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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동양의 나폴리
통영 백배 즐기기

by세계일보

통영, 백배 즐기기

조선의 바다 호령한 삼도수군통제영… 강구안 거북선…

하늘빛·물빛 꼭 닮은 통영포구, 충무공의 기개가 흐른다


케이블카가 정상까지 단번에 쌩∼

투명유리 아래 펼쳐진 美친풍경

“레알 동양의 나폴리” 이구동성


과거 ‘통영의 명동’ 강구안 골목

삼대 이은 식당·여행자 카페 등

옛이야기 ‘조잘조잘’… 추억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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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이곳은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로 보인다. 절제된 언어로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으며 한국 현대시를 개척한 시인 정지용. 그는 기행문인 통영5에서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라며 통영의 아름다움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그토록 시인을 사로잡은 통영의 ‘절대 매력’은 무엇일까. 진주를 거쳐 통영에 가까워질수록 시인 때문에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오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떠오르는 복잡한 생각. 여행기자는 어떤 시어로 ‘동양의 나폴리’ 통영을 소개해야 할까. 시인의 표현 절반이라도 따라가 보자.

미륵산 정상에 서서 동양의 나폴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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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이 통영포구와 한려수도를 그만의 시어로 풀어낸 빼어난 절경을 보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시인이 오른 미륵산 정상에 서야 한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 몇 시간씩 산을 오르라고 하면 천하의 동양 나폴리라 해도 포기하겠다며 대부분 손을 내저을테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시인은 걸어서 정상까지 올랐지만 지금은 미륵산 8부능선까지 케이블카가 편안하게 모셔 드린다. 더구나 쾌적한 8인승 곤돌라다. 47대가 자동순환하며 관광객을 수송하니 대기 시간도 거의 없이 빠르게 미륵산 산정에 다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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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로 오르다 보면 뜻밖의 선물을 받는다. 곤돌라는 가파르고 높게 1.974km의 선로를 따라 오르는데, 야트막한 산자락을 넘어서면 곤돌라의 투명 유리를 통해 통영포구의 아름다움 풍경이 순식간 펼져진다. 너도나도 셔터를 누르느라 부산해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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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정류장에 도착하면 정상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니 체력이 약한 이도 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오르는 길에는 미륵산 정기를 받아 사랑을 이루려는 연인들의 소망이 담긴 하트 카드와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폭포수로 동전을 던지면 미륵산 정기가 담긴 행운이 마구 온다니 동전 준비도 잊지 말자. 정상에 오르는 길은 두 갈래. 오른쪽 길은 신선대 전망대와 한산대첩 전망대를 거치고, 왼쪽 길은 당포해전 전망대와 박경리 묘소 전망 쉼터를 거친다. 두 길은 봉수대 쉼터에 만나 미륵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내려올 때 다른 길을 선택하면 되니 고민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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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 꼭대기 섰다. 시인의 말 그대로다. 내가 지닌 시어를 쥐어짜도 그 신비로운 풍경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 쪽빛 바다와 하늘을 옅은 물안개가 살짝 가리는데 난생 처음 보는 색감이다. 오래 바라보고 그저 눈에 가만가만 잘 담아본다. 눈을 감으면 그 색감이 잘 떠오르도록. 동양의 나폴리 맞다. 인정한다. 정상에는 한 무리의 외국인 소녀들이 깔깔대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히잡을 쓴 소녀들은 저 멀리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에서 여행을 왔다고 하니 통영은 이제 세계적인 명소가 될 모양이다. 지리산 천왕봉과 여수 돌산도, 심지어 일본의 대마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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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로 하산하면 재미난 놀이기구가 기다린다. 통영 스카이 루지. 1985년 뉴질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스카이 루지는 직접 핸들을 조정하며 1.5km의 내리막 트랙을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바퀴 달린 중력 놀이기구인데, 속도와 방향을 직접 쉽게 어할 수 있다. 처음 보면 장난감 같은데, 타보면 어른들도 짜릿짜릿할 정도의 스릴을 만끽하게 된

통제영 12공방에서 전수받는 장인의 손길

통영하면 이순신 장군을 빼놓을 수없다. 통영이라는 명칭이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경상·전라·충청의 3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영으로 지금의 해군본부 격인데 최초의 통제사가 바로 이순신이다. 전쟁이 끝난 뒤 1604년부터 세병관이 있는 두룡포를 중심으로 통제영이 자리잡았는데,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될까지 통제사는 모두 209명이 부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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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영은 폐영된 지 100년 만이 2000년부터 13년 동안의 복원공사를 통해 옛모습을 찾았는데 세병관이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단일 규모 목조건축물 중 가운데 바닥 면적인 가장 넓다. 운동장 같은 마루에서는 관광객들이 편하게 앉아 땀을 식히며 해설사들의 역사 얘기에 푹 빠져있다. 그만큼 통제영은 가족 여름휴가지로 강추다. 임진왜란의 유명한 한산대첩과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이 유래된 6·25전쟁 당시 해병대 통영상륙작전 등 흥미진진 역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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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통제영 12공방에서 다양한 공예체험을 할 수 있으니 가족 나들이를 즐기기 좋다. 이곳은 300여년 동안 독특한 통제영 문화가 계승됐는데 서부경남지역에 전승된 탈놀음 통영오광대, 임진왜란 때 승전을 축하고 장졸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북춤과 칼춤을 추던 승전무, 어민과 선원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축제인 남해안별신굿이 대표적이다. 특히 조선시대 통제영에는 임금이 하사하는 단오절선(부채)를 주로 진상하던 선자방을 비롯해 통영갓을 만드는 입자방, 각종 공예품을 옻칠해 마무리하는 칠방, 말총을 엮어 망건·탕건·유건을 만드는 총방 등 12개 공방이 각종 생활용품을 활발하게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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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는 통제영에 12공방을 꾸며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된 장인들을 모셔왔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오랜 전통을 유지하며 섬세한 손길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12공방 중 통영갓, 소반, 나전, 소목장, 부채 등 6공방을 체험할 수 있으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1시∼5시30분에 진행된다. 통영시 홈페이지 등에서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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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 있는 공방은 자개를 붙여 나전제품을 만드는 패부방이다. 전복과 조개의 안껍질로 만든 자개를 잘게 잘라 붙이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데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난다. 방문객들은 옷칠을 한 숟가락이나 젓가락에 직접 자개를 붙여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전제품을 만들 수 있다.

강구안 거북선, 골목길 그리고 통영 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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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문화마당이 자리 잡은 통영항 강구안에는 전라좌수영 거북선, 통제영 거북선, 한강 거북선과 판옥선 등 조선 군선이 나란히 떠있어 이순신 장군의 본고장임을 보여준다. 직접 거북선에 들어가 내부구조를 볼 수 있는 이색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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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강구안 골목에 들어서면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삼대를 이은 식당, 농어촌의 손발이 되는 대장간의 풀무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과거 통영의 명동이었단다. 통영의 근현대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돼 ‘응답하라 1988’의 골목길 같은 따뜻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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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여행자 카페’에 들어섰다. 창가 탁자에 작은 이젤에 놓인 정사각형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추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거울에 쓰인 글씨 ‘니 오늘 꽃 같네’. 그래 누가 뭐라 해도 꽃같이 살자. 나를 토닥토닥해본다. 카페 안쪽에는 아주 작은 스튜디오가 마련돼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카페 벽면에 주렁주렁 내걸린 가족, 연인, 친구들의 따뜻한 미소를 들여다보니 나도 그들처럼 행복해진다. 인기 방송프로그램 ‘빅피처 사진관’ 촬영지로 입소문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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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는 통영의 명물이 자리잡고 있으니 꼭 들러보자. 통영시 통영꿀빵 품평회에서 1등한 꿀빵가게 ‘통영전통꿀빵’이다. 국산팥을 직접 삶아서 만드는데 빵은 얇고 부드러우며 쫄깃쫄깃하고 속에 꽉 팥소가 자꾸 손이 가도록 만든다. 시식만 하려다 결국 한 통을 사버렸다. 매실액, 오미자액을 넣어 만든 꿀청은 적당히 달면서도 깔끔해 왜 이 가게가 1등을 했는지 알겠다. 팥, 고구마, 크림치즈, 유자 4종류가 있는데 모두 섞어서 살 수 있으니 입맛대로 골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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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시장에는 다양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는데 전날 과음을 했다면 이곳의 시락국이 딱이다. 시래기국을 여기서는 시락국이라하는데, 다양한 반찬을 직접 덜어 먹으며 6000원에 든든하게 해장을 할 수 있다. 장어를 넣는 시락국도 있으니 여행에 지친 피로도 달래준다.


통영=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