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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보름달·유성우… 대자연을 마주하는 일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by세계일보

연초 행운을 나눠주는 두 작가의 작품


별이나 달은 예로부터 희망·꿈의 상징

시간·공간을 넘나들며 빛을 내는 존재

본능적으로 깊은 사유도 경험하게 돼


대런 아몬드의 사진전을 만난 건 행운

오묘하고 서정적 밤바다 작품서 감동


김태동 전시장선 또다른 별 세계 느껴

‘강선-011’ 작품 비롯 밤풍경 연작 울림


역사가 깃든 장소 위의 별은 신비한 힘

오늘의 시간을 생경하게 끄집어내줘

별을 찾아서

지난 연말 혼자 열심히 발품 팔며 찾아 헤맨 것은 별이 가득한 하늘이었다. 어떤 것은 가만히 떠 있고 어떤 것은 홀로 떨어지는 장면이 있는 하늘. 예로부터 별은 희망과 소망 그리고 꿈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멀리 있던 꿈이 땅 위 현실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유성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그 순간을 기다린다.


나 역시도 유성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마음이 괜히 커졌다. 그 안에 이루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따위를 잔뜩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연고도 없는 성균관대학교를 방문하기도 했다. 법학대학 건물에서 별똥별이 잘 보인다는 정보를 들은 친구와 함께였다. 건물 옥상에 돗자리를 펴고 서너 시간을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쉽게도 나는 잠이 들어 그날도 별똥별을 보지 못했다.


이토록 별을 찾아 헤맨 것은 2018년 마지막 전시로 방문한 대런 아몬드의 개인전에서 만난 작품 때문이었다. 오묘하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풍기는 바다 사진이었다. 바다의 한가운데에 섬이 있고 그 위로 별이 쏟아지는 모습이었다. 그 작품을 보고 맞이한 지난해는 전에 없던 아름다운 경험과 장면을 많이 마주친 소중한 해였다. 삶이 이렇게 충만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새해 시작을 앞두고 나는 별이 떨어지는 작품을 찾고 싶었다. 이런 삶을 그 사진 속에서 떨어지던 별들 덕에 만난 것만 같았다.

안개 바다 위의 가득 찬 달과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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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바다 위 보름달’(Fullmoon Above the Sea of Fog·2011). 대런 아몬드가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회화에서 영감 받아 작업한 사진. 그 분위기와 닮은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바다에서 찍었다. PKM갤러리 제공

대런 아몬드는 2005년 할머니에 관한 기억을 조명한 작품으로 터너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에서 자기만의 공감각적 시선을 선보여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그는 베를린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테이트 트리엔날레 등 유수 미술 행사에 참여했다. 현재는 영국 최대의 수도권 대도심 철도 크로스레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 작업 중이다. 구사마 야요이, 더글러스 고든 등 주요 작가들이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대런 아몬드 작품은 시간이라는 개념에 관한 탐구에서 비롯한다. 그에 의하면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며 상대적으로 해석 가능한 대상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죽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우리는 그 일을 두고 생각하고 추모한다. 이때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지만 우리는 과거에 위치하는 식이다. 우리는 시간이 품고 있는 유동성을 수없이 경험하면서 산다.


‘풀문(Fullmoon)’ 연작은 이러한 시간 개념을 드러내는 그의 대표 작업이다. 그는 1998년부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름달 주기를 따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달이 가득 비추는 날 19세기 풍경화에 등장하는 장소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장소에 가서 촬영한다. 때로는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 원시처럼 남은 자연은 자기 본래의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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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문’ 연작의 다른 작품. 안개의 흔적이 물결처럼 남은 장면이 몽환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다. PKM갤러리 제공

이 연작은 폴 세잔이 그려 유명해진 생트 빅투아르 산에서 시작했다. 한 화가가 수십 점의 작품을 남겨 문화사적 의미가 있게 된 산. 마치 전설 속에 존재할 것 같은 이 산은 사실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이 산에 직접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문득 달빛으로만 풍경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담아낸 사진 속에서의 산은 그 어느 때보다 낭만적이었다.


달빛이 품은 풍경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그는 장노출 기법을 사용한다. 느린 셔터 스피드를 사용해 15~50분간 열어두는 식이다. 그동안의 움직임은 아날로그 카메라 속 필름 위에 고스란히 남는다. 불이나 별처럼 발광체인 경우에는 특히 그 흔적이 또렷하다. 내가 행운처럼 여긴 ‘안개 바다 위 보름달’(Fullmoon Above the Sea of Fog·2011) 작품과 같이 말이다.


시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화면. 달빛에 비추어 푸르러진 밤. 그 안에 자리 잡은 바다와 바다가 품은 섬. 섬 위를 가득 채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쏟아져 내리는 별들. 화면 안에 존재하는 것을 하나씩 바라보면 마치 시의 한 행 그리고 또 다른 한 행을 읽는 것만 같다. 사실 이 별들은 쏟아져 내리는 중이 아니라 머무르는 중이다. 하지만 지구 자전 등을 이유로 변화한 별의 위치가 장노출로 유성우처럼 남았다.


이 작품은 독일 낭만주의 거장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회화 ‘안개 바다 위 방랑자’(1871)에서 영감을 얻었다. 자욱한 안개에 덮인 바다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광활한 대자연에 마주 선 고독한 인간의 모습으로 유명하다. 그 인상과 닮은 장소를 찾아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두 주 접경의 바다에서 작업했다.

역사가 깃든 장소 위에서 빛나는 별

12월의 마지막 주는 그렇게 전시장을 다닐 때마다 별똥별이 담긴 작품이 있는지 살폈다. 그러다 대런 아몬드의 작품도 사실 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별이 보이는 작품을 찾기로 했다. 그런 작품은 한남동의 한 전시장에서 곧 만날 수 있었다. 주택을 개조한 전시장의 야외 유리 공간 안에 걸려 있는 사진. 그 안에는 짙은 밤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리를 지키며 빛나는 것은 분명 별이었다.


김태동은 주로 도시를 포착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중에서 중심부를 벗어난 장소와 그곳을 살아내는 사람들에 시선을 주로 보내왔다. 이러한 시선은 이어져 점차 한국전쟁의 상흔과 분단 체제 현실을 품은 곳에 다다랐다. 바로 경원선 라인(동두천-소요산-초성리-한탄강-전곡-연천-신망리-대광리-신탄리-백마고지)을 따르는 지역이었다. 막상 방문하고 나니 그곳에서 만난 것은 전쟁의 격렬함이 아닌 시골 마을의 풍경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안에는 전쟁의 아픔과 통일의 희망을 간직한 역사성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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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동 개인전 아마도예술공간 설치 장면. 짙은 밤하늘에 별이 깔렸다. 김한들 제공

작가는 이런 장소들의 특수성을 간과할 수 없었다. 결국 일상 뒤에 숨겨진 긴장감을 밤이라는 시간으로 포착했다. 모두가 고요하고 적막만이 감도는 시간으로 담았다. ‘강선-011’ 작품은 그가 밤하늘 별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된 작품이다. 그는 작업을 하며 싸늘한 현장의 분위기와 달리 별들이 쏟아내는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이 모순적인 아름다움의 인지는 ‘플라네테스’라고 부르는 연작의 시작이 되었다.


이 연작은 단순한 밤 풍경인 것 같지만 그 안에 겹겹의 역사를 쌓은 장면이다. 밤하늘을 오래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별들이 눈에 들어오듯 두고두고 볼수록 생각나는 것이 많아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렇게 역사를 품은 장소들에 신비한 힘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오늘의 시간을 생경하게 끄집어낸다.

행운을 나누어 드립니다

대런 아몬드와 김태동이 별을 바라보는 위치는 매우 다르다. 대런 아몬드의 것은 자연에서 기인하였고 김태동의 것은 도시에서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결국 그들이 바라보는 별은 같은 별이다. 지구에서 바라보는 별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며 빛을 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을 소개하며 행운을 나눈다. 생의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우리는 별과 같은 대자연의 현상을 마주할 때 본능적으로 깊은 수준으로 사유를 경험한다. 이제는 또 일상에 익숙해질 것이고 바쁨을 핑계로 생각을 깊이 대할 시간도 부족해질 것이다. 그러니 연초에 이러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분명 행운이 맞다.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