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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단 하나 바꿨을 뿐인데...
히어로 시장 뒤흔든 '조커'

by오마이뉴스

[리뷰] 호아킨 피닉스 주연, 토드 필립스 감독 영화 <조커>

오마이뉴스

▲ 영화 스틸 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웃음이 미친 듯이 나오는 정신질환을 앓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은 십대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광대다.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그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지만 정작 남을 웃기지 못한다. 꿈을 이루기는커녕 병을 앓으면서 알 수 없는 편지를 쓰는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이후, 아서는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계급과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는 마침내 '조커'로의 삶을 선택한다.


토드 필립스 감독이 만든 <조커>의 스토리 전개, 서사 구조는 결코 새롭지 않다. 히어로 영화의 전형을 충실히 따라간다. 히어로 무비에서 내적 결핍을 지닌 주인공은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본인의 능력을, 새로운 자아와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는 조력자를 만나기도 하고, 시련과 역경에 놓인다. 하지만 끝내 온갖 고난을 물리친 후에 그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도움도 주고 도움을 받기도 하는 히어로로 거듭난다.


따라서 <조커>를 히어로의 기원을 다루는 뻔한 영화 중 하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커>는 그 어떤 히어로 영화도 보여 주지 못한 충격, 두려움, 광기와 매력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조커>와 다른 히어로 영화의 차이는 단 하나, 바로 '조커'다.

영화의 모든 것을 바꾼 작은 변화

히어로의 자리에 사회에서 무시받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위치시켰다는 것 외에 <조커>가 변화를 준 것은 없다. 그러나 첫 단추가 나머지 단추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이 작은 변화는 영화의 모든 것을 바꿨다. 히어로를 빌런으로 바꾼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주인공 한 개인이 바뀐다는 뜻이 아니다. 그 개인과 관계를 맺는 영화 속 모든 구성 요소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진실은 거짓이 되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주관성은 객관성이 된다. 죽음은 삶으로, 비극은 희극으로, 웃음은 울음으로, 빌런은 영웅으로 <조커> 속 요소들은 원래 알던 히어로 영화의 그것들로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커의 말마따나, 조크는 주관적이니까. <조커>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속 폭동과 브루스 웨인의 등장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완전히 뒤바뀐 의미를 <조커>는 수없이 접했을 전형적인 히어로 영화의 구조 안에서 풀어낸다. 조금도 덜지 않고 조금도 더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조커>는 충격적이고, 매력적이고, 두려운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회 질서가, 세상의 의미가, 히어로를 떠받드는 행위가 일상적이고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관념과 충돌하면서 엄청난 괴리감을 유발하며, 괴리감은 개봉 전부터 우려가 일었던 <조커>의 강력한 선동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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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조커 >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조커는 조크는 주관적인 것이라며, 살인도 조크가 될 수 있다고 항변한다. 혼란으로 가득한 현실을 만든 것은 자신이 아니라 토마스 웨인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이며, 그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이해하지 않고 열등한 존재로 짓뭉게며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은 탓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조커의 주장은 보편적인 도덕관념에서 어긋나는 변명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진실이 섞인 거짓을 파악하기 힘든 것처럼, 완전히 뒤바뀐 의미를 익숙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조커의 논리에는 설득력과 정당성이 부여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영화와 조커가 관객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처럼 평범한 구조 안에서 폭발적인 에너지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조커>는 가장 충격적인 히어로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따라서 <조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조커'를 표현하는 일이다. 조커가 관객을 매료시키지 못하고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하면 조커가 바라보는 세상, 조커와 관계를 맺은 사회는 뜬구름 잡는 헛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는 영화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조커를 스크린에 등장시킨다.

호아킨 피닉스가 만든 '조커'의 강렬한 존재감

이 영화 첫 장면은 미친 듯이 웃는 '아서'의 모습이다. 아서는 분명 웃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울고 있다. 울고 싶지만 웃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고,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 좌절하고 실망했지만 그대로 무너질 수 없기에 우는 대신 억지로라도 웃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조커'는 웃는다. 일말의 울음도 없이, 그는 세상을 웃게 하고 자신의 마음까지 웃게 한다. 이제 그의 웃음과 미소는 순수하며 그래서 광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광기는 다른 사람들까지 사로잡는다.


영화는 조커가 웃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거듭해서 보여준다. 미묘한 웃음과 표정의 변화를 통해서 아서는 조커가 되어간다. 이 변화는 오롯이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덕분이며, 그렇기에 반복적이고 안일해 보이는 클로즈업조차 그의 얼굴을 잡는 순간 최적의 연출로 느껴진다. 이렇다 할 액션이 없는데도 아이맥스로 이 영화를 감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서에서 조커로의 변화, 사회적 약자의 분노, 인간 내면의 붕괴 등을 얼굴 표정과 웃음소리만으로 완벽하게 표현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감히 히스 레저의 조커가 생각나지 않게 만드는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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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경찰차 위에 서서 얼굴에 미소를 그리는 조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조커들. 카메라는 이를 위에서 내려다보지도 않고, 조커의 시선에서 그에게 열광하는 대중들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수많은 군중들 중 하나의 시선으로 조커를 올려다본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범죄자이고, 정신질환자 불과한 그가 하나의 히어로 혹은 빌런으로 탄생하는 감성적인 순간인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조커의 세상, 조커와 사회의 관계, 조커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논리적 전개를 숨겨버린다. 조커의 정신질환은 분기점마다 어떤 것이 사실이고 아닌지를 의심하게 만들면서 영화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래서 <다크나이트>와 같은 작품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 속 각 장면들 간의 관계는 세밀하거나 아주 유기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적이고 독특한 새로운 버전의 조커가 등장할 수 있었다.

<조커>, 히어로 영화 시장을 뒤흔들다

<조커>가 인상적인 또 다른 이유들도 있다. 조커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보여주는 공간 안에서의 다른 색깔로 이루어진 조명들, 다른 히어로 영화들이 자신을 봐달라며 화려하게 치장하는 사이 80년대 레트로 스타일로 보여주는 여유, 뼈를 울리는 듯한 OST까지. 이 모든 것들은 <조커>를 풍부하게 채워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커>의 단 한 가지 미덕을 꼽으라면 그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해서 간과하기 쉬운 이야기의 시작과 주체를 과감하게 바꿀 줄 아는 것. 이를 통해 <조커>는 고정된 사회의 질서에, 세상의 의미에 도전장을 던진다. MCU와 같은 유니버스 세계관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히어로 영화 시장도 뒤흔들어 놓는다. 이제는 <다크 나이트>가 아니라 <조커>를 넘어서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원종빈 기자(potter11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