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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장도연의 값진 수상,
2020년에도 종횡무진하길

by오마이뉴스

인상 깊었던 그의 13년...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며


나는 장도연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이 무미건조한 문장은 참 많은 맥락을 담고 있다. <개그콘서트>(아래 <개콘>)의 전성기 시절을 이끌었던 여성 코미디언들의 행보를 늘 존경해오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분장실의 강선생님', '패션 No.5' 등 개콘의 간판 프로그램들의 중심에는 강유미, 안영미, 박나래 등 여성 코미디언들이 있었다.


이후 <개콘>이 점점 그 영향력을 잃어가는 시점에 적지 않은 개콘 출신 코미디언들이 tvN <코미디빅리그>(이하 <코빅>)나 예능 토크쇼의 문을 두드렸고, 몇 년 간의 고군분투 끝에 안착했다. 장도연 역시 그런 경우인데, <코빅>이나 <밥블레스유>, <썰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신을 드러냄과 동시에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예능인, 장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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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장도연. ⓒ 김민준

장도연은 데뷔 초기 <개콘>의 간판 프로그램 '키컸으면'에서 '키 큰 여자'로 출연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특성 덕분에 대중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지만, 사실 '키가 큰 여자'가 웃음 코드가 된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이후 큰 인상을 남겼던 '패션 No.5' 역시 우스꽝스러운 분장이 주효했다.


사실 분장 개그나 슬랩스틱이 장도연 본인에게 잘 맞아 떨어지니까 그런 이미지의 개그를 지속한 면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여성 코미디언들이 <개콘>에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개콘>을 벗어난 이후 장도연의 행보는 꽤 의미 있어 보였다. <코빅>에서는 남자 코미디언들과 합을 맞추며 과도한 분장이나 슬랩스틱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양세찬과 함께했던 '여자 사람 친구'에서 장도연은 성전환수술을 한 '장도팔' 역을 맡았는데, 이에 대해선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니냐란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Love is 뭔들'이나 '이별여행사' 등의 코너를 맡으면서는 <코빅> 초반보다는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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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의 장도연. ⓒ SBS

2018년 초 그는 <인생술집>의 새 MC로 발탁되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게스트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사려 깊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생각이 다른 지점을 포착해서 정리를 해주거나, 중재를 하는 등의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줬다. 나름 베테랑 예능인인 김희철이나 신동엽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장도연의 성공이 특히 빛나는 까닭은 '누군가를 깎아 내리거나 자극적이고 과도한 콘셉트를 설정해야만 예능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명제가 틀렸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SBS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도 그는 적절한 보조 진행을 통해 게스트들을 받쳐주며 이동욱과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장도연의 수상은 여성 코미디언이 이룩한 작지만 큰 성과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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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을 수상한 코미디언 장도연. ⓒ MBC

정글 같은 방송계에서 오롯이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는 건, 그 전에는 대중들이 원하는, 혹은 자기의 의도와 무관할 수도 있는 이미지를 수행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여성 연예인일수록 사회가 만들어낸 왜곡된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때가 적지 않다. 우리 모두는 안영미, 박나래, 강유미, 장도연 같은 베테랑 코미디언들이 <개콘>의 전성기 때 분장과 과장된 슬랩스틱, '여성스럽지 않음'으로 웃겨야 했음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이번 장도연과 박나래, 안영미의 수상은 여성 예능인이 이룩한 작지만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장도연은 자신의 말마따나 지상파 3사 연예대상에서 상을 받은 게 처음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 가치가 빛난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저기 앉아서 가만히 여기 위를 쳐다봤는데 계단이 다섯 개더라. 다섯 계단 올라오는 데 1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연예계의 남성 중심성에 균열을 내는 그들은 후배 여성 연예인들의 자랑, 혹은 귀감이 될 만하다.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몇 년 만의 최초 같은 타이틀은 이제 사라지길.


김민준 기자(coolboy9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