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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지금이 훨씬 낫다'는 조선시대 공무원 시험과정은 정말 이정도입니다

by피클코

국가 운영의 핵심이자 몸통, 6급 공무원

조선시대로 치면 정 7품

3년 33명 중 단 2명만이 정 7품으로 시작

1년 2번의 고과에서 중 3번이면 파직까지

안정적인 직장과 노후를 위해 공무원을 희망하는 이들이 이전보다 많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자리가 한정된 만큼 공무원 시험은 사실상 시험을 위한 시험으로 전학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공무원 시험과 과거 시험에 대한 비교 글이 올라와 화제입니다. 특히 몸통이라 할 수 있는 6급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6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품계와 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3개로 나뉜 시험, 이중 6급은

대한민국 공무원 6급은 과거 주사로 불렸습니다. 현재는 6급 이하의 공무원을 주무관으로 통칭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6급 이상부터 직급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인데요, 그 이유는 6급까지 관리직이 아닌 실무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근속승진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종 직급으로 평가되기도 하죠. 다만 지방직의 경우 중간 관리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재의 6급 공무원은 조선시대로 치면 정 7품의 직위입니다. 조선시대의 관직은 18품 30계로 되어있습니다. 때문에 중간 이상의 직급 같지만, 조선의 품계는 정 1품, 종 1품, 정 2품, 종 2품 순으로 구성되어 있어 18품계 중 아래에서 6번째 직급입니다.

교보문고에서 대조한 현재의 공무원과 조선시대 품계에 따르면 드라마 단골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은 모두 정 1품으로 우리나라 국무총리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장관은 정 2품으로 '판서'로 불렸습니다. 홍준표가 장관직을 맡았던 유시민을 '유 판서'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 종 2품까지를 당상관으로 부르며 정 3품부터 종 6품까지를 참상관으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정 7품부터 참하관으로 불리는데요, 이 참하관의 최고봉이 정 7품, 현재의 6급 공무원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유명한 과거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과거시험은 문과, 무과, 잡과로 나누어져 있는데, 행정부 공무원은 이 문과에 해당합니다.

시험 자격부터 어려운 문과

김홍도가 그렸다고 추정하는 소과 시험 응시 그림

조선의 문과는 고려에서 문관을 선발하는 제술과, 명경과를 통합한 시험입니다. 이 문과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시험을 칠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생원시와 진사시를 운영하였으며 이 두 시험을 '소과'라 부르고 문과를 '대과'라 불렀습니다. 진사시는 시, 부, 책등의 글짓기 능력을 평가했고, 생원시는 사서오경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보았습니다. 각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생원, 진사로 불리며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죠.

과거시험은 3년에 1번 치르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비정기적으로 시험을 볼 때도 있었습니다. 정기 시험을 식년시, 비정기적 시험을 별시라고 불렀죠. 기준인 식년시 중 대과 자격자인 진사와 생원은 평균 6만 3000명에 달하는 응시자 중 초시와 복시 두 번의 시험을 거쳐 선정된 상위 100명, 총 200명의 인재였습니다.

버릇처럼 보는 시험, 평생 낙방까지

문과의 시험 과목은 학술과 문장을 평가할 과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강경과 의의가 있죠. 강경은 구두시험으로 사서삼경에서 각각 한 장을 뽑아 암송하고 해석하게 했습니다. 사서삼경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을 말합니다. 때문에 응시자들은 이 책을 기본적으로 암기하고 그 뜻까지 다 해석할 수 있었어야 합니다.

내용과 관계없는 사진

의의는 논술시험이었습니다. 사서의와 오경의로 나눈 이들 시험 중 사서의는 사서에 대한 이해를 평가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사서의 내용 중 서로 관련 있는 구절을 함께 제시하고 의문점을 논파하는 것을 중점으로 보았습니다. 오경의는 한 개 책의 몇 개 구절의 뜻을 묻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몇 개 구절의 뜻은 앞뒤 문장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결국 책 전체 암기와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내용과 관계없는 사진

한 예로 이이가 응시했던 명종 12년의 사서의 문제는 사서에서 '성실함(誠)'을 논한 부분을 제시하고 '성(誠)'의 깊고 얕음의 차이가 있는지 논할 것을 1차적으로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논어'에서는 왜 '성(誠)'을 언급하지 않는지, '성(誠)'과 '충신(忠信)'의 차이가 무엇인지, 공부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를 제기하고 논설하도록 하였습니다.

답안은 정해진 형식으로 작성해야 했습니다. 이를 어기면 '위격'으로 불합격 처리되었죠. 하지만 일단 답안을 제출하는 것부터 능력이었습니다. 실제 응시자 중 19세기 전반까지 응시자의 50% 이상이 답안을 제출한 사례는 드뭅니다. 정조 23년에는 응시자의 22%만이 답안을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답안지를 제출하더라도 대과의 합격 정원은 33명이었습니다. 34등부터는 불합격인 셈이죠.

단순 근무로 승진할 수 있는 7품과 6급

이렇게 뽑힌 합격자는 우열을 가리기 위해 '전시'라는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높은 순으로 장원 1명, 갑과 2명, 을과 7명, 병과 23명이 선별되며 장원급제는 종 6품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합니다. 갑과 2명만이 공무원 6급에 해당하는 정 7품으로 시작하죠. 을과는 정 8품, 병과는 정 9품이었습니다.

공무원처럼 조선 시대 6품 아래의 하급 관리는 1년 3개월 이상 근무 일 수를 채우면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 관리는 1년 중 2번 매기는 고과 성적에서 2번 중(中)을 받으면 무급, 3번이면 파직되었습니다. 즉, 7품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뒤 고과 성적에서 지속적으로 상(上)을 받아야 했습니다.

2019년 9급 국가직 공무원 응시인원은 15만 3331명입니다. 이중 필기합격인원은 고작 6380명(4.27%)에 불과합니다. 한편 조선시대 문과 평균 합격률은 0.05%이었는데요, 평생을 문과 시험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한 채 평생을 허비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글 박찬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