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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안젤라의 푸드트립

순대국밥… 노가리…
아재 맛 찾아 ‘노포투어’

by세계일보

순대 성지 일번지 / 씹는 맛 끝내줘요 / 연탄불 익힌 노가리 / 숙성 맥주 살아있네 / 고소한 녹두부침개 / 바삭하고 포슬포슬


“드르르륵, 철컹철컹.” 이 골목에 가면 수많은 인쇄소와 철물점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오토바이 위에 커다란 짐을 싣고 달리는 사람들부터 펌프, 밸브, 콤프레셔 등등 각종 부품들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곳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젊은 사람들이 ‘노포투어’, 즉 오래된 맛집 투어를 하기 위해 을지로를 찾으면서 소박했던 골뱅이 골목, 노가리 골목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열여섯 번째 목적지는 을지로다.

#씹을수록 고소한 대창순대

순대국밥… 노가리… 아재 맛 찾아 ‘

산수갑산은 1989년에 오픈한 순대 전문점으로 약 30년 가까이 순대국과 모둠순대, 부속고기로 순대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순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순대 성지 순례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돼지 삶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치 가정집을 개조한 것처럼 가게 안에 나무 계단이 있는 복층 구조 구석구석에 구수한 향이 베어있다. 오후 1시반 경에 찾아갔는데, 이미 테이블마다 소주병이 올라와 있고, 사람들의 볼은 이미 빨개져있었다.

순대국밥… 노가리… 아재 맛 찾아 ‘

“순대국밥이랑 순대정식 하나씩 주세요!” 순대정식은 순대국과 모둠순대, 부속고기가 같이 나오는 구성으로 순대 한두 개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곳의 대표메뉴인 대창순대와 돼지머리 편육, 오소리 감투, 암퇘지의 새끼보, 간이 함께 나오는데 모두 쫄깃쫄깃한 식감 때문에 몇번 씹다보면 금새 배가 불러진다. 게다가 대창순대는 소창보다 두꺼워 씹으면 씹을수록 은근한 육즙이 베어 나와 한번 먹어본 사람은 잊을 수 없는 맛이다.

#1980년부터 을지로를 지켜온 숙성 맥주

순대국밥… 노가리… 아재 맛 찾아 ‘

산수갑산이 순대 성지라면, 을지 OB베어는 애주가들의 성지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을지 OB 베어를 중심으로 노가리 골목이 형성됐다고 할 정도로 이곳의 에너지는 대단하다. 부부가 운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은 밖에서 노가리를 연탄불에 굽고 있고, 아내는 신선한 맥주를 계속 짜고 있다. 안에 들어가니 벽을 보고 혼자 술을 마시는가 하면 ‘ㄴ자’ 테이블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재밌는 건 기본 메뉴가 맥주이기 때문에 맥주를 주문하지 않아도 들어오는 사람의 머릿수를 세어 생맥주를 준다. 메뉴판은 더 재밌다. 1000원 노가리부터 번데기, 쥐포, 칼슘멸치, 땅콩, 소시지, 컵라면이 다다. 소박한 것 같지만 노가리를 맛보면 결코 소박한 맛이 아니다. 세월이 묻어있는 연탄 화덕에 노가리 한 마리를 노릇하게 구워서 주는데, 매장에서 직접 만든 특제 고추장 소스와 함께 먹으면 천국의 맛이다.

순대국밥… 노가리… 아재 맛 찾아 ‘

이 노가리에는 애틋한 사연도 담겨있다. 1981년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주류공급자는 음식은 제공하면 안 된다는 법을 만들어 대체 안주로 노가리를 선택하게 됐는데, 을지 OB 베어를 시작으로 다른 가게들도 노가리와 고추장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이곳이 노가리 골목이 되었다고 한다. 맥주 맛에도 특별한 비결이 있다. 바로 숙성 맥주. 다른 곳은 급속냉각기를 사용해 최대한 차갑게 제공한다면, 이곳에서는 급속냉각기 대신에 디스펜서와 연결된 냉장고에 맥주통(케그)를 통째로 넣어 맥주를 냉장 숙성한다. 여름에는 2도, 겨울에는 4도에 맞춰 온도를 관리하는데, 다소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생맥주의 참맛을 살리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고집 덕분에 을지로 골뱅이 골목의 터줏대감이 됐다.

#할머니의 손 맛 원조녹두

순대국밥… 노가리… 아재 맛 찾아 ‘

전과 막걸리. 불변의 진리다. 이곳에 오면 막걸리는 장수막걸리와 지평막걸리 두 종류 밖에 없지만, 전은 무려 11가지나 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게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벙거지 모자를 쓴 할머니께서 푸근한 인상으로 맞아주는데 모든 전을 할머니가 직접 부쳐주신다. 체구도 크지 않아 손님이 줄지어 들어올 때마다 혹시나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이곳 또한 복층 구조인데, 천장이 낮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순대국밥… 노가리… 아재 맛 찾아 ‘

대표 메뉴는 고추전과 고기녹두전. 잘게 다진 돼지고기를 녹두반죽에 넣어 부치는데 옛날 방식 그대로 위아래로 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부치기 때문에 테두리는 바삭하면서 속은 포근하고 촉촉하다. 아무래도 전이다 보니 느끼하게 느껴진다면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보라! 언제 그랬냐는 듯 기름기가 쑥 내려가고, 입 안을 청량하게 씻어내준다. 을지로의 하루는 맛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