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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폭염이 물러간
지금 딱 어울리는 곳

by오마이뉴스

함양 화림동 계곡과 정자들

오마이뉴스

울창한 숲을 곁에 두고 암반에서 한껏 뒤로 물러서서 절묘하게 앉은 농월정. 누마루에 올라 널찍한 월연암과 힘차게 흐르는 물을 보고 있노라니 이름 그대로 가히 달빛을 즐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숙귀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로부터 함양은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가 배출한 다섯 뛰어난 현인, 동방오현(東方五賢)중의 한 분인 일두 정여창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몇 년전 함양에 들렀다가 화재로 전소된 농월정을 보지 못하고 되돌아온 아쉬움도 남은 터, 이번에 상림의 남은 연꽃도 보고 함양 8경중 4경인 화림풍류도 느껴볼 생각이다.


함양에서 가장 화려한 자연의 미를 간직한 곳이 화림동이다. 화림동 계곡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물이 육십령을 거쳐 서상·서하면으로 흘러내리면서 기이한 바위와 못을 만들었으며 풍광이 뛰어난 곳에는 정자가 있어서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보고(寶庫)로 꼽힌다. 계곡에는 지금도 농월정,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 등 고풍스런 정자 4개가 남아있다.


대전통영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지곡IC에서 내려 안의면 농월정국민관광단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농월정교를 지나 계곡으로 내려서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암반위에 농월정이 서있다. 주변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산을 이룬 수직 절벽이 계곡으로 이어져 수평의 너럭바위가 되고 암반을 이루었다. 크고 작은 바위가 곳곳에 놓였고 오랜 세월 깎이고 다듬어진 바위의 골과 홈 사이로 물이 고이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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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정에서 1.5㎞ 거리에 있는 군자정. 일두 정여창선생이 머물던 곳으로 1802년 선생을 추모하여 세운 정자이다. 동호정에 비하면 단아, 소박하고 간결, 검소하여 절제된 선비정신이 오롯이 배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김숙귀

정자 누마루에 올랐다. 농월정은 2003년 화재로 전소됐다가 2015년 복원됐다. 그래서인지 단청이 깨끗하다. 계곡을 내려다보니 정자 이름 그대로 물에 비친 달빛을 즐기던 선비의 풍류를 알 듯도 하다.


근처 바위에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지족당이 지팡이를 짚고 거닐던 곳이라는 뜻이다. 농월정은 조선중기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知足堂) 박명부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거대한 월연암 너럭바위 위로 미끄럼타듯 세차게 흐르는 물살을 뒤로 하고 동호정으로 향했다.


동호정은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몽진하는 선조를 업고 강을 건넜다는 동호 장만리 선생이 낙향해 머물던 곳으로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암반 위에 주춧돌도 없이 자연 그대로의 나무로 기둥을 세웠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나무계단이 이채롭다.


동호정 앞에 있는 차일암은 백 명이 앉을 수 있다는 널찍한 바위로 옛 양반들이 차일을 쳐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차일암에 앉아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을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니 더위는 이미 저만치 가있는 느낌이다.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소박한 군자정에 올라본 뒤 바로 근처에 있는 거연정(居然亭)으로 갔다. 아치형의 다리, 봉전교를 지나니 그림 같은 풍경속에 거연정이 날아갈 듯 서 있다. 인조 때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선생의 7대 손인 진사 전재학 전민진 등이 1872년에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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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일부인 양 고즈넉이 앉아 있는 거연정의 모습. 거연정은 인조 때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선생의 7대손인 진사 전재학 전민진 등이 1872년 건립했다 ⓒ 김숙귀

거연정은 이름 그대로 '자연(然)과 더불어 살고(居)'싶은 뭇 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는 정자이다. 그래서인지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하는 곳'이라는 설명조차도 그럴듯해 보인다. 눈과 귀, 그리고 여유로운 마음까지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일두선생의 고택이 있는 개평한옥마을을 둘러본 뒤, 함양휴게소에서 연잎밥으로

요기를 하고 내려오는 길. 계곡을 흐르는 힘찬 물소리가 귀에 여전히 들리는 듯했다.


김숙귀 기자(rmfldna4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