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의 그림자'가 떠올랐던 그 영화

[컬처]by SBS

한국의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캘리포니아에 있는 회사 동료들과 옆 사무실 직원들이 내게 가족의 안부를 묻는 일이 잦아졌다. 코로나19의 수퍼 전파 집단이 된 신천지에 대해 묻는 미국 친구들도 종종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관련 기사에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이 '샤먼'이라고 표현되었던 탓에 한국의 정치 · 사회적 이슈마다 낯선 종교가 연관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가본 적 없는 이들이 뉴스 기사로만 접하는 '한국'은 특이한 종교로 가득한 나라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천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뉴스나 인터넷으로 접한 바를 간략하게 설명해주면 외국 친구들의 표정은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그리고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나는 그저 "음, 글쎄…"라며 얼버무리곤 한다.


지금은 믿는 종교가 없지만 사실 나는 종교에 관심이 많다. 교회를 오래 다니긴 했으나 지금은 '무교'에 정착했고 그 과정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어 종교 자체는 여전히 나에게 흥미로운 영역이다. 이런 관심 때문에 사이비 교단이나 광신도적 믿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편이다.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도 좋아한다. 종교는 결국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과 밀접하게 관련 있고, 종교를 잘 다룬 영화는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는 엑소시스트 류의 공포물이 많다. 이때 종교는 특정한 영적 세계의 작동 방식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악마는 십자가 형상을 두려워한다'와 같이 종교적 태도와 철학보다는 그 형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때로는 드라마 <구해줘>(2017)처럼 사이비 교단의 폭력을 파헤치는 스릴러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물론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처럼 성직자와 종교 윤리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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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드라마 '구해줘' / (오) 영화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포스터

종교적 태도와 관련해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영화 중 하나는 폴 토마스 앤더스의 <마스터(2012)였다. (이병헌 주연, 조의석 감독의 <마스터>(2016)와는 다른 작품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사이비 종파들이 만연했던 195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탐 크루즈가 열혈 신도로 유명한 '사이언톨로지'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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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톨로지'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 '마스터'(2012)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레디 퀼(호아킨 피닉스)은 전역 이후에도 타고난 기질과 전쟁 트라우마 탓에 사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부랑자처럼 배회하다 우연히 토드 랭케스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배에 숨어들게 된다. 토드는 신흥 종교의 창시자로 추종자들에게 '마스터'로 불린다. 프레디가 제조한 술을 토드가 극찬하며 둘은 묘한 교감을 느끼고 갈 곳 없던 프레디는 자연스럽게 종교 단체의 일원이 된다.


토드의 종교는 심리학과 과학이 뒤섞인 새로운 이론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고, 추종자도 많았다. 표면적으로 토드는 인간의 존재를 과학철학적으로 설명하는, 합리적이고 너그러운 지도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프레디나 신도를 교육하는 방식은 모호한 교리와 강압에 의한 권위에 기댄 것들이었다. 토드는 누군가 교리에 의문을 제기하면 분노에 찬 카리스마로 묵살했다. 그의 종교에서 마스터에 대한 절대 복종은 교리와 신도의 인격보다 늘 우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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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에 대한 절대 복종은 교리와 신도의 인격보다 늘 우위에 있었다... (사진은 영화 '마스터'의 한 장면)

프레디의 폭력적인 기질이 토드의 억압과 훈련을 통해 통제되는 순간, 그것은 마치 '종교의 순기능'처럼 보인다. 신천지의 압박 전술과 같은 전도 방식이 외롭고 불안한 영혼들에게 그와 같은 위안을 주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프레디에게, 다른 누군가에게 이 세상은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는 이 없는 무정한 곳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다정함이 누군가를 사회로 돌려보낼 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종교 내부로 격리하기 위한 족쇄가 된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감금에 다름 아닐 것이다.


<마스터>의 결말에서 프레디는 마침내 오랫동안 그의 삶을 영적, 육체적으로 지배했던 토드로부터 벗어난다. 토드가 영적 실험을 한다며 자신에게 퍼부었던 질문을, 술집에서 만난 여자에게 던지며 낄낄대는 프레디의 모습은 그가 영적으로 감금되었던 '마스터'의 세계에서 마침내 해방되었음을 보여준다.


종교는 인간의 지적 한계를 넘는, 영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고안된 사고 체계다. 그런데 그것이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야를 더 넓혀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경주마의 안대처럼 마스터가 가리키는 곳만 바라보게 한다면, 그 종교는 이미 본래 목적과 멀어졌다고 볼 수 있다.


종교의 내부에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 종교를 나와야만 보인다면, 그것은 군림하는'마스터'외에 누구를 위한 종교가 될 수 있을까?


김지미 영화평론가

2020.03.1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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