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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한때 세계 최고였던 항공사가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 결정적 이유

by피클코

영화에도 출연한 미국 대표 항공사

전쟁 물품 조달로 급성장

연이은 테러리스트의 공격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항공사의 전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보신 적 있나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비행기 조종사인 척하기 위해 비행기 장난감에 있는 스티커를 사용해서 가짜 수표를 만들죠. 이때 디카프리오가 사용한 항공사의 스티커가 바로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미국의 ‘팬암’ 항공사입니다.

팬암 항공사는 초기 항공 산업의 선구자이자 미국을 대표하던 항공사입니다. 20세기 항공 산업의 대표 아이콘으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사라진 항공사 중 하나이죠. 오늘은 한때 전 세계를 주름잡던 대형 항공사 팬암이 한순간에 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미국 최초의 민간 항공사

팬암의 창업자이자 CEO였던 후안 트리페(Juan Terry Trippe, 1899 ~ 1981)는 원래 금융업에 종사하던 사업가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산업인 항공 운수업에도 관심이 많았죠. 하지만 1920년대에 민간인이 항공기 관련 사업을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안은 항공업에 도전했습니다. 다행히 초기의 팬암은 미국 정부에서도 많은 지원을 받으며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럽 항공 업체들이 잇따라 항공 노선을 개척하는 추세라 정부가 이를 견제할 생각으로 항공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자한 것이죠. 1930년대부터 항공 여객 업무를 본격화 한 팬암은 국제노선을 위주로 운영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갑니다.

군사 물자 수송을 통한 팬암의 급성장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팬암은 급성장을 할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팬암은 자사 항공기를 이용해 유럽 및 아시아의 주요 전략 거점에 군사 관련 물자를 나르고 외교관의 수송을 돕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죠. 동시에 태평양 및 대서양 횡단 노선을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미군에 공유하며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활약으로 미국 정부와 팬암의 관계는 한층 돈독해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팬암은 종전 후 다양한 국제 항공로에 관련된 독점권을 확실하게 거머쥘 수 있게 되었죠. 1947년에는 뉴욕(미국) - 런던(영국) - 이스탄불(터키) - 콜카타(인도) – 방콕(태국) – 상하이(중국) – 도쿄(일본) – 웨이크섬(미국령) - 호놀룰루(미국령 하와이) – 샌프란시스코(미국) – 뉴욕(미국)으로 이어지는 세계 일주 노선을 세계 최초로 개설하게 됩니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팬암의 제트 여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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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프로펠러 여객기보다 훨씬 빠르고 쾌적하게 대규모 수송이 가능한 제트 여객기의 보급도 팬암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합니다. 팬암은 1958년, 미국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보잉 707을 뉴욕 – 파리 노선에 투입하면서 처음으로 제트 여객기를 이용한 대서양 횡단 노선을 개척했습니다. 이후에 팬암은 보잉 707을 대량 주문해 다양한 국제노선에서 운용하며 높은 인기를 끌었죠.

보잉 707의 큰 이익을 얻은 팬암은 더 큰 제트 여객기를 원했습니다. 팬암의 CEO는 보잉사와 접촉하여 군사용으로 개발된 초대형 군용 수송기를 제트 여객기로 전환해 보는 것을 제안하죠. 그 결과물이 바로 1969년에 첫 비행에 성공한 보잉 747 점보 여객기입니다. 당시 세계 최대 여객기였던 보잉 747은 장거리 운송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팬암의 다양한 국제노선에 투입되었습니다.

테러리스트의 타깃이 된 항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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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세기 팬암은 미국의 대표 항공사라고 불릴 만큼 크게 성장하게 되죠. 하지만 미국을 상징하는 항공사라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들의 타깃이 되는 일이 잦아집니다. 1986년 9월 5일, 파키스탄 국제공항에서 팬암 73편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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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88년 12월 21일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팬암 103편이 리비아 테러리스트들이 설치한 폭탄 때문에 공중 폭파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서독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공항을 이륙해 메트로 공항에 착륙 예정이었던 팬암 103편 항공이 스코틀랜드 남부 로커비 마을 상공에서 폭파한 것이죠.

급속한 재정 상태 악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과 더불어, 대형 항공기 운영으로 인한 유지비 또한 팬암을 위기 상황으로 내몰았습니다. 흑자의 규모가 점점 줄어든 상황에서 4차 중동 전쟁으로 인해 두바이유는 4배가량 폭등했고 이란 혁명으로 국제 유가가 40달러까지 상승하게 된 것이죠. 이 사건으로 항공업계 전체가 휘청거렸지만, 대형 항공기를 운영하는 팬암은 7천6백만 불이라는 적자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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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팬암은 이러한 시기에 되레 투자에 나서 극복을 시도했습니다. 취약했던 국내선을 보안하고자 중견 항공사를 인수했지만 서로 다른 경영 방식으로 실패로 돌아가게 되죠. 벌어들인 수익보다 유지비와 인건비가 더 많이 나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1981년 뉴욕에서 가장 큰 빌딩을 자랑했던 팬암의 본사를 매각하게 됩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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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테러와 재정 위기 이후 결국 팬암은 1991년 12월 파산을 결정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팬 암이 사라진 지는 오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1980년대의 ‘위대한 미국’을 그리워하며, 당시의 상징 중 하나였던 팬암을 추억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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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팬암 항공기의 객실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가 미국 ABC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하였죠. 무한 경쟁과 효율적인 운영을 중시하는 현대 시장에서 앞으로 팬암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항공사가 다시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글 이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