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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부모가 내 재능을 알아봤다면 프랑스 최고 화가가 됐을 것이다"

by오마이뉴스

모순과 반전의 화가, 헨리 루소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와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림에 대한 이해를 넘어 예술가, 그리고 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과 사물, 세상에 대한 그들의 철학과 고민을 엿보고 인간으로서의 좌절, 고통, 자부심, 고집을 조명해보면서 그림이 전달하는 의미와 그 너머 화가의 존재를 인식해보고자 한다.

세관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다 41세의 나이에 화단에 등장한 헨리 루소(1844-1910)는 어찌 보면 시대와 장소를 잘 타고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가난해서 미술을 전혀 배우지 못한 그는 기술적인 면에서 아마추어를 벗어날 수 없었다. 원근법도 단축법도 시점도 모든 것이 미숙하여 흔히 말하는 현실의 완벽한 재현이나 유사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의 그림을 나타내는 두 개의 단어는 "어리숙한(naive)"과 "원시적인(primitive)"이었다.


그의 그림이 1885년 낙선자전에 처음 전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미술적인 테크닉을 전혀 구사하지 않은,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의 그림은 공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2차원의 평면에, 특정 부분을 지나칠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하여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배경과, 마치 오려 붙인 듯 붕 떠 있는 느낌이 드는 인물들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전통적인 그림의 공식을 따르지 않은 그의 그림은 아카데미 방식을 벗어나 화가의 창의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새로운 흐름에 걸맞은 그림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세관원으로 주말에만 그림을 그리던 헨리 루소는 급기야 1893년 전업 작가가 되었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두주자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그의 그림은 특히 전통과 아카데미라는 틀에 박힌 미술을 지양하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그림을 재현하는 방식에 반기를 드는 예술가들에게 큰 반향과 찬사를 불러 일으켰다. 루소의 그림이 소박한 것은 그의 전문적 기술의 부족에 따른 것이라는 관점이 여전히 지배적이던 1905년 즈음 피카소는 "루소에게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다. 그는 독특하고 확고한 방식을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고갱은 헨리 루소의 그림 'I-Myself, Portrait-Landscape'(1890)을 보고 "이 그림에는 진실이 있다…미래가 있다…그림의 정수가 있다!"고 찬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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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yself, Portrait-Landscape(1890). 헨리 루소 Source: Wikimedia Commons ⓒ 프라하국립박물관

하지만 정작 본인은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한이 남아 있었던 듯하다. 그는 1895년 자서전적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부모님이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예술적 성향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많은 좌절 후, 홀로, 자연 외에는 어떠한 스승도 없이, 때때로 제롬과 클레멩의 도움으로, 1885년에야 예술가로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복잡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부모님이 그림에 대한 나의 재능을 알아주었다면… 오늘의 나는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나고 부유한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헨리 루소의 그림이 표방하는 자유와 낯섦은 기존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결코 한 번에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형태와 색의 제한을 간단히 뛰어넘는 그의 표현 방식은 어떠한 걸림돌이나 거리낌도 없이 오로지 본능과 직관에 의해 탄생한 것이었다. 이는 아방가르드를 표방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낸 결과물과 비교할 때 더욱 더 진실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물론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요소였다.


특히, 그의 그림은 자연을 표현한 것에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었다. 빼곡히 들어선 나무를 배경으로 파랗게 드러난 하늘과 그 위에 머무는 구름들, 맑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정지된 듯 멈춰선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은 헨리 루소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꾸준히 그려온 것들이었다.


1886년 작 <The Walk in the Forest>는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나무들이 춤추듯 가지와 잎을 드리우고 있는 숲 속 길에서 한 여인이 산책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수종까지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특징을 잘 드러낸 전경의 나무들과 노랑, 빨강, 초록의 색으로만 무리지어 표현된 배경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안에서 길을 걷다 잠시 멈춰선 듯한 여인은 자연에 들러싸여 혼자인 것이 문득 오싹한 듯 겁에 질려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한 현실을 떠나 철저히 혼자를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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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k in the Forest(1886). 헨리 루소 Source: Wikimedia Commons ⓒ 취리히미술관

이렇듯 자연을 너무 상세히 그려서 도리어 낯설게 느껴지게 만든 효과는 그림의 배경을 주변의 숲 속에서 저 멀리 정글로 옮기는 순간 더욱 극대화된다. 1896년 'Surprised!'를 시작으로 1904-10년 사이에 연이어 그린 그의 정글 그림들은 자신은 단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미지의 공간을 순전히 나무와 동물, 그리고 사람이라는 익숙한 대상들의 조합만으로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그의 그림 속 공간은 역시나 빽빽이 들어선 갖가지 종류의 나무들에 둘러싸인 은밀하고 고요한 공간이다. 나무에 가려져 숨기에 좋은 그곳은 내밀하고 평온한 공간이지만 반대로 불시에 공격하기에도 좋은, 언제라도 약육강식의 현장으로 돌변할 수 있는 살벌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순된 공간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고 마치 공기도 소음도 사라진 듯,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위험하지만 감미롭고, 낯설지만 호기심을 당기는 묘하게 이끌리는 매력이 있다.


자신의 그림에 제목 외에도 부제 형식으로 설명의 글을 달기도 했던 루소는 <The Hungry Lion Throws Itself on the Antelope>(1905)에서 그림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상세한 부제를 덧붙였다. "배고픈 사자가 영양을 덮쳐 물어뜯는다. 검은 표범은 이 순간 긴장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질 순서를 기다린다. 맹금류들도 살점을 이미 뜯어 입에 물고 있고 불쌍한 영양의 눈에선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해질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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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ngry Lion Throws Itself on the Antelope,1905. 헨리 루소 Source: Wikimedia Commons ⓒ 바이엘러미술관

그에게 자연은 그림의 대상일 뿐 아니라 그림을 가르쳐주는 스승이자 미지와 신비의 세계였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통해 현실을 넘어선 미지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순수와 자유, 본능과 야만, 꿈과 상상이 공존하는 정글은 헨리 루소의 소박하고 진실된 그림 스타일, 그리고 자유롭고 길들여지지 않은 자신의 성향과 특히나 잘 들어맞는 공간이었다.


그의 그림은 자신이 본 것을 바탕으로 했지만 그 대상들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으로 향하지 않았다. 자신이 본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대로 그렸고 그림에 표현된 모든 대상에 동일하게 애정을 담아 모두를 주인공으로 다루었다. 디테일을 추구하는 리얼리즘이 오히려 비현실성을 자아냈고 이를 통해 현실의 공간 대신 초현실의 공간을 탄생시켰다. 그림에 등장하는 대상들의 팔과 다리, 몸을 뒤틀거나 왜곡하기도 하고 크기도 자유자재로 늘이거나 줄이기도 했다.


알쏭달쏭한 그의 그림은 어쩌면 말로는 할 수 없는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직관으로 표현한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것은 아닐까. 얼핏 간단하고 쉬운 그림 같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궁금증을 자아내는, 심오한 듯 오묘한 반전의 매력을 선사한다. 훌륭한 미술 교육을 받고 모두가 감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헨리 루소는 자신의 바람처럼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나고 부유한 화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그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방향을 제시한 독보적인 화가가 되었다. 그의 그림처럼 화가로서의 그의 인생 또한 모순과 반전의 매력으로 가득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준희 기자(ljune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