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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신여성'이 두려운 19세기말 작가, 男 파멸 이끄는 惡女를 그리다

by서울경제

세기말의 '팜므 파탈'


남녀평등·산아제한·참정권요구 등

유럽·美서 여성해방운동 시작되며

살로메·유딧·메두사·뱀파이어 등

위협적 女이미지 문화·미술에 등장

20세기 들어서며 퇴폐주의 벗어나

피카소 등 새로운 조형미 발견 시도

'팜므 파탈' 계보는 영화계로 넘어가

서울경제

귀스타브 모로의 1876년작 ‘출현’

남북전쟁이 일어났던 18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여주인공 스칼렛(비비안 리)이 허리 사이즈를 줄이려고 코르셋을 힘껏 조이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 스칼렛은 기어이 허리를 20인치로 만들고 옷을 입는다. 이 장면은 단순히 코르셋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남성의 시선에 맞춰야 했던 19세기 여성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세기 그림에서도 여성들은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보다는 주로 실내 공간이나 정원,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는 헌신적인 어머니나 가정적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여성 이미지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로, 이 무렵 남녀평등, 산아제한과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첫 번째 여성해방운동이 시작됐다. 이제 여성은 코르셋을 느슨하게 하고, 담배를 피우고 자전거를 탈 수 있었으며 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1918년, 마침내 영국은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도시가 점차 팽창하고 여성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직장이 증가하면서 여성은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공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독립적인 인격체를 추구하게 됐다. 이들은 경제적, 사회적 생활뿐 아니라 개인적인 남녀관계에서도 전통적인 결혼관을 벗어나 자아를 추구했다. 노르웨이의 작가 헨드릭 입센은 ‘인형의 집’(1879)에서 노라를 가정에서 탈출해 성 해방을 추구하는 여성의 모델로 묘사했다. 당시 노라와 같은 여성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New Woman’, 즉 ‘신여성’이다. 근대적 여성 담론과 함께 등장한 신여성은 동서를 막론하고 세계적 현상이었다. 신여성들은 사고뿐 아니라 외모나 행동에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 했다. 이들은 남들과 차별화된 의상과 행동으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테니스와 골프를 치고 스커트 아래로 스타킹 신은 다리를 내보였다. 길게 늘어진 가운이 유행하면서 코르셋 자체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신여성은 신체를 꽉 조이는 의상을 벗어던지고 남자와 같은 재킷을 입은 ‘깁슨 걸 스타일(Gibson Girl style)’로 대변됐다.


관습을 깨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새로운 여성들은 많은 남성들의 반발을 샀다. 남성들은 교육이 여성성을 파괴하고 신경쇠약증에 걸리게 한다면서, 원래 여성은 어리석고 수동적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달라지자 남성의 두려움을 반영하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치명적인 혹은 숙명적인 여인), 즉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성적 매력을 가진 여성이 남성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위협적인 이미지가 문학에서나 미술에서 널리 등장했다. 주로 신화나 성경, 전설 또는 역사에서 온 이들 이미지는 살로메, 유딧, 메두사, 뱀파이어, 또는 스핑크스로 나타났다. 남성을 유혹해 죽음으로 이끄는 이 팜므 파탈은 물질주의 만연에 대한 환멸과 전통문화의 쇠진함을 꿰뚫어보면서 정신적인 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19세기말의 데카당스와 동반돼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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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폰 슈투크의 1906년작 ‘살로메’

팜므 파탈의 대표적 이미지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살로메였다. 유대 왕 헤롯 앞에서 고혹적인 춤을 추고 그 대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는 살로메는 아름답고 성적 매력을 가지면서도 사악하고 파괴적일 수 있는 여성이었다.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출현’이라는 작품은 살로메가 춤을 끝내면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세례 요한의 머리가 갑자기 나타나는 드라마틱한 그림으로, 이국적인 동방의 궁전을 배경으로 시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까지도 자극한다. 1876년 파리에서 이 그림이 전시되자 약 50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으며 모로는 당대 최고의 화가로 추앙받았다.


후일 칸딘스키의 스승이었던 독일의 상징주의 화가 프란츠 폰 슈투크가 1906년에 그린 ‘살로메’는 구불구불한 곡선의 몸매를 자랑하면서 화면 밖을 도전적으로 바라본다. 어둠이 깔린 배경에는 검은 피부의 하녀가 세례 요한의 잘린 목을 접시에 담아 보여준다. 이렇듯 여성을 죽음, 죄악, 성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로 묘사한 그림들에서 남성 화가들은 여성을 적으로 보면서도 뿌리칠 수 없는 매혹과 환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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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의 1895년작 ‘뱀파이어’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는 여인 생애의 여러 단계 및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일찍이 어머니와 누나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뭉크에게 삶은 쉽지 않았다. 그가 여러 여성과 관계를 가지면서도 결코 결혼하지 않은 이유도 여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뭉크는 여성에게서 성녀와 악녀의 두 가지 면을 보았다. 그의 작품 ‘뱀파이어’에서는 긴 머리의 여성이 남성을 위에서 감싸고 있다. 당시 이렇게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는 유혹과 타락을 의미하고 남성을 지배하는 여성의 힘을 상징했다.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그의 친구이자 스웨덴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가 붙인 ‘사랑과 고통’이었다.


비엔나에서는 구스타브 클림트가 ‘유딧’을 그리고 있었다. 당시 인구 200만의 도시 비엔나는 화려하게 변모하고 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성(性)의 심리학을 연구하고 있었던 이 곳에서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 성과 애욕,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나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성과 새로운 여성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클림트의 ‘유딧’은 구약에 등장하는 유딧이 자신의 유대인 동족을 점령한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막사에 들어가 그를 유혹해서 침실로 끌어들인 후 그의 목을 베는 이야기다. 목이 베인 남자와 유딧의 얼굴은 클림트 특유한 황금빛 배경의 화려한 패턴 속에 사실적으로 묘사돼 파묻혀있다. 여성의 미가 난폭할 수도 있고 거세와 죽음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는 이러한 이미지는 클림트의 다른 작품에서도 거의 자기도취적이면서 감각적이고 세기말의 퇴폐적인 분위기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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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클림트의 1909년작 ‘유딧Ⅱ’

영국의 오브리 비어즐리는 당대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그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책 ‘살로메’에 삽화를 그렸다.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을 받은 비어즐리는 강철 펜을 사용해 곡선의 아름다운 선과 흑백의 대조, 그리고 꿈과 같이 에로틱하면서 유혹과 죄의식이 공존하는 얼굴을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으로 그렸다. 여인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표현된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은 1890년대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의 이러한 상황은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했고 강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켰지만, 남녀 관계가 재정립되는 과정의 하나였다. 20세기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미술계는 조금씩 세기말의 퇴폐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였던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는 세기말적 복잡한 환상에서 벗어나 색채와 형태를 실험하고 원시미술에서 낡은 유럽의 미술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조형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추상미술이 대세를 이루고 이미지 자체가 화면에서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신비스러우면서도 냉담한 팜프 파탈의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20세기에 팜프 파탈의 계보는 새로운 대중문화로 인기를 끌게 된 영화로 넘어갔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이미지의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그레타 가르보, 라나 터너가 그 대표적인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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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리 비어즐리의 1892년작 ‘살로메’

김영나 미술사학자·前 국립중앙박물관장

조상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