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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건축물은 그 시대 삶의 그릇이다

bySBS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으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살던 반지하 주택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영국 BBC에서 서울의 반지하 주택에 관한 내용을 기사화하기도 하는 등 외국에서도 한국의 독특한 주거형식에 주목했다.


국내에서도 반지하 주택에 대한 많은 분석이 있었는데 이들을 요약해 보면 남북한의 대치 상태에서 생겨난 방공호로 시작되었고 도시의 급격한 확장으로 인해 주거 용도로 변형되면서 생겨난 주거의 형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반지하 주택의 탄생 배경에는 지하층 높이의 2분의 1만 지표면 아래에 있으면 지하층으로 인정하는 건축법이 있었음을 꼼꼼하게 알려주고 있다. 상상하지 못한 탄생의 비밀이 있었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반지하 주택도 놀라운 탄생의 비밀이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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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에서 시작된 반지하의 역사. (사진은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반지하 주택이 어두운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탄생의 비밀을 숨기고 화려하게 등장하는 주거형태가 있으니 바로 옥탑방이다. 드라마에서 옥탑방을 다루는 태도는 반지하 주택과 사뭇 다르다. 영화 기생충에서 그리고 있는 반지하 주택은 암울하지만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옥탑방은 대체로 낭만적이다. 옥탑방 공간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옥탑방 왕세자’, ‘옥탑방 고양이’처럼 옥탑방에 거주하는 주인공들은 미래에 대해 희망적인 인물들로 묘사됐다. 창밖에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몇 포기의 화분들과 평상으로 멋을 낸 옥탑이 낭만적이게 보인다.


하지만 이 낭만적인 옥탑방의 탄생 배경은 사실 낭만과 거리가 멀다. 도로의 공공성확보와 건축물의 조망과 채광을 위해 도로를 기준으로 가상의 사선범위 내에서 건축물을 짓게 하는 건축물 높이제한 규정이 있다. 이를 사선 제한이라고 하는데 이 규정을 지키면서 가능한 많은 공간을 확보하려면 가장 높은 층의 면적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최상층의 작은 옥탑방은 주거공간으로 만족한 수준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싼 임대료 때문에 수요가 있다. 반 지하주택이나 옥탑방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생겨난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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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낭만의 상징 '발코니 계단' (사진은 영화 <귀여운 여인>의 한 장면.)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건축물의 형태가 한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례는 또 있다. 영화 '귀여운 여인' (Pretty Woman)에서 리처드 기어가 줄리아 로버츠에게 꽃을 건네던 발코니 계단은 뉴욕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뉴욕의 발코니 계단은 건축물 전면에 위치해 지배적인 형태미를 뽐내고 있으며 시간의 변화에 따라 입면에 드리는 그림자가 건물과 가로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쁜 화분이나 장식물로 치장되어 있는 발코니 계단들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뉴욕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발코니 계단의 탄생의 비밀 역시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발코니 계단의 정식 이름은 '화재용 비상계단'이다. 1911년 뉴욕대 인근의 한 봉제공장에서 불이 났다. 이 봉제공장은 9층 건물이었는데 8층 자재 창고에서 시작된 불이 9층으로 번지면서 9층에서 일하던 많은 수의 여직원들이 숨졌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공장 화재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고 이후에 뉴욕시는 화재 피난용 계단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이미 지어진 건물의 내부에 계단을 확보할 수 없는 대다수의 건물들은 창밖으로 철재사다리를 설치하게 된 것이 뉴욕 발코니 계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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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하면 떠오르는 '발코니 계단'. 그 시작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건축물에는 조성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건축물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삶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춥고 어두운 시기를 겪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달라지면 초라했던 그릇도 낭만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어둡기만 했던 반지하 공간들이 특색 있는 카페나 서점으로 바꾸고 있는 것을 보면 오드리 헵번이 '문 리버'(Moon River)를 부르던 영화 속 뉴욕 발코니 계단처럼 낭만적인 장소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김종대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