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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북미'라는 '로컬' 점령해
가는 봉준호 감독의 여유

by오마이뉴스

골든 글로브 감독상 등 후보 올라... 한국영화 100주년 선물

오마이뉴스

송강호, 최우식 배우와 함께 IMDB와 인터뷰 중인 봉준호 감독. ⓒ IMDB 유튜브 공식 채널

"좀 이상하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니다."

"오스카(아카데미) 영화상은 국제 영화제가 아니지 않나. 오스카는 굉장히 '로컬'(지역적)이니까("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

지난 10월, 봉준호 감독은 미 뉴미디어 전문지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디스' 아닌 '디스'를 했다. 국내 언론과 관객들은 물론이요, 미국과 전 세계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 역시 환호했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상의 전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봉준호의 평가는) 완벽한 요약이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개인적으론, "very local"이란 표현에 무릎을 쳤다. 그야말로 봉준호 감독만의 '센스'가 반짝이는 현답이 아닐 수 없었다. 범위를 좁혀보면,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 영화를 포함한 영어권 영화가 곧 영화'라 여기는 (오스카 영화상의 투표권을 가진) 미국의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위원회 회원들을 향해 (자신도 회원 중 한 명인) 봉 감독이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간 말 못했던 진실'을 '현타'로 날린 역사적 장면이라 할 만했다.


지난 10월 11일 북미에서 정식 (소규모) 개봉한 이후, 봉 감독과 <기생충>의 현지 배급사 네온의 행보는 눈부셨다. 북미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 박스오피스 1위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우선 국내 배급사 CJ ENM이 밝힌 흥행 성적을 보자.

"(<기생충>은) 지난 10월 11일 북미에서 개봉해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흥행 순항 중에 있다. CJ ENM은 북미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 모조를 인용, '<기생충> 이 현지 시각으로 12월 8일(일) 기준 누적 박스오피스 매출 북미 박스오피스 매출 1934만 6736달러(약 231 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개봉 59일째에도 여전히 박스오피스 12위를 기록하며 꾸준한 호흡으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골든 글로브 입성한 <기생충>의 눈부신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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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봉준호 감독, 기자를 찾아라! 봉준호 감독이 지난 5월 27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시사회에서 질문하는 기자를 찾고 있다. ⓒ 이정민

미국이라는 '로컬' 영화계를 점령 중인 <기생충>의 눈부신 행보는 이밖에도 차고 넘친다. 먼저 따끈한 소식부터. 9일(미 현지시각)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는 <기생충>이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등 총 3개 부문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영어권)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영상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는 골든 글로브가 '오스카'의 전초전이란 사실은 부연이 필요 없을 듯하다. 한국 콘텐츠의 골든 글로브 주요 부문 최종후보 선정은 <기생충>이 단연 최초다.


10일 CJ ENM 측은 "<기생충>이 후보로 선정된 외국어 영화상 부문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2019년 수상), 이안 감독 연출의 <와호장룡>(2001년 수상),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1994년 수상) 등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켰던 유수의 작품들이 수상한 바 있다"고 밝혔다.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내년 1월 5일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세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겠다. 봉 감독이 외국어영화상, 각본상 외에도 감독상 후보로 < 1917 >의 샘 멘데스 감독, <조커>의 토드 필립스 감독,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등 영화 팬들을 설레게 할 거장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


<기생충>이 지난해 <로마>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제76회 시상식에서 스페인어로 제작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외국어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후보에 비해(<스타 이즈 본>의 브래들리 쿠퍼, <그린 북>의 피터 패럴리, <블랙클랜스맨>의 스파이크 리, <바이스>의 아담 맥케이) 올해는 중량감이 남다르다.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으로 국내외에서 극찬을 받고 있는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와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등 경쟁자들이 쟁쟁하다.


특히나 '마틴 스코세이지의 귀환'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에 비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만큼, <기생충>의 외국어영화상 수상이 수월해 보인다랄까. 도리어 <아이리시맨>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외에 <결혼 이야기>(노아 바움백), <두 교황>(안토니 맥카튼)과 맞붙는 각본상 부문이 세 부문 중 가장 오리무중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지난해 스페인어 영화인 <로마> 역시 각본상 후보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으로 내년 2월 9일 LA 코닥극장에서 열리는 '로컬' 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지명 가능성. <기생충>의 골든 글로브 작품상 후보 제외를 두고 미 '할리우드 리포트'는 영어 대사가 50%를 넘어야 하는 내부 규정 때문이라 풀이했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런 규정이 없다. 지난해 <로마> 역시 작품상 후보 8개 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개별 수상은 둘째 치더라도, 후보 지명에 있어 아카데미가 골든 글로브를 배신하는 예는 드물다는 점 역시 <기생충>의 아카데미 입성 가능성을 밝게 한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의 골든 글러브 감독상 수상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2019년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2018년 <셰이프 오브 워터>의 기예르모 델 토로, 2017년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 2016년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등 지난 4년 간 골든 글로브 수상 감독이 아카데미까지 석권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제껏 발표된 3대 비평가 시상식의 시상 결과가 <기생충>의 오스카 입성 가능성을 높이는 중이다.

골든 글로브에 이어 다음은 '로컬' 오스카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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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최우식 배우와 함께 IMDB와 인터뷰 중인 봉준호 감독. ⓒ IMDB 유튜브 공식 채널

"<기생충>은 뉴욕 비평가협회상(외국어 영화상), 전미 비평가위원회상(외국어 영화상), LA 비평가협회상(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송강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세 비평가협회상은 시카고 비평가협회상과 더불어 북미 4대 비평가 협회상으로 꼽힌다. 이에 더해 토론토 비평가협회상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기생충>은 뉴욕타임스 수석평론가들이 꼽은 '올해 최고의 영화' 3위에 오르기도 했다."

CJ ENM이 밝힌 <기생충>의 수상 결과들이다. 역시 '로컬'은 '로컬'이다.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의 향배는 전통적으로 3대 비평가협회상을 통해 점쳐지기 마련이다. 뉴욕 비평가 협회상과 전미 비평가위원회상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것은 칸 국제영화제의 수상작의 후광이라 평가해 보자.


눈여겨 볼 것은 할리우드가 위치한 LA 비평가협회상 결과다.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 부문이 아닌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수상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LA 비평가 협회상은 지난해에도 비영어권 작품인 <로마>에 작품상을 안긴 바 있다. 여러모로, <기생충>의 아카데미 입성 전망을 밝게 해 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기생충>은 시드니 영화제 최고상, 할리우드 필름어워즈에서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상, 애틀란타 영화 비평가협회 시상식에서는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 영화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참고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칸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기생충>은 지금껏 총 52개 영화제에 초청됐고, 북미를 포함 전세계 37개국에서 개봉했다. CJ ENM에 따르면, 이중 프랑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호주, 독일, 이탈리아 등 19개국에서 역대 현지 한국영화 개봉작 중 흥행 1위를 달성했다. 그리고, 칸으로 시작된 <기생충> 전 세계적인 열광이 이제 '로컬' 시상식인 오스카 후보작 선정과 수상 결과로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영화 100주년의 선물, 그리고 봉 감독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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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특히나 아시아계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오스카 감독상을 2회 수상(제78회 <브로크백 마운틴>, 제85회 <라이프 오브 파이>)한 이안 감독과 견줘 봐도, 또 스페인어 영화인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수상 이력과 비교해도 그러하다. 이안 감독은 일찍이 할리우드에 안착, 영어 영화로 감독상을 수상한 케이스다. 넷플릭스 영화 <로마>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할리우드에 진출한 알폰소 쿠아론이 고향인 멕시코에서 촬영한 영화다.


이는 <설국열차>로 첫 영어 영화를 연출, 미라맥스의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가위질'을 감수하며 북미에 제한적으로 개봉했고, 넷플릭스 영화 <옥자>로 칸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봉 감독의 행보와는 뚜렷이 비교된다.


특히, 오롯이 한국어 영화인 <기생충>에 대한 이례적인 북미에서의 환호는 유독 자막을 읽기 싫어하기로 유명한 북미 관객들에게, 특히나 예술영화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 '봉준호 월드'의 영화적인 보편성과 독창성을 확실히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송강호씨와 저는 4, 5년 전부터 아카데미 위원회 회원으로 투표를 해왔어요, 다른 작품들에."

지난 10월, 미 유력 영화사이트 'IMDB'와 인터뷰한 봉준호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오스카 후보로 오를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위와 같이 답하며 송강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이어진 대화도 역시 봉 감독의 유머 감각을 가늠케 하는 장면이었다.

"음... 올(ALL)! 패러사이트(<기생충>)!!!" (송강호)

"(웃음) 본인 영화에 투표하세요. 좋은 선택입니다." (진행자)

"제 영화에 투표하는 게 불법은 아니죠? (봉준호 감독)

"당연히 아니죠. 그렇게 하세요. 모두들 다 그렇게 합니다." (진행자)

아카데미 회원으로서 본인 영화에 투표하는 것이 "불법 아니냐"고 묻는 엉뚱함이라니. 물론 같은 질문에 봉 감독이 농담으로만 대응한 건 아니었다. 같은 달 아카데미 위원회 측과의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과 관련해 미국을 방문한 것이, 또 토론토 영화제 수상이 봉 감독 개인과 한국영화계에 어떤 의미냐"고 묻는 질문에 또 이렇게 답했다.

"우연이었는데, 칸 영화제 측이나 심사위원들은 몰랐지만 우연히도 올해가 한국영화 역사 100주년 이었다. 1919년에 한국이란 영화에서 영화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거다. 여러분 모두 구로사와 아키라나 미조구치 겐지 같은 아시아의 거장들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사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한국에도 지난 100년 간 많은 거장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기생충> 역시 한국 고전영화의 하녀에서 영감을 받았다(중략). 여러분들께도 한국 고전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본인 영화의 아카데미 진출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한국영화 100주년과 <기생충>의 영감을 받았다 고백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 등 한국 고전영화를 소개한 봉준호 감독.


그의 북미에서의 극찬과 비영어권 아트하우스 영화로서의 남다른 흥행, 그리고 골든 글로브 후보 지명과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 가능성 모두 봉 감독 개인의 영예이자 한국영화 100주년의 선물 같은 소식이라 할 수 있다. 또 아시아권 영화를 통틀어서도 전례없는 행보인 것도 틀림 없다(굳이 하나 꼽자면 2000년대 초반 북미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안 감독의 중국어 영화 <와호장룡> 정도랄까).


그렇다고 아카데미 후보 지명과 이후 수상 여부를 두고 (북미 개봉 전부터 <기생충>의 행보를 라이브로 중계하다시피 한 몇몇 연예 매체들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어 보인다. <기생충>의 성과가 한국영화 전체의 성과도 아니거니와, 골든 글러브나 아카데미 수상(과 후보 선정)이 올림픽과 같이 '세계 재패' 식으로 귀결되는 것 역시 곤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봉 감독이 이미 정답을 내놨는지 모르겠다. <기생충>의 북미에서의 성과는 봉준호라는 아티스트(와 <기생충>의 배우, 제작진) 개인의 성과 이외에 '한국영화 100주년'의 선물 같은 '플러스 원'이라는 사실 말이다. 2019년 한 해 한국영화가 <기생충> 속 양극화의 악화일로로 치달았던 현실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하성태 기자(wood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