 13일 선보인 유재석 하프연주는 공연계와 방송계를 동시에 들썩였다. 당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한화생명과 함께하는 예술의전당 - 11시 콘서트'에서 유재석은 베토벤 가곡을 깜짝 연주했다. 유재석은 지휘자 여자경이 지휘봉을 들고 코리안심포니가 연주를 맡은 이날 본 공연이 끝난 뒤 앙코르 무대에 등장했다. 코리안심포니 단원들과 함께 하프로 베토벤의 가곡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당신을 사랑해)를 연주했다. 윤 수석이 퍼스트로 나섰고, 유재석이 세컨드로 도왔다. 다만 방송 촬영을 위해 유재석의 자리가 앞으로 배치됐다. 유재석은 그럴싸한 글리산도 기법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페달도 비교적 능숙하게 사용했다. 손과 발이 47개의 줄과 7개의 페달을 부지런히 오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직됐던 공연계에 생기가 돌았다 '한국 클래식음악계의 성지'로 통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스타 대중 음악가도 오르기 힘든, 문턱이 높은 곳이다. 프로 클래식음악 연주자가 아니면 올라가기 힘들다. 예술의전당은 대중친화적인 '11시 콘서트' 공연과 유재석을 통해 공연계가 활기를 띨 것이라는 기대로 용단을 내렸다. 유재석은 "클래식을 1도 모른 채 시작했지만, 앞으로 클래식을 더욱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자경 지휘자는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 그리고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이히 리베 디히‘를 골랐다. 하프 연주가 포함돼 있지 않지만 유재석을 위해 여 지휘자가 편곡했다. 하프 연주가 돋보일 수 있도록 글리산도 부분을 집중 배치했다. 윤 수석은 "유재석씨가 너무 기억을 잘 해요. 연주 전 같이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어요. 페달을 밟는 부분도 여러 번 확인했고요. 연주 때 저랑 똑같이 책장을 넘겨서 기뻤고 기특했죠"라며 미소 지었다.


그런데 사실상 악보를 볼 줄 모르는 보통 사람을 한 달 만에 연주자로 변신시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유재석과 윤 수석이 처음 만난 건 연주회가 열리기 한 달 전. 유재석은 진심으로 어려워하며 "매번 못하겠다"고 했지만 윤 수석은 밀어붙여야만 했다.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으로 첫 연습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 2~3시간씩 레슨을 했다. 유재석과 윤 수석은 총 3번의 레슨, 오케스트라 무대 리허설를 함께 했다.


이번 유재석 하프 프로젝트는 '무한도전'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협업하는 MBC TV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성사됐다. TV를 잘 보지 않는 윤 수석은 처음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몰랐다. 이번 달 방송 예정인 이번 하프 프로젝트에 대해 확신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재석이 드럼을 연습해 드럼 독주회를 성료하고, 트로르를 연습해 트로트가수 '유산슬'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차차 바뀌었다. "굉징히 어려운 미션을 성공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코리안심포니 상임지휘자인 정치용 예술감독도 한번 해보자며 힘을 불어넣어줬다. 결국 윤 수석은 고민 끝에 명분을 찾았다. ▲하프에 대한 편견·오해를 푸는 계기 ▲클래식의 저변 확대 ▲코리안심포니 홍보 등 세 가지다. 김태호 PD에게도 이러한 세 가지를 분명히 제시했다.


윤 수석은 올해 창단 35주년을 맞은 코리안심포니 지킴이와 같다. 1985년 지휘자 홍연택이 순수 민간 교향악단으로 창단한 코리안 심포니는 1987년 국립극장과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했다. 2001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탈바꿈, 예술의전당 상주단체가 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주회를 소화하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다.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등 예술의전당 다른 상주단체 공연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한다. 작년 통틀어 138회 공연했고, 윤 수석은 90회 무대를 책임졌다.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윤 수석은 중학교 1학년 때 악기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이후 하프를 취미로 연주하던 언니가 그녀에게 이 악기를 권유했다. 피아노 덕에 양손 악보를 볼 줄 알았던 윤 수석의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선생님은 칭찬 세례를 쏟아부었다. 중학교 2학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하프를 연주했다.

뉴시스

[서울=뉴시스] 유재석 하프. (사진 = 예술의전당 제공) 2020.02.13 realpaper7@newsis.com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한 윤 수석은 1986년 코리아심포니에 입단했다. 2년간 활동하다 퇴단하고, 남편과 함께 유학길에 올라 미국 피바디 음대 석사를 밟기 시작했다. 동기들에게 "귀신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연습실에서 살았던 시절이다.


이후 1993년 코리안심포니에 다시 입단, 1년 뒤 수석이 돼 지금까지 코리안심포니의 중심축 역을 맡고 있다. "코리안심포니는 민간으로 시작해서 굉장히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을 때도 있었죠. 위기도 몇번 겪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중 한 곳이 됐다. 윤 수석이 특히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은 코리안심포니가 교향곡뿐만 발레, 오페라도 자주 연주한다는 것이다. 교향곡에서 하프 연주자의 카덴차(독주자가 연주하는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는 많지 않다. 반면, 발레와 오페라에서는 테크닉을 보여줘야 하는 카덴차가 종종 등장한다.


윤 수석 스스로도 연주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2014년 제자들과 함께 하프 앙상블 '더 하프(The Harp)'를 창단했다. 이들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방방곡곡 문화 공감' 등을 통해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 클래식음악 문턱 낮추기에 힘썼다. 이런 하프 연주자들의 수고에도 국내 음악계는 하프 연주자들을 박하게 대하고 있다. 이대, 서울대, 연대, 한예종 등에서 하프 연주자가 꾸준히 배출되지만 하프 연주자를 뽑는 지역 오케스트라는 많지 않다. 그런데 근본적인 부분을 따지면 클래식음악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많지 않아 빚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프 연주를 비롯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수요가 없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작년 10월 예술의전당 '아티스트 라운지' 주인공이 '더 하프'였는데, 유보석까지 모두 팔렸다. 보통 연주자들에게 제공되는 초대석 등을 윤 수석을 비롯한 연주자들이 받지 않았는데 모두 팔렸다. 윤 수석은 "자랑스러웠던 순간"이라며 미소지었다.


이처럼 '천상의 악기'로 불리는 하프와 대중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는 윤 수석에게 하프를 싸고 있는 베일을 걷어달라고 부탁했다. 국내 전공자가 200~300명에 불과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하프. 여성스럽고 유려한 소리만 나올 것 같다 등 선입견만 한 가득이다. 높이 180㎝이상 무게 30㎏의 하프를 온 몸으로 떠받치고 있어 '코어 근육'이 길러졌다는 윤 수석에게 대중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대중의 하프에 대한 편견 깨기 짧은 문답.

뉴시스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유재석의 하프 스승인 윤혜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하프 수석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2.18. dadazon@newsis.com

Q. 하프는 악기가 비싸서 부잣집 자녀만 연주할 수 있다? 하프만 있으면 대학 간다?


A.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새 악기를 산다는 학생들을 먼저 말리고 본다. 중고 악기를 사도 충분하고 자기 악기 없이 렌트를 해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많다. 비싸다고 하지만 관악기 중에서 비싼 것은 하프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다. 특히 하프는 한번 사서 잘 관리하면 평생 쓸 수 있다. 취미로 하프를 배울 때 접하는 레버 하프(발로 페달을 밟는 대신 손으로 레버를 올려 반음을 조절한다)는 값도 싸다. 영재 중심의 교육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선 여러 기관에서 레버 하프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값이 무조건 비싸다는 인식 때문에 취미 악기를 고를 때 선택지에서부터 배제되는 상황이 아쉽다."


Q. 하프로 연주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곡이 많지 않다?


A. "반은 맞는 얘기다. 고전시대를 지나 낭만시대 때부터 활발하게 하프를 사용할 수 있는 곡들이 만들어졌으니까. (고전시대 작곡가인) 베토벤에 하프가 없는 이유다. 홍연택 선생님이 말러, 바그너, 슈트라우스 등 낯설고 난해한 곡을 꾸준히 선보여 하프 연주할 기회도 많아졌다."


Q. 하프 소리는 아름답기만 하다?


A. "바이올린처럼 뚫고 꾹 질러서 나오는 소리는 없다. 하지만 하프만이 낼 수 있는 영롱한 소리가 있다. 유재석 씨가 구현한 글리산도 기법도 하프 소리의 매력을 알게 해준다. 페달로 조성을 바꾸면 화려한 소리를 낼 수 있다.


Q. 악기 이동은 어떻게 할까?


A. "제가 나른다. 승합차에 케이스가 없는 채로 실으면 들어간다. 운반은 카트로 하고. 힘이 좋다고 하프를 무조건 잘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밸런스가 특이해서 악기 자체를 잘 알아야 잘 다뤄서 운반할 수 있다."

뉴시스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유재석의 하프 스승인 윤혜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하프 수석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2.18. dadazon@newsis.com

Q. 예쁜 여자만 연주한다?


A. "연주자가 하프를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하. 해외에는 남자 연주자도 많다. 하지만 국내에는 거의 없다. 오케스트라마다 하프 연주자 채용 자리가 나지 않으니, 남자들이 계속 연주를 이어가는 것도 무리다. 남자 제자를 키우는 것이 꿈이었다. 내 키가 작고, 팔이 짧다. 그래서 베이스 소리를 내려면 몸을 앞으로 크게 숙여야 하는데 그러면 상당한 체력이 소요된다. 남자가 연주를 하면 무게감이나 느낌이 다를 것 같더라. 유재석 씨가 꿈을 이루게 해줬다.

뉴시스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유재석의 하프 스승인 윤혜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하프 수석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2.18. dadazon@newsis.com

인터뷰 말미 윤 수석이 양 손바닥을 활짝 폈는데 뭉툭한 손 끝이 보였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의 울퉁불퉁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발이 겹쳐졌다. 호수 위의 백조가 따로 없다. 하프의 무게에 눌려 어깨, 허리, 다리가 아플 수밖에 없단다. "우아할 것 같다고요? 많은 분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요. 하하."


그런 인내와 노력 끝에 탄생한 음악은 그래서 더 가치 있다. 3월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코리안심포니 창단 35주년 기념음악회가 이를 확인할 기회다. 정치용 감독 지휘로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 연주된다. 이 곡들 모두에 하프 연주가 나온다. 오래되고 새로운 하프 소리를 들을 시간이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