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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열등생의 비애...
그리고 가이딩 테스트

by오마이뉴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 다이빙]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집트 다합(Dahab)에서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OpenWater)부터 다이브마스터(DM)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물 공포증이 있었던 필자가 2018년 12월 27일부터 2월 19일(55일)까지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 기자말

1. 열등생의 비애

오마이뉴스

바닷속을 유영하는 나 ⓒ 차노휘

"언니, 불평할 필요가 없어요.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거예요."


규는 아주 자신 있게 내게 말했다. 나는 단단히 심사가 꼬여서 다른 날처럼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흥분된 음성으로 그녀의 말을 바로 받아쳤다.


"그럼 왜 우리가 교육비를 내지? 교육비를 내는 것은 가르침을 받고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야. 그리고 생각해봐. 너는 내가 올 때부터 잘했어. 처음부터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착했을 때 너는 한 달 반 미리 교육을 받고 있어서 실력이 됐다는 거야. 못했을 때는 너 혼자 훈련하고 있어서 비교 대상이 없었을 거고. 되레 우리가 너와 비교 대상이 된 거지.


J도 처음에 그만둘까도 걱정했지만 귀국 날짜가 촉박해져서 몰아서 훈련을 했잖아. 나는 배제되고. 그때 실력이 늘어서 재미가 붙은 것 같더라고. 적극적으로 교육에 따라 들어갔으니깐. 하지만 너희들이 귀국을 미루고 한 달 더 남기로 했잖아. 계속해서 교육 따라 들어가고 시범 보이고. 강사 입장에서는 나를 훈련시켜 교육생들에게 시범 보이게 하는 것보다 미리 시켜놓은 사람을 시키는 게 편하지 않겠니?


그래서 너희들도 바빴던 거야. 미처 나를 돌아볼 시간도 없었고. 조나단과 줄리아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혼자 뱅뱅 돌고 있었어. 이것은 당해본 사람만 알아. 열등생의 비애 같아서 누구에게도 불평 못하고. 그리고 너는 스스로 배우는 것이라고 자신감 있게 지금 말하고 있어. 너는 이미 배웠으니깐…"


규와 나는 센터 2층에서 설전을 벌였고 J는 그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발단은 가이딩 테스트 훈련에서 시작됐다. 그동안 내가 훈련을 받으면서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해버렸던 것이다.

2. 가이딩 테스트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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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T들과 센터 앞에서(제일 왼쪽이 줄리아). ⓒ 차노휘

가이딩 테스트는 규가 먼저 받았다. 진즉 통과했어야 할 그녀였다. 입수하기 전에 어느 곳에 갈 것인지와 안전에 관한 브리핑 후 장비 착용, 버디 체크 지시 등 펀 다이빙 가이드들이 했던 그대로 해야 한다. 입수 지점과 출수 지점도 정확히 찾아야 한다.


규는 DMT 선배답게 완벽하게 해냈다. J와 내가 입수하고 2분이 지났을 때 이퀄라이징과 호흡기에 문제가 있다는 미션에도 잘 대처했다.


가이딩 시험을 볼 때 유난히 바람이 거칠어서 출수할 때는 얼 정도였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긴장감과 줄리아의 매서운 지도가 우리를 흐트러지게 하지 않았다. 문제는 줄리아가 쉬는 다음날 발생했다. 줄리아는 숙제를 내주고 갔다. J와 내게 가이딩 연습을 하라고 했다. 시험을 통과한 규는 손님과 강사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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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이 끝나면 슈트를 민물에 헹구어서 야외 건조대에 걸어두어야 한다. ⓒ 차노휘

먼저 J가 연습을 했다. J는 두 군데 중 한 군데를 했고 나는 아주 착실한 펀 다이빙 손님이 되어 J의 지시에 따랐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젖은 수트에 바람이 더욱 매섭게 들어왔다. 이미 규는 춥다면서 가이딩 훈련에 비중을 두지 않고 있었다. 브리핑할 때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물속에서는 가이드가 길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중간중간 뒤돌아보면서 손님들과 게이지 체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웬걸, 이들은 뒤돌아서서 뒷발차기 연습을 하는 등 천방지축이었다. 놀기로 작심한 듯했다.


물속이라 화를 낼 수도 없고 몇 번 그들이 그렇게 나오자 나는 무시를 당한 기분에 자존심이 그만 상해버렸다. 가이딩 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반환점부터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출수를 했을 때 기어코 비꼬듯이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아무리 내가 능력 없는 가이드라지만 내 지시를 따라주는 것이 옳지 않니?"


말을 마치자 내 서러움에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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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이 끝나면 슈트가 젖기 때문에 무조건 양지바른 곳에서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외모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 차노휘

"그건 그렇지만 펀 다이빙 손님들 천태만상인 것 아시죠?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이런 손님도 있고 저런 손님도 있다는 것. 우리는 불량 손님 역할을 했던 거예요. 그것 대처하는 것도 가이딩 능력이니깐요."


규는 야무졌다. 만약 강사와 내가 대거리를 하고 있다면, 강사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을 다 하고 있었다. 나도 강단에서 습관적으로 저런 말을 했을까, 순간 나를 점검해야 했다. 나도 고집은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끝내야 했다.


"너 말이 맞긴 하지. 하지만 길도 익숙하지 않는데 그렇게 가이드 신호를 무시하면 집중이 떨어지잖아. 너 때도 생각해봐. J 너도? 다를 초보 가이드라 나는 정말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너희들의 신호에 최선을 다해 반응해 줬잖아. 더군다나 줄리아도 없잖아. 안전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특히나 훈련생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봐. 배려…"

3.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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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의 밤거리. ⓒ 차노휘

다음날 줄리아가 출근을 했을 때 나는 그녀와 상의를 했다. 공포증이 있던 내가 이 정도까지 온 것도 대단한 일이다, 이 정도에서 멈춰야 할까 등 밤새 여러 방향에서 고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훈련이 힘들긴 했지만 견뎌내고 있었다. 다합에서도 한국인끼리 모여서 하우스셰어를 하지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원했다. 외로운 것? 그런 것도 없었다. 다만 열등생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그 패배감이 죽기보다 싫었다.


거두절미하고 줄리아에게 제시했다. 돈을 더 내더라도 개인과외를 받아야겠다고. 가이딩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상황을 한번 봐요. J부터 가이딩 테스트를 하면 물속이 더 밝아질 수도 있으니… 개인과외는 그다음 생각해봐요."


결과적으로 줄리아는 유능했다. 상황 판단이 정확했고 결단력이 있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었다. 자신감까지 심어주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DM이 되고 강사가 되기 위해서 받았던 훈련(남편인 조나단에게 받았다). 발차기를 하지 못해서 조나단에게 무시를 당했던 일. 오기를 품고 발차기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인대가 손상될 수도 있다는 의사 진단에 한 달 정도 다이빙을 하지 못했던 일(그녀의 뒤꿈치에 지금도 선명한 흔적이 있다). 다합에 와서 자리 잡기까지의 힘든 과정 등.


그날 점심 식사 후 J의 가이딩 테스트가 있었다. 어제 처음 갔던 코스는 여전히 시야가 좋지 않았지만 그는 무사히 해냈다. 미션도 잘 처리했다. 두 번째 코스는 내가 가이딩 할 때 그가 딴 짓만 했던 곳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 반환점에서 줄리아가 가이드 역할을 대신했다. 출수하고 그는 말이 없었지만 얄궂게도 나는 그의 실패가 나의 위안이 되어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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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과 함께 하는 나이트 다이빙 ⓒ 차노휘

차노휘 기자(ckshgn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